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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스누피 Apr 21. 2023

욕망에서 벗어나야 할 때

바삭바삭 갈매기/ 전민건 글, 그림

아이가 어릴 때, 인터넷에서 아이에게 읽어줄 만한 그림책을 찾다가 초등학교 국어 교과에 실렸다는 글을 보고 구입했던 "바삭바삭 갈매기". 교과서에 수록된 탓인지 검색하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읽고 있는 유명한 그림책이다.

바삭바삭을 찾아 나서는 갈매기의 간절한 바람이 워낙 리얼하게 묘사되어 아이들이 무척 흥미롭게 본다. 물론 흥미진진한 전개과정처럼 스펙터클한 결말을 기대하면 좀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 끝에 남는 깊은 여운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책 이야기]
바다에서 자유롭게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던 갈매기는 어느 날 나타난 배에서 어린아이들이 던저주는 과자를 맛본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에 눈을 뜨게 된 갈매기는 그날부터 바삭바삭을 더 먹기 위해 사람들이 사는 항구로 간다. 사람들에게 달라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것을 먹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드디어 슈퍼에서 바삭바삭을 발견한 갈매기는 봉지째 훔쳐 달아난다. 도망치던 골목 구석에서 과자에 취한 듯 오물 속에서 뒹구는 비둘기 한 무리와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고양이의 공격을 받고 지붕 위로 힘겹게 도망친 갈매기는 과자를 버리고 다시 먼바다로 날아간다.


"더 먹고 싶어"
욕망의 시작



갈매기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살았다. 따뜻한 바람을 느끼고, 물고기 떼를 찾고,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잡은 물고기를 먹으면서. 큰 배가 지나가며 바삭바삭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바닷물과 함께 깊이 빨려 들어가는 그 느낌을 경험하기 전까지.

"이 맛은 뭐지?" 바삭바삭을 맛 본 갈매기는 바삭바삭이 더 먹고 싶어졌다.


난 한 때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이었다고 자부했다. 결혼식도 화려함을 쏙 뺐다.(지금은 정말 후회하고 있는 것 중 하나지만) 명품이라곤 디올 립밤이 전부였어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욕망에 눈을 뜨게 한 데는 출산과 함께 시작한 인스타이다. 처음은 아이에 대한 성장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자필 일기장을 꾸준히 쓰기가 어려웠고, [간편한 UI로 언제 어디서든 기록하기 쉬울 것],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위해 같이 보고 공감하는 소통이 가능할 것] 이 두 가지를 충족하기에 인스타만 한 것이 없었다. 그럴싸한 사진이나 좋아요가 없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에게 남겨주는 성장 앨범 정도였으니까.


아이의 백일, 돌 준비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인스타 탐닉이 시작됐다. 내 아이를 위해 남들보다 더 예쁜 옷, 더 예쁜 파티용품, 더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한 탐색전. 돌 끝맘이 된 후부터는 각종 육아용품, 교구, 책 정보들로 나를 자극했다. 인스타 속 세상은 고급스럽고 화려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재벌이나 연예인이 아닌 내 주변의 친구, 친구의 친구,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누리는 그 일상을 나도, 우리 아이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고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해봤다. 써봤다. 먹어봤다. 가봤다.라는 것으로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는 엄마"이고 싶었다.



"자꾸만 화가 났어"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바삭바삭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갈매기는 바삭바삭을 찾을수록 더 간절해졌다. 간절함은 때론 다른 갈매기와 싸우게도 했고, 사람들에게는 무례하게 했다. 무엇보다 바다와 하늘사이를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본성을 잊게 만들었다.


나 역시 정보의 태평양쯤 되는 인스타 세상 속에서 바삭바삭을 쫓듯 매일 열심히 무언가를 찾았다.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이에게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찾아 뒤진다. 좋아 보이는 것을 해주려면 더 많은 돈과 에너지를 써야 했고, 우리 형편에 적정한 수준을 따져보고 찾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남들이 쏟는 정성에 반의 반도 못하는 엄마라는 죄책감도 들었다.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에 마음을 뺏기지 말자.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것이야.' 마음을 다잡아도 쉽게 흔들렸다. 그 세계 속에 있으면 나는 무능력한 엄마였고, 나쁜 엄마였다. 아이들이 어릴 땐 야근도 많고 직장도 멀어 늘 퇴근이 늦은 남편 미웠다. 아이와 함께 가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것이 많지만 하지 못하는 현실에 우울했고, 화도 났다. 남편과도 많이 싸웠다.

