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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투덜대라

(날씨가 좋으면) 덥잖아! (날씨가 흐리면) 흐리잖아!

by 마담 히유

프랑스 사람들과 오래 지내다 보면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불평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

처음에는 대체 왜 이렇게 투덜대는 걸까 싶었는데, 이제는 불평이란 그저 그들의 일상 언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날씨가 안 좋으면 도저히 밖에 나갈 수가 없다면서 불평, 날씨가 좋으면 또 더워서 나갈 수가 없다고 불평.

비가 와도 짜증, 해가 떠도 짜증. 파업하면 불편하다고 불평, 안 해도 이래서 나라가 바뀌지 않는다고 불평.

이 정도는 라이트 한 수준이다. 가끔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 싶을 때도 종종 있다.

왜 이렇게 불평불만만 가득할까 하고 생각되지만, '옳게 된 프랑스인'이라면 불평부터 하는 게 맞다.


교통 파업이라도 시작되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긴 하는 걸까?"

하지만 파업이 없으면 또 불만이다. "이래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거야."
존재해도 투덜, 없어도 투덜. 프랑스에서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인지 이런 말도 있다.

Les français ne sont jamais contents
(프랑스인들은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은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항상 불평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하루 종일 얼굴을 찌푸리고 사는 건 아니다. 재미있는 건, 그 투덜대는 와중에도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꽤 평온하게 보인다는 것. 이 정도 되면 마치 이 모든 게 하나의 문화처럼 느껴진다.

가끔 나도 모르게 그 리듬에 물들어 "그러게, 요즘 나라가 난리네" 하고 맞장구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불평이 오히려 사람을 편하게 만들고, 그 대화의 물꼬가 되어 어느새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특히 관공서에 갈 일이 생기면, 프랑스인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끝이 안 보이는 대기 줄, 복잡한 절차, 답답한 시스템에 대한 끝없는 불만. 다들 '이게 나라냐'는 표정으로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와중에도 공무원들과, 혹은 같이 줄 서있는 사람들과 작은 농담을 주고받는 여유는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불평을 많이 하면서도 정작 그 불평거리를 바꾸려는 의지는 약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들의 불평은 단순한 짜증이나 불만의 표현이 아니라, 그들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그리고 때론 삶에 대한 애정 어린 개입이라는 것을.


사실 그들도 안다. 지하철 파업이 불편해도, 그 파업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라는 걸.

아무리 관공서 절차가 복잡해도, 그걸 인터넷으로 다 바꿔버리면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한숨을 쉬면서도, 묵묵히 살아간다.


그저 투덜대면서 마음을 다스릴(?)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인들이 원하는 건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불평할 거리가 아닐까?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대체 뭘 얘기하며 하루를 시작하겠나.
카페에 앉아 친구랑 한 시간 동안 하소연할 주제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그건 너무 비(非) 프랑스적인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불평이 사람들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든다.


나도 프랑스 친구들과 아직 어색할 때, 날씨나 교통 얘기 같은 가벼운 불평으로 대화를 시작해 금세 깊은 수다로 이어졌던 기억이 있다.

"너도 오늘 그 버스 탔어? 아 진짜 말도 안 되지 않아?"
"맞아! 기사 아저씨가 아무 말도 없이 10분을 멈춰 있더라니까!"

마치 불평이 프랑스식 아이스브레이킹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런 대화는 순식간에 아이 교육, 부동산, 연금 개혁 같은 무거운 주제로 확장된다.

항상 어떻게든 불평할 거리를 찾아내는 그들이지만, 그렇다고 늘 부정적이고 "불평만"하는 수동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정말 움직여야 할 상황이면, 다들 주저하지 않고 나가서 시위를 하는 이곳.

불평은 해도, 정작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손을 내밀고, 낯선 사람에게도 의외로 따뜻하다. 불평의 이면에는 관심과 애정, 그리고 나름의 공동체 의식이 숨어 있다.




가끔 내가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은 뒤, 프랑스 친구들에게 꼭 하는 농담이 있다.

"나 이제 프랑스인 다 된 것 같지 않아? 불평만 잔뜩이잖아."

그 말에 기분 나빠하는 프랑스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다들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프랑스인 되려면 이 정도 불평은 기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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