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차단하고 단절하는 삶

말 못 하는 슬픔

by 소소한 귤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난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기로 결심했어. 다시는 연락하지 마"


매일 전화기를 붙들고 그에게 하소연한 것도 아닌데 억울했다. 친구끼리 말도 못 하냐라는 마음과 너무 나 힘든 것만 이야기했나 라는 마음이 다퉜다. 힘들어서 그에게 먼저 연락한 경우는 오히려 없었다. 직장과 가족 안에서 사건 사고는 많았지만 그걸 모두 일일이 보고하고 이야기 나눌 만큼 서로 연락이 잦은 편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연락이 되어 카톡으로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그가 전화가 오는 식이었다. 타인에게 힘들다는 말도 편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인 나는 그러면 그때야 마음을 풀어놓았다.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받아준 사람처럼 말하는 것도 화가 났다. 그가 힘든 일이 있으면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나의 이야기를 했다. 다만 최근엔 내가 힘든 일이 더 많아서 그에게 토로하는 쪽이었고 그가 묵묵히 들어주었고 그 이후에 적절한 말을 해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고등학교 시절 만나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지내온 사이에 어떠한 의사소통 없이 저렇게 한 순간에 관계를 끊어버린 시도였다. 만약 지금까지 유지해온 관계가 소중하고 내가 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면 저런 식으로 단박에 관계를 정리하는 말을 내던졌을까?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싶지 않으니 이제 연락하지 말라는 말은 '너 때문에 힘들어'라기보다 '이제는 네가 필요 없다'는 말로 들렸다. 별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십 대 초반 그는 매번 약속 장소에 지각을 하는 친구였다. 어느 날은 연락도 받지 못한 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다가 참다못해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그가 돌아온 말은 이랬다. '너랑 너무 비교돼서 옷 입고 화장하느냐 자꾸만 늦게 되었다'. 너무 예상치 못한 답변에 잠시 말문을 잃었으나 그건 변명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면 난 다시 너랑 만나지 못할 거라고 응수했다. 당시 그 친구가 나와의 약속에만 늦는다기보다 지각이 습관화로 보였는데 괜한 나를 핑계를 대는 것 같아 괘씸했다. 이후로 그는 늦은 적이 없다.


그는 좀 괴짜 기질이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사람들을 떠나 보내게도 했다. 위처럼 우리에게도 가끔 약간의 문제들이 생겼지만 그런대로 잘 넘어가며 관계를 유지했다. 매번 생각지 못한 생각과 발언을 하는, 통통 튀는 그를 좋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각자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 만남은 뜸해졌지만 그래도 일 년에 두어 번은 연락해서 꼭 만났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아도 이야기를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나면 으레 그렇듯이, 그를 만나면 늘 뿌듯하고 충만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그는 내가 검열을 거치치 않고 편하게 대화하는 몇 없는 상대였다. 엄마에게 막 대한 이야기나, 애인 몰래 바람을 피운 이야기 등을 스스럼없이 먼저 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상담을 한다고 했다. 약도 가끔 먹는데 공황장애라고 했다. 여러 가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그 친구는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현실을 살아가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나는 남자 친구가 없었지만 그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투로 내게 가볍게 이야기하는 그를 보고 그의 남자 친구가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공황장애는 쉽게 완치되지 않았다. 몇 년 지나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그 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걱정이 됐다. 몇 번이나 공황장애의 원인을 그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 친구가 스프링을 예를 들어 설명했고 - 마음은 마치 스프링 같은 건데, 이미 한 번 늘어난 스프링을 제자리로 잘 돌아오지 않고 고장 나는 것처럼, 내 마음도 그런 거야- 나는 굉장히 그의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무엇이 그의 마음을 힘들게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정확히 어떤 대답을 듣지 못한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른 친구와 사이가 소원해지고 그와 오랜만에 긴 통화를 하게 됐는데, 그가 아직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걸 전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마음에 걸렸다. 앞으로라도 그를 잘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쯤 나는 가족과 회사, 관계 등 인생의 전방면에서 계속 힘든 길을 걷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의 연락과 만남은 뜸했지만 하게 될 때마다 우리 엄마가 가출했다느니, 대표가 나에게 이런 언행을 했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도 굉장히 오래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를 위로해줄 차례였다. 그러나 그는 별로 힘들지 않다고 했다. 조금 의아했으나 괜찮다면 다행이라는 말을 건넸다.


