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파도를 타고 -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

by 안선희
캡처.JPG 딜리헙에서 연재중인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


<극락왕생>은 과연 불교 만화인가?

‘극락왕생’ 이란 죽은 후 극락정토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이처럼 제목에서 불교의 향기가 물씬 풍기지만 작품의 회차가 늘어날 수 록 불교인 듯 불교 아닌 불교적인 만화가 바로 <극락왕생>이다.


불교 세계관을 볼 수 있는 클램프의 <성전>, 주호민의 <신과함께>처럼 <극락왕생>도 그 일부를 활용하여 재창작해 작품의 근간을 만들었다. 그래서 관음보살, 호법신, 윤회, 사후세계 등의 불교 세계관을 작품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커다란 단어는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순간은 죽음의 순간이 아닐까.

26살의 자언은 이미 죽었다. 지하철 당산역을 지날 때마다 승객에게 노래 ‘낭만고양이’를 불러 달라고 하는 당산역 귀신이 되어 버렸다. 너무 이른 죽음을 맞은 자언은 관음보살의 자비로 19살의 순간으로 되살려 보내지고, 자신이 죽은 이유를 찾아 1년 뒤 극락왕생해야 하는 숙제를 받는다. 쉽지 않을 여정에 지옥의 호법신 도명이 동지가 되어준다. 자신의 죽음의 이유도 모르고, 귀신이 되기까지 한 자언은 괴롭고 힘든 상황이지만 특유의 유연한 정신력으로 두 번째 19살을 헤쳐 나간다.


2019-08-18 13.50.54.png [극락왕생] 1화 中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알게 되는 것이기에 26살에서 19살이 된 자언은 죽음이라는 경험까지 더해져 더욱 열린 감각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1년을 살게 된 덕으로 신과 귀신까지 자언의 삶에 들어와 그의 자비로운 성품에 도움을 받고 감복하여 교화가 된다.


파순 또한 자언의 삶에 농밀하게 끼어든 귀신이다. 부처의 수행을 방해해 보살들에게 처형을 당했던 파순은 자언의 마음속에 들어와 맹렬히 헤집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이기에 자언은 의연하게 지내지만 가슴 한켠에서는 신들에 대한 궁금증과 의혹, 자신의 처지를 유일하게 아는 도명과의 거리감, 자신이 죽은 이유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답답함 등으로 무척 외롭다. 유혹이란 외로움을 발판으로 기생하기에 파순이 흔드는 손은 자언을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언은 도망치지 않고 파순을 끌어안아 자신의 안으로 들여놓는다.


어떠한 존재든 외로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다양한 불행을 야기하듯이 파순이 자언의 외로움에 손을 뻗는 것도 불행의 씨앗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파순을 자언에게 보낸 것이 관음보살의 생각이라면 자언에게 파순은 단지 유혹의 존재만은 아닐 것이다. 큰 지혜와 어리석음은 동일한 것이라는 파순의 말처럼 이 선택이 자언의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인가,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인가. 파순이 자언의 극락왕생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그리고 자언과 도명, 문수보살 사이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인지 앞으로의 회차가 궁금해진다.



누구든 완벽하게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기에 삶은 평등하게 외롭다.

심지어 신의 외로움까지 문수보살의 짝사랑과 호법신 도명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로 표현된다. 신의 외로움이란 인간의 입장에서 조금 의아스러울 수 있으나, 실상 수많은 중생들의 사적이고 이기적인 소원을 듣다 보면 신도 외로운 존재가 되어 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 많은 기도 중에 아무도 신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길 바라는 문수보살의 구애와, 자신이 존경하는 존재에게 인정받고자 물불 가리지 않는 도명의 절절한 열정이 더욱 애처롭게 외롭다.




모두가 선망하는 신도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가 회피하고 싫어하는 귀신의 그 외로움은 어떠할까.

발도둑 귀신은 신발을 훔치지만 왜 훔치기 시작했는지의 이유는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렸다. 교복을 입은 도서관 귀신은 도서관에 오는 아이를 한 명 찍어 좋아하며 혼자 오두방정을 떠는데 그 이유는 외로워서라고 맛깔나게 외친다. 쏙닥나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이상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아 점점 죽어간다.

