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연습장 쓸 줄도 알아야죠

이전학교 비교질 및 친구 사귀었다고 자랑하는 글

by 해열

내가 맞는 선택을 했다고 내가 맞는 길을 잘 찾아서 왔다고 깨닫는 순간은 데자뷰를 경험할 때다.


이번 학교에서도 나는 혼자 다녔다. 편입하기 이전의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타인과 나의 확고한 고의로 인하여 혼자 다녔던 것이라면, 이번 학교에서는 소프트한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억지로 안사귈거야'의 그런 폐쇄적인 뉘앙스가 아니었고, 단지

나와 같은 반 아이들과의 나이차이가 꽤나 크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어차피 누구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 걸 아주 잘 알아서 + 어차피 내가 먼저 말 걸어도 좋은 결과는 없었으니까" 의 의미에 가까웠다.


그냥 여유로워진거다.

누군가를 사귀려 애쓰지 않고 다가오면 다가와주는거고, 나 또한 별 일 없으면 말 걸 일이 없는 거고.

그렇다고 외롭지도 않았고 그런대로의 겉도는 맛도 없었다.


황홀했다.
대학교들 도서관이 이정도는 되는구나.
전자출결이 이런 거였구나. 나도 드디어 해보네.
과방이라는게 이런 장소였구나.
일반인이 된 것 같았다.


우리 학교는 정말 좋았던게, 내가 수업하는 자과대 바로 옆이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도서관은 매우 컸는데, 이전 학교는 '이딴걸 도서관이라고 만들어놨던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업이 끝나거나 공강이 생기면 도서관으로 향했는데, 책도 정말 많고 열람실이나 독서실이 스터디 카페처럼 몇 개가 더 있다. 좌석도 예약제고 도서관 건물이 두 개인데, 더 자랑하고 싶지만 본론은 이게 아니니 넘어갈게요 미안.



개강 후에 언젠가 조별과제가 있던 수업에서 몇몇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 말에 나도 사회화를 마친 사람인척. 정상인 사람인척 스며들어가고 싶어서 스몰토크를 했다. 처음으로 겉도는 느낌 하나 없이 여자 아이들과 웃으면서 대화한 것 같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럴땐 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하지'라는 고민조차 없었다.

편입생은 차별을 한다는 소문을 많이 들어왔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엥? 신입생 아니셨어요? 혹은

그렇게 안보이셨는데!! 아유 선배님이셨네요! 등등 붙임성 좋게 말을 이어가주거나

그러면 전공수업은 어땠어요? 어려울까봐ㅠㅠ 라며 너스레를 떨거나 등등

그들은 전자 사물함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약해야한다는 것, 호의적으로 준비물을 빌려주거나 다음주에 강의실 바뀌니까 잊지 말라고 챙겨주는 등 내게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마치 나도 이제 사회에 섞여들어갈 수 있다는듯.

그런 느낌이었다.



말을 걸면 대화가 이어질 수가 없었던 이전 학교와는 너무 달랐다.

내가 사람을 어색해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러나 호의적인 감정으로 어색함에도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에게 대화의 진전이 없게끔 대답을 했던 그들은 연습장이 되기에 부족한 사람들이었을 수 있다.

문득 사회화를 도와준 재수학원 친구들에게 나의 동생들에게 여유로운 심성을 가진 선생님들께 고맙고 감사했다.

때론 빽빽해서 쓸 수 없는 얇은 메모장보단 넓은 연습장을 찾는 것도 엄청난 운일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여유로운 곳을 찾아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너무 피난민 같아보이니까. 급해보이고 방어기제가 보이니까.


매주 본가에 가는 날엔 계측학 수업이 있다. 그 수업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 나이의 아이를 만났다.

계측학 교수가 하는 잔소리의 성격은 편입하기 이전 학교의 계측학 교수와 무척 닮았다. 그러나 이전 교수의 잔소리가 학생을 향한 마음만 담긴 열정적인 붉은 색의 잔소리였다면 지금 교수의 잔소리는 진정성과 어느정도의 노련함 그런 것이 담긴 자줏빛 잔소리였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질문을 적극적으로 받아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먼저 학생에게 떠보듯 물어보기도 하면서 모른다 싶으면 더 알려주는 식이었다. 도움을 회피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컴퓨터 수업을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는데, 그때마다 컴퓨터로 타자기 조판 위치를 익히고 고학년이 될수록 한글 사용법, ppt 사용법, 엑셀 사용법, 노트북 사용법등등을 배웠다.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는 것은, 잘 못따라간다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수업을 끝까지 정상적으로 마쳐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생 때야, 선생님이 여러번 반복해주시거나 일일이 자리를 돌아다니시면서 도와주시거나 옆에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대신 해줘서 그 뒤는 무사히 따라갈 수 있는데,

이전 학교에서는 한 번 놓치면 그 날 그 수업은 그냥 끝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끝나는 거다. 클릭하라는걸 찾지 못하면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으니. 만약 초반부터 놓친다면 3시간 동안 그 뒤는 그냥 멍하니 앉아있게 된다.


