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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Snoopy Jun 09. 2019

황금종려상을 받지 말았어야 할 <기생충>

디테일이 갑이다, 영화 <기생충> 리뷰

난 이 영화를 정말로 재미있게 봤다. 몰입감 최고, 배우 연기도 최고, 연출도 최고. 그리고 음악까지 내 기준에서는 완벽했다. 하지만 칸 황금종려상 안 받았으면 더 좋았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 봉준호 감독을, 송강호 배우를, 이선균 배우를(최우식,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등으로 치환해도 될 듯) 믿고 보는 관람객들이 가서 보고 마음껏 이야기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황금종려상이라는 전대미문의 수상을 하는 바람에 수상 아니었으면 안 볼 관객들까지 보고 마음에 충격을 받은 느낌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잘 만든 영화가 인정받으면 좋은 일이고, 영화 스태프들에게도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한 영화가 잘 돼야지. 천만, 아니 이천만 관람객이 보고 다음에 더 좋은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백수냐고요? 백수 안 해보셨구나


스포 당하기 싫어서 개봉 다음날 관람했다. 그리고 마음 놓고 리뷰도 읽고 게시판의 스포성 댓글도 읽었다.


이 중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송강호 가족은 왜 사지 멀쩡 한데 전원 백수인 삶을 사는가 였다. 사기 쳐서 박사장(이선균) 집에 취직해 고액(으로 추정되는) 급여를 받으며 살기 전에, 아버지는 마을버스 기사라도, 어머니는 가사도우미라도, 자녀들은 뭐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비난하는 내용이 꽤 있었다.


하지만 왜 일을 하지 않는가를 묻기 전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이들은 중산층이었을 것이다. 대만 카스텔라로 망하기 전에는. 딸 기정(박소담)은 미대 지망생이었고, 아들도 수능을 네 번이나 치렀고 명문대생 친구가 믿고 맡길만한 실력이다. 그걸 보면 자녀교육에도 어느 정도 투자할 수 있는 형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열악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다른 집의 와이파이를 얻어 쓰며 살아가고 있다. 아예 노는 건 아니다. 피자박스도 접고 피자가게에 취직을 하려고 하는 노력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 지친 거다. 이 모습을 보며 왜 일을 하지 않는가, 혹은 그들이 구할 수도 있을 일자리를 나열하는 건 그 상황에 처해보지 못한 이들의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좌절을 겪다 보면 극 중 송강호의 대사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 '무계획이 계획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무 디테일한 어법, 당신도 써본 적 있죠?


처음으로 빵 터진 말투는 피자가게 직원이 박스를 잘못 접었다며 불량률을 얘기하는 부분이다. '이런 작은 불량이 우리 브랜드 이미지에 얼마나 대미지가 되는지 아냐'며 영어를 섞어 써가며 뭔가 있어 보이려 하는 그 어법. 회사에서 많이 쓰던 어법이다.



'순진하고 심플' 하다던 부잣집 사모님 조여정의 어법은 또 어떤가. 학력 증명 서류를 내미는 최우식에게 그런 건 됐고 수업을 한번 봤으면 한다던 그 말투. 그리고 박소담에게 아들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들을 때 잘 모르겠지만 아는 척하고 넘어가는 그 장면은 현실 그 자체라 배꼽을 잡게 만든다.


송강호 가족 중 가장 담이 크고 머리 회전이 빠른 딸 박소담. 그녀가 오빠에게 소개받은 미술과외를 들어가기 전,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가지고 '독도는 우리 땅' 노래에 맞춰 암기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초기 킬링 포인트 중 하나다. 전형적인 전문가 화법을 써서 조여정을 속이는 그녀의 배포는 영화지만, 그리고 저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응원해주고 싶은 장면이었다.


이밖에도 선을 넘지 말라던 이선균의 말투는 그가 왜 대단한 배우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평소 이선균의 연기와 목소리를 좋아해 왔다. 그의 목소리가 동굴 속에서 울리는 것 같아 듣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라는 점은 동의할 것이다. 또한 내 기준으로는 '대한민국 배우 중 억울한 연기를 가장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따지거나 울컥할 때 이선균만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영화 <화차>에서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약혼녀를 찾는 '억울한' 장문호라는 배역은 이선균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다.



