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워킹맘 Sep 18. 2018

나는 아이 둘의 워킹맘입니다.

워킹맘으로 살 수 있는 이유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아들 둘의 엄마

 : 하나는 7살. 하나는 4살

   둘 다 남자 ㅎㅎ

   셋째를 낳아도 남자일 것이다. 여자는 없다..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12년 차 외식업 마케터 과장

 : 그중 2년은 육아휴직. 그리고 쉬었던 적은 대략 3달 정도뿐.

   외식업. 아는 사람들은 요식업이라고도 하는데 그 단어를 난 싫어한다.

   왠지 조금 저렴해 보이는?

   외식업 마케팅이란. 이 맛있는 레스토랑 혹은 카페, 베이커리 등을 알리는 일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한 번이라도 오게끔. 이미 왔던 고객은 충성고객으로 만드는 거지.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더.


10년 이상 피아노를 치는 반주자

 : 7살 때부터 배운 피아노. 초등 5학년 때부터는 교회 반주를..

   아이 낳고 몇 년 쉰 거 빼면 10년 이상 반주를 하고 있다


주말이면 야간 라이딩을 즐기는 바람을 느끼는 여자

 : 중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처음 자전거를 배웠는데

   그 이후로 자전거=스트레스 해소=상쾌 통쾌 유쾌 존재가 되어 버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면. 아.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이젠 그림을 배우는 꿈꾸는 아줌마

 :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래서 고가의 재봉틀도 샀었고(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았지만. 잘 사용하고 계시죠?ㅠ)

   바이올린도 조금 배웠었고.

   포토샵 일러스트도 혼자 쬐고 했었고.

   지금은 수채 색연필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다.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아들 둘의 워킹맘이다. 


워킹맘으로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조건이 있다 (이건 극히 나에게 맞는. 주관적인)


1. 남편의 내조/외조


연애만 14년(친구로 지낸 시간, 중간에 헤어진 시간 다 합쳐서). 결혼은 10년.

서로 안 지 벌써 약 25년이나 되었네.. 암튼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신랑이 좀 우울해 보인다 싶으면. 여행을 가라고 보내준다든지. 친구랑 캠핑을 가라고 한다던지

나 나름의 노력도 하고.

내가 힘이 없어 보이면 집안일부터. 

자전거 타는 거. 그림 배우는 거. 반주하는 거.

모두 지지해준다..


둘 다 일을 하기 때문에

가사 및 육아 업무는 나눠서 하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 등원은 신랑 몫. (신랑은 유동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재활용도 신랑 몫.

주말의 나와 신랑 저녁식사도 신랑 몫.

청소도 신랑 몫 (로봇청소기가 하지만 로봇청소기에게 청소를 시키기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아이들 반찬은 나의 몫

어린이집 준비물 챙기는 건 나의 몫

밤에 애들 재우기 나의 몫

(내가 하는 게 없어 보이네..)


암튼

신랑이 매우 잘 도와주고 있다.


내가 일을 하게끔 아이들 등원도 맡아서 해주고

업무가 빨리 끝나면 다른 데로 안 세고 집으로 와서 아이들 케어하고.


아이디어도 주고.

출장 갈 때도 짜증내지 않고.

외식업이라 주말 근무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도 잘 이해해준다


그러기 때문에

아이 둘을 키우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2. 친정 가족의 도움


신랑이 아이들 등원을 맡기 시작한 지는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그 전에는 친정 엄마가 

새벽 6시 40분에 우리 집으로 출근

아이들 등원시키고. 오후 3시에 다시 출근. 저녁 9시에 퇴근.


더군다나 첫째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지금은 이해도 안 되지만

1년 육아휴직 후 복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4살 때까지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았다.

(둘째는 10개월부터 어린이집 행)


친정 엄마가 하루 종일 돌봐주고 짐보리 데려가고.

(*짐보리: 문화센터의 3배가 되는 금액을 지불하고 음악과 춤을 배우는.. 약간의 사치가 묻어 나오는 고급문화센터)


그러다가

엄마의 허리가 나가버렸고.

둘째까지 태어난 이후에는

감기 조차 잘 걸리지 않던 엄마가

몇 번의 폐렴에. 급기야 폐암 검사까지 받게 되었다.

(아.. 이 몹쓸 딸 X)


엄마는 파업을 선언했고

나는 이해를 하면서도 왜 이렇게 섭섭하던지

(아.. 정말 나 몹쓸 딸 X네..)

신랑이 급 근무시간 변경을 하고

이모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이모는 우리 아이들 하원시간에 맞춰 와서 우리 퇴근시간 전까지 아이들을 케어한다.


예전에 엄마는

아이들 변 잘 보라고 간식으로 고구마 쪄놓고

집안 청소에. 화장실 청소에. 애들 신발 빨아놓고.

우리 침대커버 때 되면 말리고 빨고.. 

그랬는데


이모는 딱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 + 신뢰관계 이거다.

울 이모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없이 딱 아이들 케어.


근데 이게 참 맘이 편하다


엄마는 아마 너무 잘해주고 싶어서. 더 잘 먹이고 싶어서.

그래서 더 지쳤을 것이다.


암튼.

친정 식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우리 아이들 두고 일터로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나를 워킹맘으로 살 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