특별할 것 같던 귀신들의 사연은 마치 우리네 사는 모습과 비슷해 슬며시 주변 사람들이 오버랩된다. 너무 오래되어서 잊어버린 삶의 이유, 외로워서 오두방정 떨듯 살아가는 하루하루, 서로의 진짜 마음을 듣지 못해 외로워지는 인생. 사연 없는 존재가 없고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 하니 이 또한 불쌍하고 외로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2019-08-18 13.50.19.png [극락왕생] 1화 中


이미 귀신이 되어봤기에 더욱 그들을 안쓰럽게 여기게 되는 자언은 귀신들의 외로움과 사연마저 보듬어 안고 관용과 배려를 베푼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자언은 자신의 내면에 묻어두었던 기억들과 마주친다. 기억하는 순간보다 잊고 있던 순간들이 더 아름다움에 자언은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존재했지만 기억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아쉬워하는 자언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죽음’이 두렵고 외로운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존재했으나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게 되는 공포감. 그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면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타인의 기억이 절실해진다. 그 절실한 만큼 우리는 항상 외로움에 사무친다. 그러나 외로움은 스스로를 탐닉하고 고찰하게 하며 ‘나’를 깨닫고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은 자언의 행보를 통해 이야기한다.




작가 고사리박사는 자언의 성장을 컬러 못지않은 노련한 흑백으로 다채롭게 완성해 나간다.

독립만화연재 공간 ‘딜리헙’을 통해 3주마다 회차를 업데이트를 하며 퀄리티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어 보는 이의 만족감을 충족시켜 준다. 스크롤 방식의 웹에서 도서 형식의 칸 연출을 틈틈이 활용하지만 이질감 없이 진행하며, 이러한 칸의 연출과 그에 어울리는 그림 스타일이 혹여 부담스러울 수 있는 종교적 색채를 완화시켜준다. 약간은 거친 듯한 펜 선이 유려한 드로잉으로 인해 작가의 개인 스타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며, 컬러 대신 흑백 스크린톤의 활용은 농담감이 깊어져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또한 캐릭터 묘사가 탁월하여 표정과 대사가 살아있어 여러 신과 귀신들의 등장이 계속 기대 되게 만든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진지함 속에 위트 있는 개그가 첨가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오는 부분이 꾸준히 발견된다.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진지함을 살짝씩 흔들어 놓는 작가의 여유와 내공은 작품 속 자언의 꾸준한 자기 성찰과 굽히지 않는 자기애를 탄생시키기에 충분했을 거라 여겨진다.




자언은 평범한 여성이지만 점차 비현실적으로 선한 성품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통해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수용해 나가는 현명함 또한 보여준다. 이러한 자언의 모습은 신이나 귀신의 등장보다 이 작품을 실로 낭만적으로 만든다.

낭만이란 현실에 매이지 않는 이상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인데 요즘의 팍팍한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진행될 수 록 첫 장면에 나오는 ‘낭만고양이’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나는 낭만고양이~
이제 바다로 떠날 거예요~


가사 속의 낭만고양이는 자언을 뜻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진해진다. 과연 자언은 죽음의 연유를 찾고 외롭지 않게 바다로 떠나 극락왕생 할 수 있을까?




<극락왕생>은 자신 안의 외로움을 직면하고 받아들여 성장해가는 성장물이다.

서울에 상경해 지하철 너머의 비 오는 한강을 마주 보며 고향의 바다를 그리워했던 자언의 외로움은 우리가 한 번씩은 경험했던 일들이다. 외로움이 없는 존재는 없고 그 외로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듬어 꿋꿋하게 성장해 살아나가느냐가 모두의 똑같은 숙제이자 목표라고 작품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토로한다.


자언은 죽었고, 신의 배려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

죽음 이후의 성장과 신의 배려란 어쩌면 모두가 희망하는 것이다. 죽음 후의 다른 세상에서 지금 누리지 못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내 삶의 성장이고 희망이라 여김에 우리는 신이라 불리는 그 누군가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극락왕생을 빌고, 매주 믿음으로 보상한다.

하지만 기도만 할 뿐 정작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민은 행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언이 회귀하여 주변과 귀신들에게 베푸는 행동들은 보통의 사람들은 알지만 하지 않거나 행하지 못하는 낭만적인 행보이자 지독히 아픈 성장과정이다.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끌어안는 스스로에 대한 관용은 내면의 상처 받은 아이를 보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단단하게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내면의 아이가 비로써 본래의 나이로 성장하여 정신과 몸이 일치하게 된다면 그것은 극락이라고 해도 좋을 완성형의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그러한 행복은 죽음 이후가 아닌 현실에 더욱 어울리기에 낭만적이고 치열하게 성장해가는 자언의 행보의 끝에 저승이 아닌 이승이 있기를 잠시 바래본다.



이 작품의 연재를 쫓으며 읽고 있은 그 누군가는 자신의 외로움과 마주하고, 낭만적인 태도로 주변을 둘러보아 극락왕생할 기회를 얻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닌 모두가 평등한 외로움의 파도를 함께 타고 있다는 위로 또한 받고 있길 바란다.



*1화~15화까지 읽고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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