아래 포스터의 대사들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상황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되는 명대사들이다.




대비되는 두 집안, 그걸 지켜보는 관객의 불안


대중교통으로는 쉽게 다니기 힘든 박사장네 동네, 그리고 길고 긴 내리막길과 계단을 지나서 또 반지하로 내려가는 기택네 집. 두 집안이 대조적으로 비치는 동안 내내 불안하고 불편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사도우미마저도 품위 있어 보이는 부잣집과 창밖에서 노상 방뇨하는 사람을 늘 걱정해야 하는 극빈층이 한 공간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자꾸만 '저들이 들키면 어쩌나'란 불안이 커졌다. 평소 내 삶이 어느 쪽과 가까운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영화의 몰입도가 극도로 높아서 내가 기택네 가족의 일원인 것처럼 이들의 사기가 언제 들통날지 마음을 졸이며 보게 되었다.


건축가가 직접 지어 살던 집에서 우아하게 사는 박사장네


집주인의 부재를 노려 자기 집처럼 즐기는 기택네 가족

그 불안감은 해고된 전 가사도우미 이정은이 벨을 누를 때 한 번 터졌고, 비로 캠핑이 취소된 박사장네 가족이 귀가한다는 전화가 왔을 때 2차로 폭발했다. 학력 위조 과외선생 남매와 부당한 방법으로 전임자를 몰아내고 차례로 입성한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 부부. 그 가족이 주인 가족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파티를 하는 장면은 마지막의 대참사를 제외하면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변경된 귀가로 주인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자 긴장과 불안이 몇 배로 증폭되어 심호흡을 하면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지하에는 지금까지 있었던 기생충(으로 추정되는) 가사도우미 부부가, 거실 탁자 아래에는 온갖 사기를 치고 급기야 자기 집인 것처럼 이 집에서 놀던 가족이, 거실 소파에는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주인 부부가 공존하는 장면은 누구라도 숨죽여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적절한 배경음악, 엔딩 크레디트에서 흐르는 곡 '소주 한 잔'


이렇게 긴장감으로 가득한 영화의 배경음악은 어때야 할까?


최근 관람한 영화 중 무거운 소재인 <퍼스트 리폼드>는 인물들의 논쟁 장면에서는 음악을 거의 넣지 않았다. 그래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기생충>은 내가 불안할 때는 더 불안하게, 내가 마음을 놓을 때는 더 안도할 수 있는 배경음악을 배치했다. 비참해 보일 수 있는 장면에서도 세련된 음악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모든 구성요소가 대단했지만 음악이 화룡점정이라 생각한다. 관람 중에도 대체 이 영화의 음악은 누가 담당했나 궁금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오는 반가운 이름, 바로 정일 음악감독이다.


사전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하고 간 터라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극 중의 배경음악도 좋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소주 한 잔'이다. 봉준호 감독이 작사, 정재일 음악감독이 작곡하고 최우식 배우가 직접 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LmlGhO25fRQ&list=RDLmlGhO25fRQ&start_radio=1


편안하게 들리는 멜로디, 하지만 그 가사는 영화를 관람하고 난 후라면 사무칠 수밖에 없다. 최우식 배우의 목소리가 이 영화를 편안하게 마무리해 준다. 극 중에서 그가 꿈꾼 미래가 과연 실현될지 모르지만 이 곡을 듣다 보면 그냥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디테일이 많고 잘 만든 작품이라 미처 언급하지 못한 내용도 많다. 현재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담아낸 영화라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하거나 마음 아픈 장면은 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토리의 허점을 찾거나 디테일의 모순에 집중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 작품을 얼마나 세심하게 만들었을지, 제작과정에서, 또 지금까지도 만든 이들이 했을 고민의 무게가 충분히 느껴졌다. 그리고 어떤 계층을 비난하거나 희화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각자의 사정'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담긴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지 않았으면 보다 제대로 비평받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모든 출연진, 스태프의 다음 작품에 기대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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