남자 친구랑 헤어진 그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고, 새해가 되어 안부 인사도 먼저 건네고, 페이스북을 보다 대학 시절 마구 쏘다니며 서로에게 빠졌던 당시의 사진, 우연히 그가 고등학교 시절 그렸던 나의 초상 등을 발뎐해 그에게 사진 찍어 전송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만나자는 말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얼마 뒤쯤 다른 친구와 만나서 노는 사진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얘가 몸이 좋이 않은 게 아니라 나를 만나기 싫었던 건가? 이 친구가 정말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지, 나를 밀어내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동네로 오면 만나주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내가 번번이 그의 말에 제대로 된 응답을 하지 않았나 싶어서 '백수가 되었다며 너희 동네에 놀러 갈까'라는 말을 전했다. 온종일 답이 없었다. 불길했다. 정말 나를 보기 싫은 걸까, 바쁜 걸까, 그냥 몸과 마음이 지친 걸까. 하루가 지나도 확인하지 않는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상했다. 며칠 뒤 용기 내어 다시 그와의 카톡방을 켰다. 이번엔 내 메시지를 읽었지만 답이 없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일말의 희망을 갖고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서운한 말투로 왜 대답이 없냐고 물었다. 그에게 곧바로, 단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쓰라린 연락이 왔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 그 여덟 글자가 내겐 너무도 충격이었다. 친구 간의 서운함을 표출할 순 있는데 어떻게 한 순간에 어떠한 소통과 교류도 없이 관계를 끊어버릴까. 그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아준 게 힘들다고 이야기만 했더라면 그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고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했을 테였다. 내 마음은 강한 스크래치가 났고 그런 태도에 친구 자격은 박탈됐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관계의 단절을 모질게 선언할 정도로 나는 그에게 상처를 주었나, 그를 힘들게 했나, 내가 힘들 때만 그를 찾았나, 솔직히 수긍이 가지 않았다.


이전부터 사람들이 괴짜인 그를 종종 떠나가는 모습을 보았고 이제는 나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으니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충분했다. 6년을 만났던 남자 친구 앞에서 바람을 피웠다고 이야기하고 헤어져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내 친구일 필요는 없었다. 소원하면서 관계를 이어온 내게 더 모진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그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걱정만 했지, 도움이 될만한 인터넷 사이트 링크 한 줄이라도 그에게 보낸 적이 없었다. 외려 엄마의 문제로 고민 상담할 때만 그의 아픔에 관심을 가졌다.


또 그밖에 무언가가 더 있을지도 몰랐다. 얼마 전 학창 시절 때 주고받았던 편지를 뜯어보다가 그 친구의 것을 발견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나랑 친구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이런'이라는 말이 걸렸다. 그는 그 시절부터 진득한 자기혐오에 빠져있었던 걸까. 그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대했던 걸까. 그 시절 나는 저런 구절이 쓰인 편지를 받으며 다소 우쭐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편지를 다시 보는 동안에도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꽤 자주 나에게 열렬한 사랑을 표현했다. 생일날 집 앞에 큰 봉제 인형과 편지를 두고 가기 하고, 만날 때마다 너무 예쁘다고 잘하고 있다고 나를 칭찬했다. 그런 그가 나와의 관계를 포기한 것이 충격이었다. 동시에 자기혐오와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끊어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관계의 단절은 10년 가까이 이어온 모종의 질투심과 부러움이 곁들여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아이의 상황을 좀 더 살피지 못하고, 그는 자신의 내면을 살피지 못했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지 관계를 시작했고 그렇게 관계 속에서 예쁨과 칭찬을 받아먹는 일에 익숙해졌다.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의 마음 또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런데 과연 내가 그에게 준 관심과 애정이란 있었나 돌아본다.


새로운 사람이 오고 전에 있던 사람들은 떠나간다. 가지고 있던 문제가 이제야 표면으로 드러나는 건지 아니면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는 예정된 수순인지 아직은 확신하지 못한다.


내 곁에 남은 사람의 수를 헤아린다. 그동안 너무 내 이야기만 했거나 내가 필요할 때만 연락한 것은 아닐까.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거나 등한시 여기지 않았나. 내 고통에만 매몰된 건 아니었을지 두렵다.


소중한 것을 잃고 난 뒤에야 무언가 잘못됐는지 깨닫는. 잔혹하리라만큼 대가가 필요한 인생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