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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할머니 돌아가시면 김장할 거야?

할머니 손은 맛손

by 마담말랭

김장, 그 맛깔난 추억의 계절

매년 11월 중순, 추위가 완연해지기 전 우리 집에는 김장의 계절이 찾아온다. 김치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김치, 이미 익혀둔 김치들이 정겹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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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밥상에 김치를 올려놓으니 아들이 물었다.

"엄마, 할머니 돌아가시면 엄마가 김장할 수 있어? 김치 담글 수 있어?"


사실 결혼 23년, 나는 항상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김치만 먹어왔다. 김치가 똑! 떨어졌지만 시댁에 내려가지 못해 마트에서 급하게 사 온 김치를 먹고 후회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들은 또 말했다.

"엄마, 할머니한테 장 담그는 거 배워야 해. 할머니 못하게 되시면 그 맛있는 된장, 간장을 어떻게 먹어?"


요즘 세대들이 장맛을 모른다고? 우리 아들은 다르다. 할머니의 손맛을 기가 막히게 안다.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인지, 사 와서 내 것으로 만든 건지조차 구별해 낸다.


물론 아들 때문에 장을 담그려는 건 아니다.

함께 재료를 다듬으며 음식을 하고 나누고, 그 시간의 가치를 잘 알기에, 잊힐 수 있는 그 맛을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하고 싶어서다.


손길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 흘러가 듯 사라질 수 있는 우리 가족의 맛. 그 순간의 향기를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한다.


지난 김장에는 전주의 외삼촌, 외숙모께서 직접 만드신 젓갈로 김장을 했다. 처음엔 쿰쿰한 냄새에 걱정했지만, 익은 김치는 전라도 특유의 맛으로 변했다.

글을 쓰면서도 입안에 침이 벌써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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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김장의 기록

김장이 끝나면 늘 그렇듯 큰 가마솥에 장작불을 피워 돼지고기 수육을 삶는다. 도마에 툭 올려 칼날이 무딘 부엌칼로 듬성듬성 썰어내 잔디밭에 둘러앉아 먹는 그 순간.

어른들의 주름이 햇살에 깊게 파였다. 그래서인지 김치는 더욱 달고 맛있었다.

마주 앉아 "오래오래 건강하게, 많이들 드시오~." 서로의 건강을 비는 덕담을 건넨다.

흰쌀밥, 고기, 갓 담은 김치로 만드는 행복.

각자 좋아하는 술을 곁들여 이틀에 걸친 노고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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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과 수육

사실 장담은 못하겠다. 아주 나중에 나 혼자 김장을 하게 될지는...

모여서 함께하는 김장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올해 어머니의 일을 거두러 내려가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다.


어머니~ 콩 삶고 메주 쑬 때 내려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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