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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환경이 바뀌는 것은 늘 적지 않은 힘이 들었다.



재수학원을 졸업했다. 졸업했다는 표현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내 모교로 남았으면 좋겠어서. 나의 모교는 그곳이었다. 영원히 그럴 것이다.


학원을 나오는 일이 두려웠다. 늘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터라 이곳만이 안식처였는데, 밖으로 나와서 사회화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무서웠다. 밖이 무서웠다.


집에만 쳐박혀있으면 히키코모리로 불려져도 학원에만 쳐박혀있으면 '열심히 하는 애'로 이름이 크게 바뀌는데, 더 이상 나를 씌워줄 좋은 단어가 없어지는 거니까.


감기에 걸려 잠시 학원 외출을 하던 날 지하철 지하를 뚫고 지나갈 때 미친 사람이 내 앞을 가로막고 벽을 세게 쾅 하고 쳤을 때, 그때 잠깐 화가 났던 게 자꾸 생각이 났다.

학원 밖을 돌아다니면 미친 사람이 참 많을 텐데 앞으로 삭힐 일이 많아지겠구나 하며.

그건 둘째치고 그 사소한 일에 화가 날 정도로 예민한 난데, 이걸 바꿀 방법이 없을 것만 같아서. 그것이 더 stressful 한 것이었다.


계속 신분이 생기지 않았다. 내 자리는 없다는 듯.


검정고시생 신분은 아무리 만점자라고 해도 대입에서 늘 불리했고, 수능 성적표는 공부한 만큼, 스트레스를 받은 만큼 얼마나 노력했는지 정직하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에서 불리했다.


작년엔 전 과목이 커트라인에 머리를 부딪쳐서 1점씩 모자랐던 게 나를 부족한 인간이라며 다시 몰아가듯, 이번엔 최저를 맞췄음에도 연속적인 정답이 원인이었는지 분명 1,2등급을 예상했던 과목이 4등급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단 한 번도 태어나서 마킹 실수를 한 적이 없었는데.


성적표가 자꾸만 나를 공부를 해본 적 없는학생이라고, 이 학생은 대학교에 갈 자격이 없다고 열창했다.

모든 곳에서 걸러지고 말았다.


얼마 전 엄마가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그냥 병신이기 때문에 공부나 시켜서 사람 구실하게 만들려고 공부를 시키면서 그렇게 학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옛날이라면 그런 모친의 의도를 이해한다고 다독였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엄마의 변명이 존나 병신같은 궤변이라고 머리채를 잡고 톱으로 썰어 죽여버리고 싶었다.


내가 소질을 보였던 곳은 예체능이었다. 좋아하는 공부는 이과쪽이었다. 인문은 좋아하지만 사탐은 아니었다. 대입 희망 조사를 학원에서 실시했을 때 나는 상의 없이 홀로 모두 결정했다.

어차피 내 인생이고 난 20대 중후반에다 부모님은 병신이니까.


그런데 참 쓰고 보니 별나긴 했다. 원자핵공학과, 조선해양공학과, 회화과, 독어교육과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러가지를 잘 한다는 말을 하려면 모두 하나 같이 전공 수준으로 잘해야했다.

그러니 당연히 저렇게 써온 학생을 두고

"너는 참 문이과 예체능을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여러가지를 잘하는구나" 가 아닌

"넌 어디를 가고 싶니?" 가 첫마디였다. 아직도 방황하는 학생으로 보였던 것이다.


외국어를 여러 가지를 해서 잘하고요, 흥미 있는 곳도 많고요, 사실 예체능이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안시켜줘서요 라고 말하기엔 진정성이 없어보여서 나도 그냥 닥치고 얌전히 상담이나 했다.


사실 그동안 해온 것이 너무 아까웠다. 이번에 성적 진짜 많이 올랐는데.


문예창작과, 3명, 실기 100%

내가 실기만 보는 대학인 이곳에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그 뉘앙스는

'네가 뭘 하든 응원해'가 아닌, '어차피 갈 데 없긴 하니까 한 번 써보던가'에 더 가까웠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래 해라 해' 의 의미였다.


