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왜 하냐고요? 휴가 가려고요. 휴가는 왜 가냐고요? 일 하니까요.
프랑스 사람들과 함께 일해보면 느낀다.
이 사람들은 진심으로 "일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믿는다.
단순히 멋진 글귀가 아니라, 실제 프랑스인들의 삶의 태도다.
출근 첫날부터 언제쯤 휴가를 쓸 수 있는지 계산하는 것은 물론, 본인 휴가 스케줄에 맞춰서 입사시기를 미루기도 한다. (인사과도 당연히 이해하는 눈치다.)
일이 바빠도 휴가철엔 사무실이 텅 빈다. 아니 사실 휴가철이기에 바쁜 것이 더 맞는 말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갑자기 두 배, 세 배의 업무량을 감당하게 되기 때문. 하지만 다들 괜찮다.
곧 내 차례니까
프랑스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달력을 펴서 공휴일이 어떻게 떨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5월처럼 공휴일이 많은 달부터 확인하는 것은 프랑스의 "국룰"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괜찮은데? 샌드위치 연휴 만들기 딱이야!"
회사 눈치? 그런 거 없다. 오히려 회사에서 권장을 하거나, 회사를 닫기도 한다. '공휴일 + 휴가'는 거의 국가적 기본권 수준이다.
프랑스 회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 몇 가지가 있다.
"Courage, c’est bientôt les vacances!" (힘내, 곧 휴가잖아!)
"Bon courage pour la reprise! "(복귀 힘내!)
휴가가 코앞이면 집중력이 바닥을 친다. 이미 몸은 해변에 가 있고, 정신은 알프스 어딘가로 떠난 상태. 하지만 오직 휴가만을 생각하며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낸다.
휴가 다녀온 직후에도 이 여운은 굉장히 오래간다.
"다시 적응하려면 좀 걸릴 거야. 아직 휴가 모드라서…" 이 말을 휴가 다녀온 지 2주 후에 듣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동료들과 휴가 떠났던 이야기를 하면서 그다음 행선지를 정하고는 한다.
일터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은 일하려고 있는 게 아니야.”
그래서인지 퇴근 후나 휴가 중엔 정말 너무너무 급한 일이 아닌 한, 업무 연락을 하지 않는다. 주말에 메시지 한 번 잘못 보내면 그땐 '워라밸 테러범'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매니저면 다르지 않을까, 책임감이 있으니 그만큼 휴가 때도 종종 일을 해야겠지'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매니저도 똑같다.
내 매니저는 본인이 휴가를 떠나기 전에, 꼭 본인과 같은 직급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백업을 요청하고 간다. 물론 그 동료들이 내 매니저나 내 업무를 숙지하고 있지는 않기에, 너무 복잡하지 않은 서류 재가 정도의 업무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매니저는 우리에게 휴가를 쓰도록 권장하며 말했다.
"휴가는 너희들 좋으라고만 쓰는 게 아니야. 너희가 푹 쉬어야 생산성도 올라간다고. 결국 회사를 위해서 쓰는 것이기도 하니까, 회사 일 생각하지 말고 푹 쉬고 와. "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전에 다니던 한국 회사에서 내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어 휴가지에서도 업무용 노트북을 꺼내 통화를 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아직 "한국물이 덜 빠진" 나에겐 이런 문화가 너무 어색했다.
물론 이직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완벽 적응 상태다 (?)
휴가는 물론, 주말, 퇴근 후, 내 회사 핸드폰은 가방 속에 방치되어 있다.
급한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저녁 6시에 메일을 보내나, 다음날 보내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차피 상대방도 내 메일을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
그 시간에, 차라리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너무 여유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삶에 일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 친구, 자기 시간, 그리고 아주 중요한 휴가.
물론 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지내기 위해서 돈이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일을 한다.
프랑스 학교는 방학이 많다. 여름방학은 물론, 봄방학, 부활절방학, 만성절(뚜쌍 Toussaint) 방학, 연말 방학 등등... 6주마다 2주의 방학이 주어지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너무 학업 부담이 될까 봐."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는 수요일에 수업이 없다. 일주일 내내 수업을 듣는 것은 아이들에게 너무 학업 부담이 된다는 것이 이유. 토요일까지 수업을 들었던 "라때 그 시절" 한국인인 나는 그저 어이가 없다.
아이가 없을 때에는, 그저 이 수많은 방학들은 "출퇴근 차 안막히지만, 놀러 가기에는 비싼 시기"일 뿐이었지만,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이들이 방학이라는 것은, 누군가 내 아이들을 봐줘야 한다는 것. 조부모님이 있으면 상황은 편해지지만, 어찌 됐건 내 아이들인데 내가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연유로, 부모들이 이직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 1순위는 "연차 / 월차 수"이다.
연봉 올리는 거 좋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무슨 소용일까?
그래서 그들은 아이들이 방학일 때 같이 휴가를 낼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다.
내 시누이, 친구 등등, 수많은 주변 사람들이 이런 일자리를 일부러 찾아갔고, 매우 만족한다. 프랑스는 이직으로 연봉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그들은 "한동안은" 이직을 할 생각이 없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
프랑스의 삶은 겉보기엔 낭만적이지만 사실 행정도 느리고, 파업도 많고, 물가도 비싸고, 날씨도 변덕스럽다.
그 속에서 사는 이들에게 휴가는 '호사'가 아니라 '필수'다. 어디든 떠나야만 살짝 삐딱해진 정신을 다시 고르고, 길가에 긁힌 차를 잊고, 끊이지 않는 행정 서류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휴가는 단순한 쉼이 아니라, 다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충전'이자 '정신적 방어막'이다.
그러니 일이 힘들수록, 떠나야 한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다 이거, 여름에 떠나려고 하는 거야.' 운전도, 출근도, 이메일 더미도, 회의도...
결국 다 여름에 바닷가에서 맥주 한 잔 하기 위한 전초작업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버틸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은 삶을 위한 도구일 뿐, 삶 그 자체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