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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Snoopy Jun 02. 2019

최고의 파리를 보여드립니다.

영화 <파리의 딜릴리, Dilili in Paris> 리뷰

브런치 무비 패스 #3 파리의 딜릴리(Dilili in Paris, 2018)


사실 이 영화에 기대가 컸던 건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 2011)>처럼 과거로 가는 여행이라고 해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FCSYBaniyY


<미드나잇 인 파리>는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 빙의했던 영화다. 주인공이 우연히 과거로 돌아가 예술계 유명 인사들을 만나게 되는데... 젤다와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 장 콕토, 콜 포터, 거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등장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거기다 거트루드 스타인에 피카소와 애인 아드리아나라니... 심지어 분장도 얼마나 잘했는지 입을 틀어막고 볼 정도였다. 그야말로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꿈같은 얘기다.


그 영화를 생각나게 할 만한 작품이라니. 거기다 그림자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셀 오슬로(Michel Ocelot) 감독의 작품이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청했다.


미셸 오슬로 감독은 키리쿠 시리즈, 프린스 앤 프린세스 등 그림자 애니메이션에 인종, 문화 등에 따른 갈등과 여성에 대한 진보적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다.


https://youtu.be/EhSf4uaX8fY


주인공 딜릴리와 함께 벨 에포크 시대 파리 속으로 다녀왔다.


* <파리의 딜릴리, Dilili in Paris>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시대의 명암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시대는 프랑스 3 공화국이 수립된 1871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을 말한다. 인상주의 화가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세계박람회, 에펠탑 등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프랑스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만들어진 시기다. 유럽에서는 평화가 지속된 시기이며,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상당히 낙관적이었다고 한다.


유럽 국가들은 평화로운 가운데 과학기술, 문화예술의 발달로 황금시대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 반면 유럽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은 대부분 식민지 생활을 이어갔다.



영화는 이 아름다운 시기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딜릴리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평화로운 마을인 줄 알았더니 파리 한 복판에 설치된 인간 동물원이었다는 반전은 이 영화가 그저 아름답기만 한 내용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며 시작한다. 이 시기 유행했던 세계 박람회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처음부터 제대로 보여주는 데 약간 놀랍기도 했다.


이런 인간 전시장은 물론, 뒤에 등장하는 화가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이 장애인인 점,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제기 등 이 시대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마지막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놀라운 거장들의 등장


딜릴리와 함께 다니는 배달부 청년 오렐이 만나는 거장들은 처음부터 놀랍다.


퀴리 부인, 파스퇴르 박사, 모네, 르느와르, 로트렉, 드가, 프로스트, 그리고 콜레트까지 등장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문화적 배경은 대부분 이 시기에 성립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만 벨 에포크 시대의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했던 식민지 국가들 중 경제적으로 독립한 국가는 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읽은 게 기억이 난다.



비록 스쳐가는 장면들이기는 하지만, 딜릴리가 꼼꼼하게 수첩에 만난 이들의 이름을 적어 놓는 설정은 이들이 역사에 이름이 남는 사람들이라는 뜻인 듯했다.


머나먼 나라에서 온 스마트한 소녀 딜릴리


주인공 딜릴리는 뉴 칼레도니아(Nouvelle-Caledonie) 출신이다. 거기서 배를 타고 파리까지 오면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여러 가지를 교육받는다. 교육자 루이즈 미셀이 실제로 살면서 그곳 어린이들을 교육시켰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딜릴리가 나온 듯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어 발음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딜릴리의 발음은 정말 아름답다. 영화 안에서도 딜릴리가 유색인종인 것을 보고 말은 제대로 할 줄 아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녀의 발음이 훨씬 좋다. 오렐과 함께 퀴리부인의 딸 이레느를 데리러 갔다 오면서 그녀의 발음을 딜릴리가 고쳐주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다.


우리도 외모가 외국인이면 일단 우리나라 말을 잘 못할 것이라고 단정했다가,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알게 되면 깜짝 놀라곤 한다. 뭐든 외관으로 판단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딜릴리는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소녀들의 납치사건에 직접 몸을 던져 훌륭히 사건을 해결한다. 사실 실제로 그렇게 납치당하고 감금된다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어려울 텐데... 이 장면이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알고 보면 숨어있는 자포니즘의 흔적들

사실 이 시기에 자포니즘이 유행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사회 후 진행된 한기일 작가의 GV로 알게 된 사실이다.



에도 시대의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인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 北斎, かつしかほくさい)의 그림이 슬쩍 숨어 있었다. 모르고 지나쳤는데 다시 보니 깨알같이 숨겨진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 )! 역시 고증왕인 미셸 오슬로 감독이다.






사실 이 영화의 결말은 명쾌하지는 않다. 유괴사건으로 사라졌던 소녀들은 구했지만, 악당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일망타진했다는 말이 없다.


아름다운 시절 뒤편에 숨겨진 차별, 시대의 발전상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계층, 다른 인종과 성별에 대한 적개심 등 우리가 자주 잊고 살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이면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언론들의 보도 모습은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쟁쟁한 영화들과 같이 개봉해 상영관을 찾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꼭 보기를 권한다. 아름다운 화면을 보며 파리에 가고 싶어 질 테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차별에 대해 마음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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