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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날리는 꽃씨들처럼

제10화 이르쿠츠크~데카브리스트와 콜착제독

by 그루

앙가라강변을 걷다 보면 어디에선가 휘돌아 나오는 향기들, 하지만 꽃들은 봄이지만 투명한 공기까지 더해져 한 낮의 햇살은 대단하다.


가가린 스트릿과 칼 마르크스 거리가 만나는 앙카라 강변의 공원을 쌈지공원이라고 한다. 긴 강을 따라 조성된 공원은 곳곳에 화장실도 있고 아이스크림을 파는 간이매점도 있다.


강변산책


쌈지공원의 알렉산드르 3세


시민들이 산책을 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그 곳에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건설한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거리는 온통 19세기의 건축물들이 시간이 멈춰 선 듯, 역사적 건축물들이 즐비


데카브리스트의 도시


1812년 6월 선전포고도 없이 프랑스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이 러시아를 침공한다. 9월 보로디노 전투 이후 모스크바에 입성하지만, 불에 타는 모스크바 시가지를 보는 것 외에 협상자인 알렉산드르 1세와 쿠투조프 장군에게서는 깜깜무소식이었다. 10월 나폴레옹은 퇴군을 결정한다. 하지만 게릴라식 공격으로 퇴각하는 9만여명 프랑스군의 뒤를 쫓아간 러시아군은 파리까지 가서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러시아에서 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으로 나폴레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때 6개월간을 파리에 머물던 러시아의 젊은 장교들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양한 프랑스와 서유럽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들이 보기에 너무나 가난한 국민들이 사는 러시아로 돌아온 대부분 귀족이었던 젊은 장교들은 전제군주와 농노제, 신분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를 도입하고자 1825년 12월 14일 페테르부르크 원로원 광장에서 혁명을 모의했다가 사전에 발각된다.

늘 배신자는 있게 마련, 3천 명의 혁명군은 진압되고 대부분 귀족이거나 황실 가족이었던 주모자들은 처형당하거나 감옥 또는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을 받는다. 이들은 12월(데카브리)의 사람들이란 뜻으로 데카브리스트라 불리게 된다.


이르쿠츠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인간적인 선택을 택하고자 주저하지 않았던 데카브리스트들이(그들은 형이 사면되어도 30년 동안 시베리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르쿠츠크에 남아 아름답게 도시를 설계하여 만든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에카테리나 트루베츠카야는 남편 트루베츠코이(데카브리스트의 리더 중 한 명, 트루베츠코이의 배신으로 혁명이 무산됐다고 보기도 한다.)를 찾아 먼 시베리아로 찾아 왔는데 처음 본 남편의 발에 찬 족쇄에 입을 맞추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중노동 유배형을 받은 데카브리스트들은 12Kg~22Kg의 족쇄를 차고 강제노역을 했다고 한다.)그 후 11명의 여자들이 데카브리스트들을 따라 열차도 없던 시절 동토의 시베리아로 이주한다. 처음 이주한 데카브리스트의 아내였던 에카테리나 트루베츠카야는 지금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묻혀있다.


발콘스키는 트루베츠코이와 더불어 혁명의 중심인물이었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 안드레이 발콘스키의 실제 인물이다. 발콘스키는 실제로 톨스토이의 숙부이다.


발콘스키의 아내 마리아와 뜨거운 연애를 했던 정치와 풍자시를 써서 러시아의 국민시인이 된 푸시킨은 일찍이 시베리아 유배형을 받고 있었던지라 데카브리스트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한다. 데카브리스트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던 그가 이르쿠츠크에서 데카브리스트들을 위해서 쓴 시가 바로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이다.

덕분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시를 끝까지 읽어봤다. 푸시킨은 그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목조 주택
이르쿠츠크 거리

키로프 광장


키로프 광장 주변에는 볼거리들이 참 많다. 호텔이 쌈지 공원이 있는 앙카라 강변에 있어서 걸어서 가가린 스트리트, 칼 막스 거리, 레닌 스트리트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키로프 광장으로 향한다. 걷는 동안 박물관도 많고, 공원도 있고, 찌아뜨르(극장)도 있고, 그야말로 거리 전체가 박물관 급이다. 그래서 키로프 광장까지 오면 배가 고파진다. 그래도 맛있는 점심다운 점심을 먹으려고 지나는 길에 앙가라호텔 옆 가게에서 요구르트 하나 사먹고 견디었더니 나무줄기라도 씹어 먹을 것 같았다.


