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언제부터 빵이었을까?
빵, パン, Pão, Pain, Pane, Pan 그리고 B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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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설렘은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일본 여행에서 내가 마주한 가장 큰 기쁨은 다름 아닌 '빵'이었다. 편의점부터 동네 슈퍼마켓까지, 어디서든 맛있는 빵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에게 작은 축복이었다.
빠~~앙, 정말 빵은 못 참지...
어쩜 이리도 귀여운 이름을 누가 지어줬을까?
이름만 불러도 식욕이 돋는다.
<너 이름이 뭐니?>
초등학교 5학년, 할머니와 함께 만들어 먹던 도넛이 내 베이킹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빵에 대한 사랑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집에서도 자주 빵을 굽곤 했다. 그런데 이번 일본 여행에서 문득 깨달았다. 일본어로 'パン'(빵)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말 '빵'과 비슷하다는 것을.
'하~ 말이 되나... 왜 나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일본 여행 중 사실 밥집보다는 거의 매일 맛있는 빵집을 다니며 1일 1빵을 실천했었다. 일본에는 메론빵과 같은 인기 제품뿐만 아니라, 유럽식 빵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형태의 빵들이 정말 다양하고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빵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1543년 포르투갈 선원들이 처음 일본에 빵을 전했다고 한다. 특히 요코하마는 일본 빵 문화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어의 'Pão'([ˈpɐ̃ʊ̯̃])이 지금의 '빵'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포루투갈어로 빵은 Pão은 [ˈpɐ̃ʊ̯̃]로 하는데 들어보면 정말 빵으로 들린다.
일본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빵이 구워지기 시작했으나,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인해 빵의 생산은 금지되었다.
<에도시대, 부활하다.>
에도 시대 후기에 나가사키에서 군인들의 식량 목적으로 빵이 다시 구워지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밥을 지으려면 불을 피워야 하므로, 연기때문에 적에게 위치를 들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볍고 휴대성이 좋은 빵을 다시 만들게 된 것이다.
결국,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빵을 원하게 되면서, 빵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요코하마와 고베 같은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빵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서양에서 전파된 빵 외에도 특유의 일본식 빵이 개발되었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단팥빵이다.
갑자기 "도와줘요. 호빵맨~"의 대사가 떠오른다. 날아라 호빵맨 (1988~)
원작 それいけ! アンパンマン 앙팡맨이 바로 단팥빵이다.
다이쇼 시대에는 독일식 및 미국식 빵 제조 방법이 보급되어 학교 급식에도 도입될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요코하마에 일본 최초의 빵집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빵의 시대가 열렸다. 바로 이곳이 미국인 '굿맨'이 만든 유럽식 빵집이다. 이때 영국인의 클라크가 창업한 요코하마 베이커리에 의해 일본의 식빵 문화가 확산되었다. 당시 요코하마에는 영국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주요 고객이 되어주었다.
<우치키씨 이야기>
일본인 우치키 씨는 클라크에게 모든 빵의 비법을 배워 견습생으로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1888년, 클라크의 은퇴 후 우치키 씨는 '요코하마 베이커리 우치키 상점'을 설립하며 최초의 일본인 경영 빵집이 탄생하였고 클라크에게 배운 유럽식 빵 비법 덕분에 그 가게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관동 대지진과 2차 세계대전의 시련을 딛고 지금까지도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빵집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요코하마의 우치키 상점은 일본 빵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일본의 우치키 빵은 현재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브랜드로, 요코하마에서 맛볼 수 있다. 우치키 빵의 성공적인 이야기를 통해 빵이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결국, 일본의 빵은 맛과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대중들에게 특별한 존재감을 가진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일본의 단팥빵과 크림빵은 독자적인 진화를 이루며 대표적인 일본 빵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인들은 달달하고 부드러운 간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빵의 대중화가 빨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요코하마, 또 다른 위로>
요코하마에 동생들이 10년을 살았는데 우치키빵집을 가본적 없다는 나의 사랑스런 동생들...
얼마전 도쿄로 이사를 해서 요코하마랑은 조금 더 멀어졌다. 이번 요코하마 여행에서 아쉽게도 우치키 빵집을 방문하지 못했지만, 마츠바라상점가의 긴자 니시가와 빵집에서 뜻밖의 기쁨을 만났다. 때로는 계획하지 않은 발견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어주는 법이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빵이 언제 들어왔어?.>
19세기 말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지금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된 ‘빵(pão)’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때는 ‘빵’ 대신 중국 단어를 우리 한자 음으로 읽은 ‘면포(麵麭)’라는 말이 쓰였다고 한다. 또한 현대의 카스텔라와 비슷한 ‘설고’라는 빵도 이 시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타국과의 교류를 통해 ‘빵’이라는 음식 문화가 처음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후 일본의 영향으로 화과자나 양과자 등 제과 디저트가 유입되며 우리나라에서 제과업이 태동했고 1920년대 후반,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를 가공하는 제분 공장 등이 설립되며 본격적으로 빵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치키 빵집을 놓쳤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도쿄가 있잖아.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