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무사함을 위한 작은 행동
프랑스에 살면 자주 겪는 일이 있다.
마트에 가서 입구를 지나려는데 경비 아저씨가 갑자기 가로막으면서 가방을 보여달라고 요청하는 일.
당황스러운 일이다. 나는 도둑도 아니고, 뭘 숨긴 것도 없는데 갑자기 가방을 보자니? 심지어 왜 나갈 때가 아니라 들어갈 때?
속으로 "왜?" 하는 억울한 마음도 들고, 그 순간 괜히 얼굴이 붉어졌을 수도 있겠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시선 아래 가방을 여는 일, 누군가 내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듯한 불쾌함이 스며든다.
게다가 누군가가 내 물건 하나하나를 훑어볼 때, 마치 내가 잠재적 범죄자라도 된 듯한 기분.
한국이었으면 "사람을 뭐 로보고!? 매니저 불러!"를 시전 했을 바로 그런 상황.
하지만 알고 보면, 이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 산다면 관공서나 마트, 백화점, 박물관, 콘서트홀 등 여러 공공시설에서 가방 검사는 매우 일상적인 절차다.
어떤 경우에는 금속 탐지기나 보디체크까지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사람이라면 조금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아니 공항도 아니고 이게 뭐지?” 싶었다.
왠지 의심받는 느낌이 들고,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사실이 ‘가방 검사’는 단순히 나를 겨냥한 개인적인 행동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비원이 대충 훑어보고 “Merci, bon journée!” 하고 넘어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치 에스컬레이터 타듯, 식당에서 손을 씻듯 당연하게.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아주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가방을 열라는 말이 떨어지면 별말 없이 가방을 열고, 필요한 경우엔 지퍼까지 스스로 열어 보여준다.
그저 이곳의 일상, 공공의 안전을 위한 보편적인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니,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1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2015년 사를리 엡도 Charlie Hebdo테러사건.
나는 그 일이 일어나던 때, 파리 시내에 있던 내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보던 중이었다. 집중해야 하는데 밖에서 시끌벅쩍한 소리가 들리고 경찰차가 미친 듯이 지나가고 가끔 쿵 하는 이상한 소리도 났더랬다. 시험을 치르는 중이라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다시 핸드폰을 켜었을 때는 온갖 언론의 알림과,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메시지들이 잔뜩이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는 이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국가 전반에 걸쳐 보안이 매우 강화되었다.
그 사건 이후 가방 검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면 막자”는 공감대 속에서 이뤄지는 예방적 조치가 되었다.
그러나 약 한 달 전에, 이 작은 약속들이 더더욱 무겁게 다가오게 된 사건이 있었다.
2025년 6월, 프랑스 동부의 한 중학교에서 15살 학생이 가방검사를 하던 교육 보조원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평범했던 등굣길이 순식간에 비극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을 테다.
심지어 몇 달 전에는 낭트에서 한 15세 학생이 동급생 4명을 흉기로 찔러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치는 사건이 있었고.
1월에는 파리 외곽에서 14세 학생이 마체테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서 학교에 흉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소지품 검사를 강화하라고 지시했고, 등교시간 가방 검사가 더 철저해졌다.
기분 나빠할 필요도, 민망해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관공서든, 쇼핑몰이든경비원이 가방을 열어달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지퍼를 열고 잠깐 눈인사를 하면 된다.
나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저 “모두를 지키기 위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에게 그건 공공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협조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그 상황이 전혀 불쾌하지 않을뿐더러, 가방을 여는 손길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어쩌면 이건 단지 가방 검사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타지에서 살아갈 때, 혹은 서로 다른 문화 안에서 부딪힐 때 느끼는 작고 큰 불편함들 —
그건 때로, 우리가 너무 ‘자기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 있고 내가 불쾌하게 느낀 말이나 행동이, 그들에게는 무례의 의도조차 없었던 일일 수도 있다.
이해는 공감의 시작이고, 공감은 결국 나를 더 가볍게 만든다.
이제 나는 가방을 열 때마다,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보다는, ‘아, 오늘도 모두가 안전하길 바라는 거구나.’
조금은 무뎌지고, 조금은 단단해지고, 또 조금은 넓어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