맘충이 만들어지는 이유
방사선사 면허를 써볼까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얻고 바로 일을 시작했었다.
시급은 최저 시급보단 높았지만 넉넉하다고 하기엔 다소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일은 무척 쉬웠어서 왜 이곳에서 의료법 위반이 많이 발생하는지 아주 잘 알것만 같았다.
웬만한 곳에 번호를 찌라시 처럼 뿌리고 연락을 기다리면 대부분은 신졸은 뽑질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아침에 일어나 졸면서 아무데나 넣은 병원 한 곳에서 칼 같이 전화가 왔고, 부원장이라는 사람은 일이 쉽다며 병원 한 번 보러 오라 그랬다.
그 병원은 소아과였다.
참고로 소아과는 여러모로 다들 기피하는 곳 중 하나다.
붙임성 좋은 부원장은 시급이 적은 대신 촬영 건수도 적고 일이 쉽다고만 반복했고, 최대한 편의를 봐주겠다며 뭐든 다 들어줄것 처럼 말했다.
글쎄요 딱히 없는데요.
주차 지원 해드릴게요! 차는 있으세요?!
대중교통으로는 50분, 차로 밟으면 20분.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주차 등록은 나만 해줬더라.
방사선사의 대우는 박하면서도 이럴때면 좋다.
원래 방사선사가 없었어서 원장이 바쁜와중에 직접 촬영하고 그랬었는지 와줘서 고맙단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일을 하고 가끔 성탄절이나 설 연휴 같은 휴일엔 추가로 근무해서 인센티브를 넉넉하게 챙기곤 했다.
내가 찍은 영상을 보다보면 ‘이딴 영상으로 저 원장은 알아보긴 하는걸까. 신졸을 안뽑는덴 이유가 있다 있어.’ 하면서도 쪽지로 원장에게 혹시 못알아보겠거나 원하는 촬영 조건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며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항상 “영상 아주 좋아요!” 뿐이었다. 나혼자 답답한 것이었다.
게다가 부원장이나 원장에게 초음파를 배우고싶다곤 했지만 케이스 있을때 불러주겠다놓곤 늘 바빠서인지 잊고 한 번도 부른 적은 없었다.
성장도 없고 배움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촬영이 없으면 촬영실 안에서 어차피 나 혼자니 편하게 책이나 보고 놀다가 공부하고 그랬다.
모든 일은 힘들지만 강도가 매우 낮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겁이 많았다. 울기만 하면 다행인데, 간혹 자지러지게 울면서 촬영 자체가 안되는 애들이 있다. 22개월 이하로는 한글이나 말도 안통해서 설명도 뭣도 이해를 못한다. 확실한 건, 그들은 촬영이 끝날때까지 절대로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부모들을 설득해야하는데, 으레 소아과에 온 엄마 아빠들이 대부분 다 그렇듯, 좋은 마음으로 오지는 않는다. 마음도 약해서인지 제대로 붙잡지 않으면 영상이 흔들려나오고, 여러 장 촬영하게 된다.
거기서 “방사선 나오잖아요. 여러 장 찍으면 아이한테 안좋아요.” 한 마디면 엄마들은 정신이 바짝 드는지 단호하게 붙잡는다.
그러면 너도 나도 좋은건데 소위 진상 부모, 맘충 등등으로 불리는 자기 자식이 우선인 부모들은 뇌구조가 달라서 협조가 전혀 되지 않는다.
12개월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며 토요일에 촬영을 했던 날 촬영 보조해줄 수 있는 간호사들이 모두 진료실에 들어가있어서 애 엄마 혼자서 붙잡고 촬영을 했었다. 아이가 활어처럼 펄떡이며 머리를 촬영대에 두어 번 부딪혔다.
애 엄마가 몇 번 나를 째려본다.
나는 그런 눈빛을 하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학생때 외국에서 아이를 촬영할때 묶어놓고 촬영하는 벨크로가 생각났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런것도 없으니 조심하라던 3년도 더 된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달램비도 없으니.
어떻게든 죽을똥 살똥 영상을 만들어 보내놨더니만 애가 폐렴이 걸렸다고 입원한다며 한 장 더 처방이 들어왔는데, 애 엄마는 도망갔고 촬영은 불가피 해지자 나는 잘됐다 싶었다. 문제는 그 다음 날이었다.
일요일 아침 첫 촬영으로 그 아이가 한 번 더 왔는데 구성원은 더 늘어있었다. 애 엄마 애 아빠, 외할머니 이렇게 셋.
확실히 좋은 것은 애 엄마 하나 보단 차라리 애 아빠랑 껴서 둘이 애를 붙잡는게 잘 나와서 잘 됐다 싶었지. 근데 애 아빠는 그 쓸모를 다 하진 못했다. 애 엄마의 발닦개로 온 것이었다.
