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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잃을지는 알지만, 무엇을 얻을지는 알 수 없다

<프랑스에는 워킹맘이 없다>

by 마담 히유

나는 소위 워킹맘으로, '어린애를 남한테 맡기고 일터로 나가는 매정한 엄마‘다. 심지어 첫째가 6개월 때 이직을 한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엄마’다.

한국에는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는 보육시설에 맡기지 말고 엄마가(사실 왜 꼭 엄마인진 모르겠다.) 돌봐야 한다는 '3세 신화'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오래 휴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를 알기로서니, 집에서 아이만 돌보는 생활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출산휴가가 끝나는 3개월 무렵에 복직하는 워킹맘이 많았고,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다들 그렇게 하길래 나 역시 당연히 3개월만 아이와 있을 것이라 대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첫째 임신 중에 한국에 놀러 가서 친척 어른들을 뵈러 다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는 얼마나 데리고 있을 예정이냐'는 질문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내가 생각하던 대로 대답했다.

그리고 친척 어른들은 경악했다. "안 그러면 잘리나?" 같은 질문은 기본이요, 놀란 눈빛과 안쓰러운 표정으로 남편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남편... 일 하지?"라고 묻는 분도 있었다.

"아뇨 프랑스에선 이런 거로 자르면 불법입니다."

"네, 남편 저보다 훨씬 잘 법니다"

이렇게 답하면,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결국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럼 왜 애를 그렇게 일찍 남한테 맡겨? 엄마가 봐야지."


이 반응을 보며, 한국 기성세대에게 ‘3세 신화’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출산 후 바로 복직하는 엄마도 있고, 1년 넘게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3년까지 쓸 수 있다.) 물론, 한국과는 달리 육아휴직 기간 동안 급여가 보장되지 않는 것도 프랑스에서 이른 복직이 흔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엄마의 삶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프랑스 여성들의 인식이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프랑스의 여성 고용률은 실제로 높은 편이다. 프랑스 통계청 (INSEE)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15세부터 64세의 여성 고용 비율은 65.6%로, 남녀 전체 평균인 68.1%와 큰 차이가 없다. 이를 이를 보면 프랑스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고용률 격차가 비교적 적은 편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직 결심을 한 것을 밝혔을 때, 남편을 제외한 주위 사람들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직'이 걸려있기 때문.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Tu sais ce que tu perds mais pas ce que tu gagnes"

"네가 무엇을 잃을지는 알지만, 네가 무엇을 얻을지는 알 수 없다. “


사실이다. 나는 이직을 함으로써 내가 무엇을 잃게 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7년 동안 다닌 회사는 이제 너무 익숙해져,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업무가 생겼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이미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순간, 이 모든 익숙함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직을 한다고 해도, 새로운 회사의 분위기나 업무 스타일이 나와 맞을지는 가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을 잃을지는 분명했지만, 무엇을 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어려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면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위해서 이직을 했다.





이직을 통해 빠르게 연봉을 올리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지만, 사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어느 회사든 좋은 사람도 있지만, 소위 말하는 ‘빌런’도 있기 마련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빌런 중 한 명은 언젠가 나에게 "네가 어디 가긴 어딜 가? 외국인이 마케팅을 한국회사 말고 또 어디서 해? 너도 결국 여기에 눌러앉을 거야"라고 '가스라이팅'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그건 당신 이야기지.' 나는 그 사람과는 달리, 좋은 조건으로 이직해서 증명해 보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7년 동안 같은 회사에 있다 보니 점점 안주하게 되었고, 늘 ‘이직해야지’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난 외국인인데… 보통 마케팅 업무는 현지인을 뽑지 않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매니저급을 제외하면 나는 유일한 외국인 마케팅 실무자였다.

지금이야 '나는 현지인과 동등한 수준, 아니, 그 이상의 마케팅 업무를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자기 의심에 빠져 있었고, 내심 '나는 사실은 한국 회사의 버프를 받은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혹시 그 사람 말이 맞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천천히 나를 잠식해 갔고, 결국 스스로 내 한계를 정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늦기 전에 나 자신에게 증명해야 했다. 내가 이직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도 그 사람이 말한 대로 '한국회사의 한국인'으로, '이직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나는 첫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약간의 '휴식 기간'이 생겼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실천에 옮길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나는 천천히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감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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