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워킹맘이 없다>
프랑스에는 워킹맘이 없다
바게트 (프랑스어: baguette) : 길고 얇은 막대기 모양의 프랑스 빵.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특징이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길고 가느다란 형태의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예: 젓가락, 지팡이 등).
바게트로 말할 것 같으면, 프랑스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로, 프랑스인의 일상생활과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프랑스 국가 통계청 (INSEE - Institut National de la Statistique et des Études Économiques)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29,995개의 빵집이 프랑스에 존재한다. 또한, 프랑스의 제빵 제과 기업 연합 (Fédération des entreprises de boulangerie pâtisserie)에 의하면 매년 프랑스에서만 약 100억 개의 바게트가 판매된다고 하는데, 이는 하루 평균 약 2,740만 개에 해당된다. 프랑스 인구가 약 6,8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프랑스에서는 대략적으로 1인당 하루에 바게트 반개정도를 매일 먹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듯, 프랑스에서도 빵 소비량 감소에 따라 빵집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게트는 여전히 프랑스의 문화, 정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물가 상승을 이야기할 때는 바게트의 가격이나 무게 변동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바게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와 제작 방법에 대해서도 일정한 기준을 제시할 정도로 바게트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2022년 11월 30일, 프랑스의 전통 바게트 제작 기술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을 만큼 중요한 프랑스 문화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왜 이게 2022년이 되어서야 겨우 유네스코 등록이 된 거지? 하는 의문이 있다.)
이와 같이 바게트는 프랑스인의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중요한 문화의 상징이다.
그런 바게트를, 한 한국인 여자아이가 팔게 되었다. 심지어 파리에서!
내 입으로 말하기는 살짝 부끄럽지만, 나는 프랑스에 온 첫 해에는 다들 놀랄 정도로 불어를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면서 이미 불어를 어느 정도 익혔고 (비록 실망하고 휴학을 했었지만. 이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을 쓰겠다.) 휴학생 때는 프랑스 문화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짜로 듣고 싶은 만큼의 수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었던지라 마음껏 불어 공부를 했던 것. 덕분에 복학했을 때의 나는 학과에서 "불어 꽤 잘하는 애"로 통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 막 도착했을 때도, 다들 내가 하는 불어를 보고는 '프랑스 땅을 밟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외국인이 이 정도로 말하는 게 가능하냐'며 나의 '재능'에 감탄하곤 했다. 나는 그냥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 으쓱하면서 고마워!라고 대답하곤 했다. 맞다. '재능인 척 사기 치면서 즐겼다'. 환경이 내 프랑스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불어를 잘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그 자만심은 유학 1년 차에, 녹음한 강의를 듣고 또 듣고, 새벽 4시까지 울면서 과제를 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전형적인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빵집 아르바이트도 쉽게 생각했다. 뭐 대단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빵 파는 일인걸! 이미 한국에서도 아르바이트해 봤잖아! 하지만 생각만큼 간단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인이 한국의 떡집에서 일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곳에는 백설기, 인절미, 호박떡, 송편, 찰떡, 시루떡, 꿀떡, 흑임자떡, 술빵 등 다양한 떡들이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떡 이름부터 모두 외우는 것이다. 이름만 외우는가? 문화도 알아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아기 백일에 백일떡으로 백설기를, 이사할 때는 시루떡을 돌리는 것이 초등학생도 알 만한 '상식'이지만, 외국인에게는 습득해야 하는 '지식'이다. 물론 '술빵은 떡인데도 불구하고 왜 빵이라고 부르는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다들 '술빵은 술빵인걸'안다. 하지만 외국인은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다. 그냥 외워야 한다.
프랑스에서 빵은 문화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는 외국인이다. 제 아무리 언어를 하더라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이 나라의 문화를 다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빵집 알바를 시작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료 하나와 단 둘이서 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둘이서 수다를 떨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던 중, 한 남자가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옆에서 진열대를 정리하는 동안 동료는 그 남자의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는 그 근처에 있던 나에게 "xxx좀 가져다줘." 하고 부탁을 했다. "뭐라고?" 동료가 다시 말을 해주었으나 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뭐라고? 다시 한번만 말해줘." 나는 당황하면서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때,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벌레 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동료가 말한 단어가 깔끔하게 들리지 않았는데, 그 말만큼은 귀에 쏙 들어왔다. "Elle est sourde ou quoi 저 여자 귀먹은 거야 뭐야"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정확히 어떻게 동료가 아니라 내가 계산을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느낀 모멸감과 충격에 휩싸였던 감정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뿐. 계산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을 했다. 이 남자에게 한마디를 해야 하나, 화내면서 한국어로라도 욕을 쏟아부을까, 웃으면서 욕을 할까. 어쩌지. 나는 결국 무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계산을 도왔고, 남자는 떠났다.
항상 친절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던 나에게는,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동료가 다시 돌아오자 눈물이 쏟아졌다.
당황한 동료는 저 사람이 단순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런 것에 하나하나 신경 쓰면 안 된다고, 예의 없는 미친놈이라고까지 하며 한참 동안이나 나를 달랬다.
지금이라면 그런 말에 깊이 상처받지도 않았을 테고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동양 여자아이는 더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와 친해진 동료 하나는 나를 보며 Baguettes(빵) 말고 다른 Baguettes (젓가락)나 파는 게 더 어울린다며 농담을 하고는 했다. 친한 사이인지라 투닥투닥 장난을 쳤지만, 한 편으로는 '그게 맞을지도' 하고 생각을 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 이렇게 힘들게 살았어요,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 시절엔 그저 우울감이 온몸에 퍼져있던 시기인지라 더 크게 다가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 남자는 단순히 내가 외국인인 줄 상상도 못 했을 수도 있고, 동료 말대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뭐든 꼬아서 보이고 들렸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한 발짝 물러서서 되돌아보니, 사실 이 모든 일은 내가 프랑스 문화를 잘 몰랐고, 언어 실력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남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크다. 무엇보다도, 그 시절의 나는 단단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성장했고, 내 생애 그 어느 때보다도 내면이 단단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의 나는, Baguettes (젓가락)가 아닌 Baguettes(빵)를 팔았던 그 시절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