그 수업을 편입해서 들어온 학교에서도 컴퓨터로 수업을 한다니까 지레 겁부터 먹게 되는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마치 숙명처럼 또 따라갈 수 없었고,

'나는 또 끝났구나...'

'아 난 왜 맨날 고치지 못하고 맨날 이래'

'또 고치지 못했구나... 끝났네 끝났어.' 이런 심란한 생각으로 대충 따라가는 척 알아들은척 하면서 애먼것만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곰같은 교수는 옆에 앉아있던 애먼 애를 잡으며,

"넌 왜 옆에 못따라가는 애를 보고도 가만히 있니?? 빨리 도와줘!! 뭐해!? 옆에 친구가 못따라가든!!! 나락을 가든 말든!!! 어?!! 도와줘야할거 아냐?!" 이러면서 기차 화통을 삶아먹으신듯한 소리로 갈궜다.



그 애는 오지랖일수도 있을까봐 도와줄까말까 내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하고 있었다며, 그 교수의 우렁찬 소리를 듣고 바로 도와주었다. 그게 한 번이면 다행이었지만 내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눈치만 보며 그 뒤를 몇 번이고 놓칠때마다 그 애는 수시로 내 화면도 들여다보며 내가 구태여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조용히 마우스를 뺏어서 대신 코딩을 놓아주기도 했다. 참 미안한 것이었다.



두 세 번 반복이 되었을때쯤 교수는 또 그 애에게 "너!!!! 얘 잘 봐. 얘가 못하면 니가 혼나는거야. 알겠어?!" 한다. 그러면 그 애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한다. "넵ㅋㅋ" 하면서. 동시에 나도 따라간다. "잘 도와주고 있어요..." 라며 미안해서 거들어준다.


이 셋의 요상한 대화는 교수의 말이 변형이 되어도 이번주까지 이어졌다.

예시 1)
"너!! 너는 얘가 재수강 하면 너도 같이 재수강 듣는거야. 너희 둘은 관우조다. 알겠어??“
"넵ㅋㅋ"
"잘 도와주고 있어요..."
예시 2)
교수님:"얘가 모르는거 있으면 너(짝꿍)가 설명을 해. 너(해열)는 gpt 필요 없어. 그냥 얘(짝꿍)한테 물어봐. 물어봐서 모르면 다 누구 잘못이야?"
나: "쟤요!"
교수님: 그렇지!
나:아...아니요!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ㅜㅜㅜ 진심이 아닌데요ㅠㅠㅠ
교수님: 너(짝꿍)가 가르쳐서 얘(해열)가 모르면 넌 제대로 모르는 거다. 알겠어??잘 해라.
짝꿍: 넵ㅋㅋ
나: 잘 도와주고 있는데...ㅜㅜㅜ

뭐랄까. 나 말고도 교수님은 다른 학생들이 잘 따라오고는 있는지 일일이 다 확인을 하셨다. 그러니 수업을 못따라가는 아이가 없었다. 이외에도 질문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대답도 다 해주셨다.

돌려까는 말에도 나쁜 의도가 있기 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는 선에서 적당했다.

이를테면,

교수님: 자, 내가 봤을땐 너(해열)만 이해 잘되면 우리 반은 다 이해한거야. ㅋㅋㅋ
나: 엌ㅋㅋ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교수님: 어때. 쟤가 잘 가르쳐 주냐??
나: 엇, 네. 덕분에 감사합니다. 수업 너무 잘 따라가고 있어요...정말..ㅜㅜ
교수님: 사람 됐어? ㅋㅋ
나: ㅋㅋㅋ네 이젠 얼추 사람 같네요 ㅋㅋㅋ
교수님: 아니 또 어디가서 교수가 나보고 사람이 아니라니 사람이 됐다느니 이런 소리하지 말고
나: 무슨 말씀인지 다 아는데요 뭐. 안그래요.

사실 타격도 없고 기분나쁘지도 않았지만

저런걸 쿠션어라고 하던데. 서로 사용해주기만 한다면 그런다면 우리는 좀 더 신사적이 될 수 있다.

혹시 상대방이 너무 순해보인다고 하더라도.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는거니까.


저번 주에는 수업이 끝나고 같이 하교를 하면서 사담도 나누었다.

