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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스누피 Apr 16. 2023

아이는 괜찮지 않았다.

[엄마로 살기] 괜찮은 엄마, 안 괜찮은 첫째의 마음을 읽다.

첫째 아이가 6살 때의 기록이다.


첫째가 가지고 놀던 북채에 둘째가 맞았고, 딱히 심하게 맞은 것 같진 않지만 둘째가 아프다고 징징 거리길래 달래주며, 첫째에게 위험하니까 그건 가지고 놀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고, 적당히 타이르기만 하려 했는데 첫째는 "내가 한 거 아니야!" 라며 억울한 얼굴을 했다.


"알았어. 네가 일부러 한건 아니지만 동생이 아프다잖아." 그러더니 첫째는 "엄마는 맨날 나만 괜찮다고 하고, 주니는 안 괜찮다고 해!"라는 말을 했다. 무슨 소린가 싶어서, 되물었더니 "엄마는 내가 아프면 괜찮다고 하고, 주니가 아픈 건 안 괜찮다고 해"라고 다시 말한다.

.

아뿔싸. 그게 아닌데.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엄마가 미안해


나는 첫째든 둘째든 차별 없이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다치면 첫째를 나무랐고, 첫째가 다치면 둘째를 나무랐다. 상대적으로 어린 둘째가 때리는 것은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하거니와 밀어서 넘어지거나, 때려서 맞거나 우는 쪽은 항상 둘째였기에 어쩌면, 첫째를 더 많이 나무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마음은 첫째라고 괜찮지 않은데, 첫째 아이는 항상 엄마가 자기가 다치는 건 신경도 안 쓰고 동생이 다치는 것만 신경 쓰며 자기만 혼난다고 느낀 모양이다. 처음엔 부정했다.

"엄마가 언제 그랬어. 지난번에 찬이가 넘어졌을 때도 엄마가 안아주고 얼음찜질도 해줬는데?!"라는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과거 나의 엄마 아빠도 어린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지.

"내가 언제?!"

그때 난 내가 받은 상처를 부모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껴져 두 번 상처를 받았었다. 그래서 다시 정정했다.


"엄마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너는 그렇게 느껴졌구나. 엄청 속상하고 외로웠겠네. 엄마가 그렇게 느끼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 엄마가 더 많이 안아주고, 돌봐주고, 사랑해 줄게. 미안해. 대신 너도 엄마가 사랑한다는 거 기억해 줘. 엄마는 차니가 아프던지 주니가 아프던지 똑같이 속상하고 마음 아파. 차니도 주니도 엄마는 너무너무 사랑해. "

내 말과 상관없이 아이는 계속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나도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난 너무 속상해. 나는 하나님 사랑하는데, 엄마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다치게 하지 않아. 다른 사람도 사랑해야 해"라고

언젠가 했던 말을 기억했나 보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내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엄마라서 미안해.

그리고 그런 엄마지만 사랑해 줘서 고마워.


엄마, 난 괜찮지 않아요


그래도 아이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 계속 화가 난다며 한참을 속상함과 억울함을 토해내듯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렀다. 그런 첫째 아이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의 태도를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시 어머니가 올라와 아이들 등하원을 도와주신 뒤로 아이들에 대해 신경을 덜 쓰기도 했고, 그러는 동안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상승으로 한 달여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과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특히, 툭하면 울고, 억지를 쓰고, 내 말을 따르지 않는 첫째 아이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았다. 아이의 행동이 나는 늘 불만이었다. 그냥 넘길 수 있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세상이 떠나가라 서럽게 우는지. 쓸데없이 억지로 왜 이렇게 소리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건지.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행동을 왜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건지. 도무지 첫째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유별나다 “, "예민하다"라는 표현으로 아이를 탓했다.


이제서야 생각해보니

별 것도 아닌 일에 서럽게 우는 건,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크게 화를 냈기 때문이었고,

쓸데없이 억지를 부리며 화를 낸 건, 아이가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내가 억지를 부렸기 때문이었고,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은 건, 아이가 해달라고 하는 것을 내가 계속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어쩔 수 없어,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첫째 아이는 비로소 "나는 괜찮지 않아요."라고 말한 것이다.


아.. 그랬구나.

유별나고 예민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아이가 내뱉는 한마디와 서러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아이의 행동에 늘 붙박이 마냥 따라다니던 분노와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던 내 마음이 부스러져가는 듯했다.


그동안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아이에겐 괜찮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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