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살아가는 한 초보 엄마의 이야기
나는 2013년에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프랑스 땅을 처음 밟았다.
처음 시작할 때의 계획은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 학사를 마치고, 석사를 프랑스에서 석사를 하면서 박사를 하든 아니면 그대로 취직을 하든 대충 상황에 맞춰서 결정을 해보려고 했다. 뭐가 됐든, 나의 머릿속에는 한국을 뜬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가 외국에서 완전 자리를 잡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안) 한 사람이니까.
그런 내가, 어쩌다 보니 파리 소르본 대학에 편입을 했고, 어쩌다 보니 학사를 마치고, 어쩌다 보니 비즈니스 스쿨에서 석사를 마치고, 어쩌다보니 회사를 다니고,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고, 어쩌다 보니 햇수로 13년째 프랑스에 살고 있다. 나에게 인생은 항상 '어쩌다'의 연속이었다.
요즘 그 '어쩌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인생이 나를 끌어주는 대로 대충 끌려온 인생인데, 한 번 만이라도 내가 주도권을 잡아보는 게 어떠겠냐는 생각이 든다.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끌어가는 삶, 멋지지 않은가.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워킹맘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 아예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든 지는 좀 됐는데, 항상 시작하기가 두려웠다. 블로그 운영을 실패한 경험이 조금 있기 때문. 꾸준하게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일단 그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포기한 꿈'이지만, 사실 나는 어렸을 적에는 번역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 꿈을 이야기하고 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좋아하는지라 나도 항상 멋진 글을 쓰고 싶었는데, 나에게는 창작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번역가가 되고 싶지 않았나 싶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대신'쓰고 싶었다. (물론 지금은 이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번역은 단순히 문장을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것, 그 이상의 영역이다.)
책을 읽으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하는 철없는 생각에 시작된 '장래희망'이었다. 그 시절에는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좋았다. 그들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이해도 잘 못하는 주제에 어려운 책을 읽으려고 애쓰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하나같이 하는 말은 "너 그때 책 엄청 많이 읽었잖아"이었다. 다들 그게 보였나 보다. 정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었다. 어려운 책들이라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그냥 계속 읽었다. 지적 허영심이 참 심했던 듯하다. (그 책들, 30살 넘어서 다시 읽었다. 지금 읽어도 쉽지 않다.)
항상 번역가가 꿈이라고 얘기하고 다녔으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번역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비록 재능이 없을지언정.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했고 단 한 번에(!) 성공했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내가 이러한 상황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한 적이 있던가? 단연코 없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15년 뒤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인생을 아주 길게 살아본 건 아니지만, 33년 동안 겪은 바로는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아무리 구불구불하고 힘들어 보여도, 결국 나는 어딘가로 전진하고 있었다. 마치 기차처럼. 그리고 '어쩌다'보면 항상 어디엔가 도착해 있었다. 하루하루 '어쩔 수 없이 대충 열심히 하는 척하며 사는 삶'이었고, 남들을 따라 올라탄 기차에 탑승해 어딘가에 도착하면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내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렇게 30년을 훌쩍 넘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남의 목적지를 따라가기보다는 내가 갈 곳을 직접 정해볼까 한다. 책도 읽고, 다른 승객들도 구경하고, 환승도 하고. 가능하면 조종석에도 앉아볼 것이다. 내가 어떤 역에서 잠깐 쉬어갈지, 또 나중에는 어떤 종착점에 갈지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된다.
그래서, 이제부터 천천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볼까 한다.
15년 뒤에, 내가 쓴 글들을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