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글을 쓴다고 누가 알아봐 주는 건 아니다. 바로 마케팅 제의가 와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글을 써본 사람은 안다. 별일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꽤나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라는 것, 쓰고 나면 뿌듯하지만 '나 혼자 이러고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일 이런 생각 없이 글을 쓰고 있다면 정말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부럽다.
주 1회씩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일 년 반, 주기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 자주.
우연한 기회에 강원국 작가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분이고 책도 감명 깊게 읽은 터라 큰 기대를 하고 갔다. 불과 1m 앞에서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어찌나 몰입이 되던지.
강원국 작가는 글을 쓰면 좋은 점을 특유의 편안한 어투로 말했다. 글쓰기의 끝은 책 쓰기라며, 언젠가는 꼭 책을 쓰라고 하시는데 내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언젠가 쓸 거라면 지금부터 준비하면 조금은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정말 숨도 쉬지 않고 알려주셨다. 12가지의 글 쓰는 비법, 지금 다시 옮겨본다.
1. 말해보고 써라.
8시간 동안 말할 수 있으면 책을 써도 된다. 내용에 관해 몰입해서 찾고, 그것만 생각하고 말을 하다 보면 정리가 된다고 하셨다. 말하다 보면 예전 일도 생각나고 멋진 말도 나온다니 좀 더 몰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청와대를 나와서 6년 후에 쓴 책인데, 다른 사람들이 청와대 생활에 대해, 대통령에 대해 물어보니까 쓰게 된 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은 결국 공통적인 3~40개 질문이다. 그 질문들에 답하다 보니 점점 내용이 추려지고 재미있어졌다고 한다. 비유, 근거가 늘어나고, 분량이 늘고 기억이 점점 더 나더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안 주면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자꾸 말을 들어줘야 한다.
실제 집필은 40일 만에 끝냈지만 사실 5년간 쓴 것과 다름없다.
2. 질문을 100개 할 수 있으면 책이 한 권이다.
자서전은 나에게 궁금한 것이 100개가 나오면 쓸 수 있다. 질문은 모르는 걸 밝히는 것이며, 남과 생각이 다른 것이다. 남이 하는 말을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나도 내 생각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라. 그래야 내 생각이 생기고 책을 쓸 수 있다.
3. 책을 쓰겠다가 아닌 A4 5장을 써라.
처음부터 책을 쓰기는 어렵다. 글쓰기도 어렵다. 글을 쓰지 말고 한 문장을 써보고 그걸 불려 나가라.
일단 써 놓으면 자꾸 살을 붙이고 궁금해지는데, 뭘 해도 관련되는 게 생각나고 눈에 보여서 결국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4. 지식으로 써라.
최대한 많이 찾아서 그걸 요약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마치 곰탕을 끓여서 계속 졸이면 진국만 남듯이.
유시민 작가가 잘하는 게 짜깁기다. 하지만 남이 다 아는 것은 넣지 않는다. 흔한 지식과 특별한 지식의 차이점이다. 지식을 해석하고, 쉽게 풀이해 전달한다. (코멘트 능력, 한 줄 평) 이것은 메모 독서로 기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 경험으로 써라.
누구나 겪은 일은 나이만큼 있다. 단 재미는 있지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자기 경험에 의미부여를 해야 한다. 생각할 점과 시사점을 붙여라. 이 역시 좋지만 개인의 이야기다.
여기서 인용을 하면 내 이야기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을 할 수 있다. '다른 누구도 같은 경험을 했다', '이런 이론, 학설이 있다' 등등...
이것도 메모 독서를 꾸준히 하면 인용할 거리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6. 목차로 써라.
쓰고자 하는 분야의 책 50권의 목차를 프린트해 보면 이미 다 써놨구나, 나도 쓰겠네, 란 생각이 들 거다. 거기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것이 밑반찬 같은 것이다.. 원론, 개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책에는 없는데 그 책에만 있는 한 가지의 내용을 모아서 목차를 쓰면 된다.
7. 함께 써라.
글을 쓰건, 책을 쓰건, 3~4명 이상 모여서 서로 배우고 독려해야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다. 서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칭찬을 해야 한다. 칭찬거리를 찾는 과정이 내 공부가 된다.
이건 성장판 글쓰기 동기들과 매 기수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칭찬을 게을리한 적이 많다. 다른 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구체적으로 글을 칭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8. 고치기로 써라.
일단 뭔가를 쓰고, 쓰는데 시간을 정해놓고 너무 오래 쓰지 말라고 하셨다.
욕심을 버리고, 품질은 좋지 않지만 생각나는 대로 써야 한다. 사실 어차피 고칠 거니까...
잘 쓴 글은 없다. 잘 고친 글이 있다.
틀린 것을 알려면 오답노트가 필요한데, 내 글을 고치는 촘촘한 체를 가지면 잘 고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어휘력을 키우는 일이다. 어휘가 부족하면 사고가 빈곤해 글을 잘 읽고 쓰기가 어렵다.
9. 하루에 하나라도 써라.
1700여 개의 블로그가 모이니 「강원국의 글쓰기」는 1달도 안 걸려 썼다고 한다.
평소에 글감, 글쓰기를 만들어둬야 글을 쓸 수 있다. 레고 조각이 많아야 조립할 수 있는 것처럼... 다만 문제는 조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10. 정리 안된 생각을 쏟아내고, 눈으로 보면서 정리해라.
정리된 것을 찾지 말고, 바로 안 떠오르면 없는 것과 다름없으니 일단 생각을 쏟아낸 다음 써야 한다.목차 정리보다 일단 써보자. 그러려면 가지고 있는 게 많아야 가능하다.
11. 관련 분야 저자 등 본받고 싶은 한 사람을 정하라.
1) 그 사람의 문체를 습득하라. 필사하고 반복해 읽고, 한 가지 책을 반복해도 좋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암송해보자
2) 그 글의 구성을 모방하라.
시작은 어떻게 하는지, 인용은 어떻게 하는지... 구성만 모방하고 내용은 내 것으로 채우면 된다. 그 사람이 반복해서 쓰는 것은 무엇인지 습득해야 한다.
12. 머릿속에 독자를 앉혀놓고 써라.
독자의 반응을 들으면서 써라.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면 좋다.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얻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써라.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독자에게 주고자 한 것은 글쓰기 팁, 글쓰기 자신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독자의 자리에 나를 앉혀놓고 쓰는 것도 좋다. 내면이 치유되는 글에는 나를 독자 삼아 쓰는 것도 중요하다.(사실 이건 내가 한 질문이었는데 즉석에서 다음 강의에 말씀하시겠다고 해서 정말 뿌듯했다.)
강연 영상은 많이 봤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강의였다. 물론 바로 앞이라 더 빠져들어 덕후처럼 듣긴 했지만.
뭔가 얻고 싶어 들었지만, 많은 위로를 받았다.
무의미한 글쓰기인가 항상 고민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함께 쓰는 사람들이 있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 꾸준히 한다면 언젠가는 반응이 올 거라는 것. 비록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에세이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무의미한 글을 쓴다고 비난받은 적이 있다는 고백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비교적 좋아하니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지만, 때로 "당신 에세이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 흐물거리기나 하고 사상성도 없고 종이 낭비다."같은 비판을 받을 때가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P 40
하루키 같은 대작가도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나라고 무의미한 이야기를 쓴다고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남을 비난하거나 문제가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