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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리안 익스프레스

제9화 울란바타르에서 이르츠쿠즈로

by 그루

어젯밤 이별인사까지 하고 헤어졌던 Dull이 기차역까지 바래다주겠다며 호텔에 왔다.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대단한 Dull은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Dull 누나의 가게에 들렀다. 기차역 앞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말도 잘 하시는 것이 여느 한국 아줌마의 모습이다.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영천인가, 대구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고 돈을 모아서 울란바타르(UB)에 들어와 아파트도 사고 돈도 벌었다고 했다. UB아파트는 한국의 시세 못지않게 비싸다.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기차역 앞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화장품 장사를 하고 계셨다. 영천에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일만 했다고 하면서도 그 곳에서 번 돈에 감사해했다.

24시간 기차에서 먹을 약간의 먹을 것들을 준비하고 들어간 대합실은 깨끗하다. 티켓이 없으면 35시간이 걸리는 티켓이라도 구입해야 하는데 다행이다. 약간의 남은 투그릭을 러시아 루블로 환전하고 6월 16일 오후 4시 25 분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몸이 산만한 제복을 입은 승무원이 기차 앞에서 여권과 티켓을 대조하며 확인을 하는데 아주 고압적인 자세로 퉁명스러운 것이 소비에트 시절부터 일한 여자 같다.


4명이 지낼 수 있는 쿠페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기차의 컨디션이 좋다. 던져주는 침구커버도 깨끗하다. 침구커버는 의례적으로 약간의 돈을 내고 빌리는데 안 씌우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았다. 내리기 전에 매트커버와 이불, 수건, 베갯잇은 빠짐없이 돌려줘야 한다. 긴 여정이 아니어서인지 식당 칸은 없었지만 있는 기차도 있다고 한다. 화장실도 그럭저럭~ 승무원의 첫인상만 아니면, 뭐~ 하지만 20여 시간이 지나니 지나가면서 마주치면 웃어주더라. :-D



몽골리안 익스프레스 악몽


우리는 3명, 남은 자리에 러시안일까, 몽골인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뺀 질 하게 생긴 백인이 껌을 씹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덜렁거리며 들어온다. “니 자리 저기야” 하며 이 층을 가리키니 짐을 놓고 앉는 순간부터 몽골리안 익스프레스에서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에게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너는 어디서 왔냐고 묻자 이탈리아에서 왔단다. 그와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 세 사람 전부 완전하게 퍼펙트하게 파악을 해 버렸다. 이것이 이탈리아인과 기차에서 24시간 동안 이야기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고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잘못하면 인신공격이 될 만한 것이어서 다양한 얼굴 표정까지도 불가능했다. 살아온 경험으로 사람에게서 저런 엄청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맨발로 운동화를 신는 버릇으로 생긴 신발냄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발만 치우면 좀 낫겠지 했지만 그는 걸어 다니는 냄새덩어리였다. 기차 화장실이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하겠는가? 화장실도 맨발로 갔다가 하얀 시트를 밟고 올라간다. 으악~


셋이서 결론을 내린 바, 냄새도 원래 날뿐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씻지 않은 또라이 여행자라 결론을 내렸다.


결론은 결론이고 머리가 아프다. 냄새로 머리가 아픈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쟤를 창밖으로 던져 버릴 수도 없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은 걔가 화장실을 가거나 해서 없을 때 참았던 깊은 숨을 내 쉰다. 하악~ 하악~


다른 객실은 문을 닫고 사는데 우리는 밤낮을 열어놓으니 긴 여정에 심심한 어린 손님들이 기웃거린다. 덕분에 숨을 제대로 쉬고 싶을 땐 엄마가 카자흐스탄 영어 선생님이라고 하는 꼬마 아가씨객실에 가서 놀다 오곤 했다.




객실을 왔다갔다 하며 친구가 되어 주었던 카자흐스탄 소녀


기대하던 도시락 라면을 먹는 시간은 세 번, 입맛은 거시기하지만 먹는 시간은 넘어갈 수 없다. ㅎ 기차에는 뜨거운 물은 항상 준비되어 있어 기차에서 차와 라면 등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사모바르안에 있는 물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조심하지 않으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국경수속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수흐바타르시에서 국경 넘는 일, 몽골 쪽에서의 출국 수속에 한두어 시간, 러시아 쪽의 입국 수속도 그 정도 해서 약 4시간 정도 걸렸다. 가장 빠르게 걸린 시간에 속한다고 한다.


러시아 국경에서 입국 수속할 때에는 열감지기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이댄다. 국경이어서 늘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한동안 몽골에서 메르스 공포를 잊고 살았는데.....쩝

대부분 기차가 정지하기 5분 전부터는 화장실을 잠근다. 기차의 앞 부분에 각 도시마다의 타임테이블이 붙어있어 정차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단 정차시간에 화장실을 못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수속하는 동안에 국경 부근을 기차가 한 시간 이상 달려도 화장실을 가지 못하니 알아서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바이칼이다!

국경을 넘고 잠을 얼마나 잤을까, 날이 밝아오자 바이칼이 모습을 나타낸다.

달리는 기차의 창안에서 봐도 물속이 들여다보이는 맑은 호수, 한 다발씩 누군가 꽂아놓은 것 같은 흐드러진 야생화들,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호수로 흘러드는 반짝이는 지천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라.


바이칼로 흘러드는 물길이 무려 336개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쁘게 급히 흘러드는 천이 있는가 하면 이야기를 하듯 여유 있게 흘러드는 낮은 천들도 있다. 그리고 은회색의 자작나무들의 가는 몸짓도 시작됐다.


기차에서 똑딱이로 찍어도 이렇다
수없이 많은 지천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호수는 다량의 플랑크톤이 살아가기 때문에 물이 맑을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칼은 유입되는 물의 양도 풍부하지만 사람의 출입이 워낙 적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맑은 색을 유지한다고 한다.


지루할 것 같았던 한나절이 순식간에 가 버렸다. 드디어 24시간을 달려 정확히 4시 25분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위도가 몽골보다 높아서 살짝 싸늘한 바람을 기대했지만 해발고도가 몽골보다 낮기 때문에 몽골보다 더 덥다.보다 밝고 위압적이지 않은 파스텔풍의 19세기 건축물로 보이는 역사가 반갑다.


이르쿠츠크역




호텔까지 가는 택시에서 첫날부터 어처구니없이 바가지를 씌운 젊은 택시기사가 재수없었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진 19세기풍의 낭만적인 거리를 보는 순간 그냥 액땜을 했다고 생각했다. 여행하면서 바가지를 쓴 경우는 이 번이 처음인 것 같다.


바가지를 씌운 택시, 사진을 찍으니 도망간다~^^


앙카라강가에 위치한 오친 이르츠쿠즈 호텔도 깔끔하고, 여자는 도시에 약하다고 하는데, 차분한 녹색의 도시인 이 곳이 급 좋아질 것 같다.


짐을 정리하고 바람도 산뜻한 저녁 산책길, 레닌스트릿의 펍에서 마신 삐바(맥주)는 강하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귀엽고 당찬 러시아 아가씨의 미소를 뒤로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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