간신히 주린 배를 참고, 이르쿠츠크시민들에게 역사적 고비 때마다 힘을 모으는 곳이이어서 마치 우리나라의 명동성당 역할을 하는 1746년 시베리아바로크식 지어진 보고야브렌스키성당(Bogoyavlenski Epiphany Cathedral)을 찾았다. 타일 문양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예쁘다. 성당을 보고 나오니 어디에선가 고소한 냄새가 나를 자극한다. 냄새의 진원지를 향해서 찾아가니 아~ 레스토랑이 아니고 베이커리다. 점심을 베이커리로 때운다고 생각하니 서운하지만 향긋한 맛은 발길을 부여잡는다. 진한 커피와 따끈한 베이커리를 먹고 나니 다시 걸을 힘이 난다.


주청사 앞의 작은 종탑은 소련이 혁명의 본보기로 파괴한 주청사 자리에 있었던 카잔교회 건물의 파편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잔혹한 역사가 스치고 간 이 도시에는 아직도 그들의 광기와 위선이 21세기 봄의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것 같다. 눈처럼 날리는 꽃씨들처럼


주청사 뒤에는 꺼지지 않는 불(베츠느이 아곤)과 전쟁기념관이 있고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얼핏 지나가면서 봐도 고려인들의 성씨가 눈에 많이 띈다. 이르쿠츠크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헛된 죽음을 맞이했는지 끊임없이 새겨진 이름만 봐도 가슴이 아리다.


이들을 기리듯 그 앞에는 흰색의 아름다운 스파스카야 교회가 있다. 1710년에 지어진 석조 건물로 동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스파스카야 교회


앙카라 강을 등지고 서있는 Yakov Pohabov는 코사크군의 부대장으로 1661년 그가 앙카라 강변에 감옥을 만든 것이 이르쿠츠크의 탄생 원년이라고 한다.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민족을 구한 것 같은 기상이다.


멀리 앙카라강변에 서 있는 Yakov Pohabov상



앙카라 강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분위기가 다른 교회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림스키교회는 이르쿠츠크에서 단 하나뿐인 가톨릭 교회로 처음에는 목조성당이었다가 신자들의 헌금으로 네오고딕 양식의 석조 성당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한 낮의 햇살을 다 받고 있는 교회가 외로워 보여서 좋다.



즈나멘스키 수도원 Znamenskiy monastery


앙카라 강의 지류인 우샤코프카강 다리 건너편에 즈나멘스키 Znamenskiy monastery 수도원이 있다. 더위를 피해 늦은 오후,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해서 다녀온 수도원이다. 250 루블정도의 택시비를 지불했다.


소박한 즈나멘스키 수도원



데카브리스트의 리더였던 트루베츠코이를 따라 시베리아에 온 에카테리나 트루베츠카야의 무덤과 그의 자녀들의 무덤, 쿠릴열도와 알래스카를 처음으로 탐험한 셀리호프의 무덤도 이 수도원에 있다. 원래는 목조건축이었다가 18세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녹색의 지붕이 소박하고 차분해 보인다.



콜착제독


수도원입구의 정원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꽃이 가득 놓여있는 동상 한 기가 서 있다. 그는 혁명의 시대 러시아의 백군의 영웅이었던 콜착제독으로 끝까지 볼셰비키 군에 저항하다가 이르쿠츠크에서 1920년 2월 처형당한 인물이다. 시민들이 제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넘치는 꽃으로 알 수 있다.


콜착제독의 동상



데카브리스트들의 무덤이 있는 수도원에서 백군 영웅의 동상이 함께 서 있는 이 곳이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 도시를 있게 해 준 데카브리스트들의 넘치는 열정도, 볼셰비키 혁명군에 대항하는 것은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면서 백군의 지도자로 혼을 불태우다 간 콜착 제독도 이 도시의 시민들은 사랑하는 것을....


콜착제독을 알고 싶다면 영화 Admiral을 보자, 2009년 개봉작 Admiral은 우리나라에서 제독의 연인으로 상영했었다. 콜착Aleksandr Kolchak제독(콘스탄틴 카벤스키 분)은 독일군과의 승리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던 밤 운명적인 사랑 안나(엘리자베타 보야르스카야)를 만나는 데, 때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였다.


콜착제독과 안나, 영화에서 캡처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3월 퇴위를 선언하고 로마노프 왕조는 종식을 고한다. 11월 볼셰비키 혁명은 무혈로 권력 장악에 성공하는데 구세력을 대변하는 백군과 신세력의 혁명군의 싸움에서 콜착제독은 백군의 우두머리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지만 끝내는 이르쿠츠크에 돌아와 처형당한다. 전쟁의 와중에서 사랑을 피운 두 사람의 힘들었던 러브스토리를 그린 영화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놓치지 않고 그려낸 러시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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