사람이 많이 앉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다보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것 처럼

이 애랑 대화했던게 내가 어떤 정신으로 무슨 말을 했던건지 기억이 안난다.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것은 내가 이 애의 이름이 작년 겨울부터 반복적으로 떠올랐던 이름이었다는 데자뷰를 겪고

내가 이 학교에 올 경로이긴 했나보다 싶은 생각에 빠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맨날 앉은 키만 보다가 나란히 서서 길을 걷다보니, 이 애의 체구가 문짝만한게, 상당히 이질적이어서 같은 애랑 대화하고 있는게 맞나 싶은 생각에 대화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확실했던 건, 대화가 확실히 주고 받아지는게 느껴진다.


아무리 노력해서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해도 상대방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만큼 전의가 꺾이는 일은 없다.

그러한 태도는 간혹 노력하는 쪽에서 보면 적대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애는 내가 앞머리를 자르고 색을 바꿔서 염색을 해온다거나 사람이 많은 쪽에서 섞여있어도

"어, 근데 &&교수님 수업 듣지 않으세요? 그때 봤어서 아는체 하려고 했었는데 너무 빠르게 도서관으로 들어가셔서 도망가시는 줄 알았잖아요 ㅋㅋㅋ 걸음이 그렇게 빠른 사람 처음 봤어요." 하면서

어느정도의 성의를, '난 너랑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라는 의지를, 그런 종류의 뉘앙스들을 보이면 내가 전에 들어갔던 집단은 괜찮은 집단이 아니었음을 크게 느끼곤 한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은 강의실을 나가던 우리에게

"야, 너, 거기 너네 둘. 너(해열)는 얘한테 고마우면 어떡해. 커피 한 잔 사줘야겠지? 그리고 너!(짝꿍) 너는 얘한테 오늘 가는 길에 꼭 커피 얻어먹어라." 라면서 당부를 하셨다.


태어나서부터 빚지고는 살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안그래도 전에 몇 번 커피를 사준다고 해도 그 애는 교수님 앞에선 "아유, 오늘 비싼거 얻어먹어야죠" 라면서도 뒤에서 내겐 받아먹을 정도의 친절은 아니었다며 한 번 회피했다.

그런데 우스웠던 것은 같이 학식을 먹었던 날이었다.

나: 학식 먹어본 적 없죠? 오늘 마라샹궈 나오는 날인데, 이거나 같이 먹죠.

짝꿍: 오. 맞아요. 저 학식 한 번도 안먹어봤어요. 어때요? 맛있나요?

나: 건강한 맛이긴 해도 많이 퍼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ㅋㅋ근데 마라샹궈는 드세요?? 남자면 싫어하는 경우도 많아서 싫으시면 다른 메뉴도 많아요!

짝꿍: 마라탕?은 한 번 밖에 안먹어보긴 했는데 저도 먹어볼래요.


이렇게 가놓고 그 애는 학생 코드를 만들지 못해서 나의 계정으로 할인받고 내 카드로 한 번에 결제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마라샹궈가 정말 맛이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앉아놓고 보니까 정말 무슨 대화를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조용히 밥만 먹었는데, 그건 그거대로 그림이 정말 어색했다.

맛 없는 샹궈가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지 구분이 안되었다.


그 애는 먹고 나오면서 샹궈가 맛있다곤 했지만 내가 이전에 재수학원에서 급식으로 먹었던 샹궈보단 재료도 부족하고 맛도 없었다고 말하기엔 사회성이 떨어져보일까봐 "아. 커피 사준다놓고 학식이나 사줬네요. 다음에 제가 학식 말고 제대로 된 점심이나 사줄게요. 아~~ 근데 샹궈 저렇게 하는거 아닌뒈“ 라고 둘러댔다.



우스웠던 것은, 그러고 나서 바로 옆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그 애가 샀다.

사실 학식으로 빚 청산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애가 학식 값을 억지로 보내주면서 빚은 초기화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내가 커피를 얻어먹은 게 되어버렸다.

그 철저한 계산을 그 애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ㅋㅋ왜 돈을 보내준다는데도 막으세요." 이러는걸

앞에서 그렇게까지 권유하는 상대방에게 배려하겠답시고 막는 것도 자존감 낮아보일까봐

"어휴..이번만이에요." 하면서 받아버리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한 번의 빚 청산으로 커피 한 잔 사주고 매주 한 번 있는 계측학 수업에서 끝나야 했을 그 사무적인 관계가

그렇게 단칼에 잘려지지 않았으므로

밖에서 인사를 하거나 수업때 중간 자리에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을 수도 있게 되었고


그런식으로 이제 나도 친구가 생긴건가. 이제 나도 평범한 일반인 처럼 스몰 토크라는 것도 해본 건가. 방어기제따위 벗어 던진 평균정도의 자존감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 건가. 이제 나도 정말 사람 구실을 하게 되는건가 라는 희망을 가져볼 수도 있게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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