부지는 작지만 집근처 서울에 대학가에 있는 학교. 수시에선 문예 특기자만 받는 학교. 정시 경쟁률이 다군 통틀어서 가장 피터지고 온전히 글을 잘 쓰는 학생들만 받는 학교.


편입에선 세 명만을 뽑았고 예비 1번조차 돌지 않는 곳. 타 문창과 학생들이 시험 보러 오는 곳.


이곳을 최초합으로 붙어버렸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리려 전화했을 때 정말 놀란 말투였다. 원래같았으면 "내가 너 글 잘쓰게 낳아준거 알지?" "내가 너 책 많이 읽힌거 도움 되는거 맞지?" "너 글 잘쓰는거 다 내 덕분인거 알지?" 이렇게 말했을텐데.


이때까지만 해도 이곳이 가장 먼저 발표가 났던 학교여서 고민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면접을 보러 갔던 수능 성적으론 써볼 수도 없던 학교를 혹시 몰라 편입으로 지원했을 때, 가장 기대가 없던 학교들이 모두 면접으로 붙고 말았다.


그러니까, 수능은 정말 도움이 되는 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현대미술같았다. 누구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 하지만 누구는 쓰레기인줄 알고 버리거나 낙서를 하는 것처럼.

누구는 몇 천억을 주고 사겠다고 고상하게 주문하지만 누구는 작업복 차림으로 재활용해버리는 것처럼.


화개살에 귀문관살만 박혀있는 사주.

어딜가도 빛이 늘 그늘에 가려진다고.

잉어가 큰 호수에 있어야 크게 자라고 작은 연못에서 자라면 작게 자라는거 아시죠? 집에서 나오세요.

어쩌면 집에서 지어준 내 이름도 한 몫하지 싶다. 화개살의 성격이 내 이름 처럼 늘 앞을 가리듯이.


공부운이 없고 대신 인복이 좋아서 면접이나 일자리 운이 참 좋다고 했는데, 여러명이 그렇게 말한 데에는 단순 샤머니즘으로 치부하기엔 정확했다.

면접만 보면 합격을 했으니.

그런데 수능에서의 면접은 다들 교과전형이나 학종이라 불리는 학생부 종합전형에만 해당되어서 검정고시생인 나에게는 전혀 닿을 수 없는 먼 전형이었다. 늘 회색지대에 서 있는 인간.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신입임에도 원장이나 간호사들이 정말 친절하고 다정했다.





내 글을 선택해준 교수에겐 고마웠다.

학생때 글을 쓰면 매번 뺏어서 내 앞에서 찢어버리던 엄마.

읽으면서 재미도 없다며 비웃으며 놀리고 쓸모없는 짓이라며 공부를 시키던 엄마.

틀린 사람 속에서 틀린 것만 보고 자라면 나는 평생 틀린 인간이 되어야한다. 이곳을 벗어나야한다.

그 첫 스타트를 바꿀 수 있게 도와준 곳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다른 학교들이 합격 발표가 나버릴 때마다 거듭 고민이 느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붙을 줄 몰랐던 학교가 붙고, 안정으로 넣었던 학교는 떨어지는 것을 보며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현재 하락세를 보이지만 전통과 연구 지원이 넉넉하게 나오는 지거국, 별 볼일 없는 대학이지만 첫 시작이 되어줄 조형예술학과, 예전엔 별볼일 없었지만 현재는 크게 상승세를 보이는 지거국 물리학과, 인서울에 실기 100%로 3명 뽑는 문창과,


그런데 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문창과는 구태여 나오지 않더라도 정 원한다면 돈만 쥐어주면 책을 출판할 수 있다는거.

근처 대학교들이 너무 좋은 대학교라서 계속 비교될 것이라는 거.

소수 학생들로 수업하기 때문에 캠퍼스라이프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는거.


어렵게 운이 좋아 뽑힌 문창과를 놓기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추합도 안도는 곳인데. '예비 1번 학생은 좋겠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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