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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일단 밖으로 나가라

햇살 아래서는 모든 게 조금 더 괜찮아진다

by 마담 히유


"테라스 자리 있어요?"

프랑스인들이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즐기는 건, 단순한 좌석 선택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파리지앵의 생활 방식이자 철학이다.

햇살 아래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 마치 삶이라는 연극을 관람하듯, 조용히 무대 바깥에서 관찰하는 것.

그리고 물론, 이 모든 건 따스한 햇살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로 유학을 오기 전, 한국에서 프랑스 친구들을 몇 사귄 적이 있다.

그들은 해가 날 때면, 카페 테라스에 앉아 광합성을 즐기곤 했다. 해가 났으니 꼭 테라스에 앉아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아무리 뜨거운 햇빛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해가 뜨면 뜨는구나, 비가 오면 오는구나, 흐리면 흐리구나 하고 그러려니 살아온 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오늘 비가 와도, 하루이틀 지나면 비가 그치고 날이 갤텐데, 왜 굳이 저러는 걸까?


프랑스에 산지 13년 차, 나도 이젠 그들처럼 해가 뜨면 일단 밖으로 나가고 본다.

조금 쉬고 싶으면,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맑은 하늘을 만끽한다.




해가 뜨면, 일단 밖으로 나가라.


이 말이 뭔가 거창한 철학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다.

프랑스에서 살다 보면, "해가 뜬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잿빛 하늘, 흐린 날씨, 갑자기 내리는 비, 그리고 그 와중에 우산 없이 걷는 사람들.

비가 얼마나 자주 내리는지, 웬만큼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아닌 이상은 그냥 "미스트"정도로 치부하고 우산이 있더라도 굳이 안 쓰고 걸어 다닌다. (이 버릇이 들어 한국에서 비가 조금 오는데 맞고 다녔더니, 다들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프랑스에서 하늘이 맑고 햇살이 따사로운 날은 일 년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여름은 살같이 말 그대로 뜨겁고, 나머지 계절은 거의 회색빛이다. 의사들은 항상 하루에 10분 만이라도 햇빛을 쬐라고 권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루에 10분도 해가 뜨지 않는 날들이 많다. 그래서 의사들도 그냥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고 비타민 D를 처방해주곤 한다.



그래서일까, 오늘 해가 따스하게 떴다 싶으면, 회의고 뭐고, 청소고 뭐고 일단 나간다. 만약 당신이 해가 떴다는 이유만으로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 같은 묘한 강박 아닌 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건 당신도 반쯤 프랑스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딱히 뭘 해야겠다 정한 게 없어도 일단 나가서 정하는 게 국룰이다.

햇살이 좋으면 카페테라스 자리는 앉을 곳 없이 만석이 되고, 근처 공원 잔디밭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와인 한 병, 바게트 한 조각, 책 한 권이면 그게 곧 하루의 계획이 된다. 무언가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앉아서 해를 받는 것 자체가 프랑스인들에겐 충전의 행위다.




햇살 아래서는 모든 게 조금은 더 괜찮아진다.

불어난 공과금 고지서도, 행정 서류 더미도, 지하철에서 당한 어깨 밀침도 햇살 아래에선 잠시 잊힌다.

해가 떴을 때 밖으로 나간다는 건, 그냥 날씨를 즐기는 게 아니라 현실은 잊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가 떴다면 일단 나가라.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그 햇살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리고는 우리의 일상 속으로, 조금 더 밝은 마음으로 돌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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