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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Snoopy Nov 04. 2018

100%의 피칸파이를 만나는 일

입안 가득 가을을 채우는 맛  

30년 전, 지금은 Bread & Co.라는 이름인 프랜차이즈 제과점 <신라명과>에서는 당시로서는 꽤 그럴듯한 제품을 팔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라호텔 베이커리에 필적하는 카스텔라(당시 제품과 지금 신라호텔 카스텔라를 비교해 볼 수는 없지만 기억으로는 그렇다), 따뜻한 우유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던 버터크림 케이크(분명 진짜 버터로 만든 크림은 아니었겠지만 동네 제과점에서 형광핑크색 꽃과 체리 모양 젤리가 올라간 기름 맛이 나는 케이크와는 비교 불가) 등...


그중 우리 가족이 자주 사 먹었던 '피칸파이' 가 있었다. 별로 달지 않은 파이 껍질 안에 계란 맛이 많이 나는 푸딩 같은 필링이 가득 채워져 있고, 고소한 호두가 위를 덮은 파이. 아무 생각 없이 그건 피칸인 줄 알고 먹었다. 나도 좋아했지만 그건 엄마가 정말 좋아하던 파이였다.


당시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가 제과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에게 피칸파이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피칸을 가져오면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당시 피칸은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재료였으니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먹던 피칸파이에 진짜 피칸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얘가 진짜 피칸이다(출처 : https://kizmom.hankyung.com/news/view.html?aid=201610115782o)


진짜 피칸파이를 만나다


2006~7년 경 코스트코 베이커리에서 미국식 피칸파이를 판매했다. 그 후로도 가끔 나오긴 하는데 꽤 단 물엿 같은 필링이 든 피칸파이였다. 나중에 비슷한 레시피를 찾아보니 정말 물엿이 듬뿍 들어갔다.


맛있긴 했으나 여러 명이 모이는 파티가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큰 크기였다. 거기다 내가 원하는 푹신한 계란 필링이 아니어서 뭔가 아쉬운 느낌...

그걸 먹다 보니 내가 기억하는 추억의 맛은 훨씬 덜 단 파이였구나 싶었다.


그보다 조금 덜 달고 고급진 맛의 피칸파이는 <파리크라상>의 피칸파이다.



단맛이 거의 없는 패스츄리 반죽에 미국식보다는 약간 덜 단 필링, 그리고 전처리가 잘 된 피칸이 조화를 이룬다. 지금이야 더 맛있는 피칸파이를 찾았지만, 10년 전쯤 이 제품을 처음 먹었을 때는 정말 감동했었다. 특히 살구 글라사쥬가 위에 발린듯 해 맛이 풍성하다.


지금 만족하는 피칸파이, 피카니 피카노


어릴 때 먹은 맛이라 그런가...


어느 베이커리에 가도 눈여겨보고 웬만하면 맛보는 품목 중 하나가 피칸파이 또는 호두파이다. 이 고소한 견과류가 당분과 만나 조화되는 맛, 이게 바로 가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리크라상에서도 만족했으나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의 피칸파이를 찾았으니... 바로 몇 년 전 여의도에서다.

연희동 <피카니 피카노>의 피칸파이


여의도역과 샛강역 사이의 롯데캐슬 엠파이어에는 그럴듯한 음식점들이 꽤 있다. 그중 1층 중앙에 숨어있는 <배러 댄>이라는 작은 카페 겸 베이커리에서 미니 피칸파이를 만났다.


위치는 바깥에서 보이지 않지만, 파이가 구워질 때면 누구나 냄새를 따라 찾아오게 되는 곳이다. 장소가 넓지는 않아, 피칸파이와 에그 파이를 비롯해 몇 종류가 전부다. 하지만 정말 맛있고 선물용으로도 손색없는 품목이라 자주 이용하곤 했다.


2년 전쯤 사장님이 그 가게를 넘기고 가셨는데... 비슷한 시기에 나도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피칸파이만 사러 가지는 않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여름, 연희동 골목을 지나가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쿠키샵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바로 <배러 댄> 전 사장님이 아닌가!!!


예전에 있던 메뉴는 물론, 케이크며 테린느, 다양한 티푸드가 어찌나 많은지... 반갑고 정말 맛있었다.

사장님 딸이 재미로 운영한다는 인스타그램에 제품 사진과 휴무 소식이 올라오는데 이 피드도 꽤 재밌다. 피칸을 열심히 썰고 있다는 사장님 딸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

https://instagram.com/pecanipecano



한때 백화점 식품관을 가득 채운 냄새의 주인공, 베떼엠


2004~5년 인기를 끌었던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 <파스텔 드 나따>의 뒤를 이어 에그타르트를 선보이는 곳이 늘었다. 당시 백화점 식품관마다 호기 있게 입점한 <베떼엠>이라는 파이 전문 브랜드가 있다.

<베떼엠>의 호두파이. 판교 현대백화점에 아직 있어서 다행이다.

에그타르트는 커스터드 크림을 그냥 넣고 구운듯한 맛이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집의 호두파이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그 맛이다. 전처리 잘 된 호두 속에 촉촉한 계란 필링이 가득하다. 거기다 파이 껍질도 얇아서 부담스럽지 않다.


아쉽게도 지금은 가까운 백화점에서 많이 철수해서, 판교 현대백화점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사 와서 냉동실에 보관하곤 한다. 이런 걸 보면 내 취향은 보편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유행도 변하고, 사람들의 입맛도 변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입맛도 나이가 들면서 계속 변해가는 것 같다. 아마 5년 후의 베스트 피칸파이와 호두파이도 변하지 않을까?


100%의 피칸파이는 사실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먹자마자 박수를 치면서 셰프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게 할 또 다른 피칸파이와 호두파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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