바삭바삭을 찾는 갈매기들의 건방진 제스쳐와 말과 바삭바삭을 찾은 갈매기의 표정


얼마 전 일이다. 벚꽃 구경을 간 김에 "남들처럼" 벚꽃을 배경으로 아이들과 행복해 보이는 소위 '프사각'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첫째 아이는 공원에 텐트를 칠 수 없다는 사실에 유난스럽게 떼를 썼고, 둘째 아이는 천방지축 제 멋대로 돌아다녔다. 두 녀석 모두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 우리 부부는 금세 지쳤다. 집으로 돌아와 찍은 사진을 살펴보니 내 얼굴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아이들은 카메라를 향해 정수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남편이 찍은 사진은 죄다 삐뚤어지거나 어두웠다. 순간 서러움에 화가 치밀었다.


"올해도 제대로 나온 사진이 하나도 없네. 너희는 어떻게 매년 벚꽃나들이 때마다 난리니. 엄마랑 사진 한 번 찍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매번 이렇게 합이 안 맞아. 그리고 오빠는 사진 구도 잡는 법 좀 공부해 봐. 나는 이렇게 잘 찍어줬잖아. 정성을 좀 들이지 이게 뭐야? 대충대충. 어우 정말!!" 적당히 아이들과 나를 중재하던 남편은 내 푸념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아이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시간보다, 내가 보기에 더 좋은 것을 찾느라 애쓰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럴수록 아이와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좋은 경험과 추억을 만드는 데 더 집착했고, 결과에 쉽게 실망하고 관계를 깨뜨리는 말과 행동도 죄책감 없이 내뱉었다. 아이와의 관계는 무시하고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남기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란 착각. 욕망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질을 흐리게 했다.


"오랜만에 멀리 날았어"
욕망에서 벗어나기

바삭바삭을 찾느라 땅을 보고 걷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잘 날지 못하는 자신과, 바삭바삭에 취한 듯 쓰레기더미에서 뒹굴며 철저하게 망가진 새 무리를 본 갈매기는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듯 다시 하늘로 날았다.

바삭바삭을 쫓는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까?

지금 쫓고 있는 것이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을 느꼈을 때, 갈매기는 힘겹게 찾은 바삭바삭을 버리고 다시 하늘로 날았다.

"얘네 날 수는 있을까?" 비둘기들의 노란 눈동자가 꼭 약에 취한 것 같이 공허해 보인다.


육아의 근본적인 목표가 "독립"이라면, 건강한 독립을 위해 지금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는 것보다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아마도 바삭바삭하고 짭조름한 그런 매력은 없겠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 속에서 나도 아이들도 인생을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첫째 아이 졸업식에 가져갈 꽃다발을 사려고 들른 꽃집 사장님께 들은 말이 기억난다.

"내가 애들 키워보니까 알겠어. 지금 비싸고 좋은 거 해줘 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그런 거 하나도 기억 못 해요. 나중 되면 나한테 뭐해줬냐 한다니까. 내가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냥 아이들 말에 더 귀 기울이고 아이들을 더 존중해 줄 거야. 그게 아이들을 더 잘 키우는 방법이에요."

사장님의 말은 말이 나에게 육아의 본질을 기억하는 따뜻한 바람이 되어 불어왔다.


갈매기의 행동은 진짜 어려운 일이다. 난 아마 내 욕망의 부둣가 같은 인스타를 버리지 못할 거다. 내일 출근길도 인스타를 열어 아이들에게 좋은 상품, 좋은 식품, 좋은 공연이나 책, 아이들과 놀기 좋은 장소들을 찾고 있겠지.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고, 언젠가 내가 쓴 글이 나에게 따뜻한 바람이 되어 지금처럼 땅이 아닌 하늘을 향해 날게 해 줄 테니까.


To. 차니주니
세상에는 자극적인 즐거움이 많지. 그리고 그런 즐거움들은 네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무심결에 너의 곁에 찾아올 수도 있어. 그리고 새로운 자극이 주는 즐거움은 빠른 속도로 너를 빨아들일 거야.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에게 무례를 범하게 된다거나, 너 스스로를 해치게 한다면 그건 네가 쫓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는 걸 기억하렴. 너에겐 스스로 멈출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해. 하지만 제때 멈추지 않으면 그 능력마저 잃고 결국 너 스스로 그것의 노예가 되어버릴 거야. 너의 삶에서 잘못된 욕망이 너를 다스리지 못하도록 항상 경계하고 절제하며 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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