애 엄마가 촬영실에 들어오다 말고 “이것도 같이 들어가나요?” 이러는데 그 년 손가락이 가리키는 ‘이것도’가 애한테 있는개 좀 이상해서 “네, 당연하죠. 아이를 검사해야하니까요.” 라고 사족을 붙였다가 셋이서 뭐라는거냐며 달려드는데, 예감상 일이 정말 커질 것 같은 거다.
어디서 많이 겪어본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보통 이럴때 녹음기 키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주섬주섬 꺼내들며 cctv가 있는 진료 대기실 바깥쪽으로 자리를 유인했다. 떠드는 와중에도 다행히 순순히 끌려서 셋 다 따라와줌.
근데 정말 셋이서 떠드는 꼴이 마치 20대 여자애 하나 잡아보겠다고 마흔살 일흔살 넘은 어른 셋이서 죽어라 달려드는게 왜인지 내가 우월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혼자서는 싸움도 못하는 아줌마.
녹음기를 켜자마자 냅다 소리를 악 하고 지르는데 참 잘 켰다고 생각이 듦과 동시에 사이코패스가 생존본능 살인감지 둘이 탁월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게 여기서 나타나는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고성방가를 지르면서 하는 말이 참 가관이었다.
저 사람 이 억지로 애를 눕혔어요!!!!(애 만진적 없음. 애엄마가 눕힘)
저 인간 때문에 애가 떨어뜨리고 떨어져서(?) 머릴 바닥에 박았어요!!(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지만 바닥에 머리 박은 적 없음)
애가 12개월인데 어떻게 누워요!!!(하루종일 누워있음)
기본도 안되어있는 사람이, 말도 안통하고 아 나 안되겠네. 원장 나오라 그래!!(이미 시끄러워서 뭔일인가 싶어 나와계심)
없던 말을 지어내는 것은 참 기분이 나쁜 일이었다.
저렇게 열정적으로 연설하면서 억울한척 하면 내가 정말 애한테 저러기라도 한 것 같잖아.
그런데 나는 애를 참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소아과 다니면서 감기만 한 달에 두 번을 걸렸어서 그 이후론 만지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애를 떨어뜨렸다는걸까.
“네네, 저기요 근데, 저 애 안만졌고요, 애 앞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시면 안좋아요.”
고심끝에 한 마디를 던졌다. 위선이었고 위선이었지만 어느정도는 화나게 만드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 있었다.
10%정도는 진심이기도 했다. 그 집 자식도 울었지만 소아과 내에 있는 아이들도 떼거지로 울어서 대화가 잘 안들릴 정도였으니.
아니나다를까 부모 둘은 “너나 잘하세요”를 동시에 말했고 뒤에 할머니는 “에잉...” 만 반복했다. ㅋㅋㅋ
속으론 자존심이랑 애랑 바꿨네 하면서 쳐웃다가도
잠시 듣다보니 그 아줌마는 산후우울증이 있던 것도 같다.
촬영 이후엔 애엄마가 회까닥 돌아서 육두문자에 욕을 복창을 해댄다. 욕을 골고루 하질 못해서 하나만 반복적으로 말하길래 긁어볼까 싶다가도 경찰에 신고할 걸 생각해서 참은 내가 대견
애 아빠는 위협이 하고싶었던건지 촬영실 안에까지 따라 들어와서 위협 같지 않은 위협(?)을 한다.
‘어차피 여기까지 따라 들어온다고 너가 뭘 할 수 있는데?’ 싶어서 품 안에 호신용으로 넣고 다니는 칼을 만지작거리며 ‘이런거 갖고 다니지 말랬는데 이럴때 쓰는거지’ 뇌까리며 하품도 하고
“아...네 네. 그렇구나. 아 네” 만 남발했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다.
애 엄마가 정상이 아니면 바깥인간도 정신 똑바로 박힌 인간은 아닌거다.
귀찮아서 모욕으로 고소를 한 건 넣고 조사 다 받고 나니 그 둘은 병원으로 와서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맞고소를 하겠다며 부원장한테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맞고소 당할 건덕지도 없을 뿐더러 전 고소 취하 할 생각이 없어요.
그렇게 지나가고 나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과해도 빌어도 모자를 판에
다른 환자들 앞에서 없던 일 꾸며내고 소리질러서 다른 아이들도 겁에 질려서 울게 만들어놓고 고소 취하하라고 부원장을 잡아대는게.
그길로 추가로 두 개 더 고소를 했다.
아마 내가 나이가 좀 더 있거나 일에 경력이 있고 노련한 사람이었다면 그 날이 좀 재수대가리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넘겼겠지만
그들이 그 날 건드린건 힘이 남아도는(?) 새삥 신입이었다.
방사선사 커뮤니티에서 왜 소아과가 기피대상 1위였는지 체감이 되는 것이었다. 가지말라는건 가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