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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루블의 전차

제11화 이르쿠츠크~마리아와 모란

by 그루


6월 22일 오늘은 35도를 오르내리던 한 낮의 기온은 어디 가고 구름이 부드럽게 덮여있어 늦잠자기가 딱 좋은 날씨다. 호텔을 나서니 쉬엄쉬엄 비가 뿌리지만 따가운 햇살보다는 훨씬 낫다. 카메라를 두르고 판초로 된 우비를 쓰고 나서니 우산도 필요 없다.


오늘은 뮤지엄을 돌고(작은 뮤지엄들이 많다) 시장을 돌기로 했다. 시내에서 바이칼 쪽으로 47Km를 가면 민속촌 같은 목조건축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일목요연하게 목조건축을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딸지 민속촌까지 가야 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였다.


거리 자체가 목조 박물관이다.


이르쿠츠크는 19세기의 거대한 박물관이다. 중심가는 물론 교외까지 그 시대의 거리와 모습을 그대로 갖춘 도시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은행이나 관공서, 교회 외에는 대부분 자작나무로 지어진 주택으로 기후가 너무나 혹한이었던 관계로 추위를 피해서 3분의 1이나 2분의 1은 지하로 파 들어가서 집을 앉혔던 흔적까지 거리를 지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집집마다 다른, 다양한 덧창만 공부해도 논문 한두 편은 나오겠다.


마리아의 정원에 있던 바람에 흔들리던 모란


푸른 보랏빛 색깔로 칠해진 나무로 된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의 문을 빼꼼 열고 들어가니 발콘스키의 아내 마리아가 가꾸었을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원의 모란이 갑자기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오히려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마리아와 모란이라...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은 원래 트루베츠코이의 집이었다. 에카테리나 트루베츠카야와 7명의 자녀는(트루베츠코

이는 부인이 죽은 후 모스크바로 돌아간다)이 곳에서 생을 마치고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묻힌다. 이후 개조하여 발콘스키가 살던 곳으로 내부에는 발콘스키와 빛나는 미모로 유명한 아내 마리아와 아들 딸 들의 사진이 있다고 한다. 본관은 개관일이 아니어서 닫혀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서 뒤쪽 길로 가면 작은 공원이 있다. 아름다운 여인의 동상 한 기가 있는데 발콘스키의 아내 마리아의 동상이다. 동상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 같은 마리아의 생동감이 그녀를 맴돈다. 작가는 힘을 다해 그녀의 생명을 최선을 다해 살리려고 한 것처럼.


시장 쪽으로 가려니 걸음이 빨라진다. 중앙시장은 지나다니면서 한두 번 지나갔던 곳이어서 내 동네의 시장 같다. 길가에 늘어선 꽃가게에는 각종 꽃모종들과 탐스럽게 피워낸 꽃들을 가지고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아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신선한 정육들과 갓 구워낸 빵들에서 나오는 고소한 냄새까지, 아~ 시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시베리아에서 많이 나는 알이 굵은 잣과 물 오른 검붉은 체리와 처음 보는 진한 보랏빛의 배리, 정성스럽게 색깔을 맞추어 배열하여 진열된 과일들은 생활에서 나오는 삶의 작품이다.


시장 구경은 이슬람권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물동량도 시스템도 활기도 어느 곳 못지않다. 납작 복숭아 가게 앞에서 멈추니 안녕하세요! 하고 주인장이 말을 걸어온다. 카자흐스탄에서 왔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반가워한다. 요즘은 어딜 가나 한국에서 일한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는데 한국인을 만난 것보다 더 반갑다. 이국인이 타국에서 한국 사람들보다 더 반갑게 불러주는 경험은 즐거운 일이다.


시장 앞에는 이처럼 꽃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12 루블의 전차

19세기의 집들과 눈꽃처럼 흩날리는 꽃씨들 사이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서 있는 아름다운 이르쿠츠크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전차를 타고 싶었다. 앞이나 뒷문으로 올라가면 안내하는 분이 차비를 받으러 오는데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도시의 교외 곳곳까지 들어가는 전차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석까지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다.

종일 전차를 타고 다닌 이르쿠츠크 순례길에서 만난 강 건너에 있는 카잔카스키교회는 그냥 요즘 지은 교회답게 멀리서 보면 더욱 화려하다. 2000년 건축했다고 하는데 다른 교회보다도 시민들이 더 많이 찾는 것 같았다.


도시를 실핏줄처럼 연결해주는 전차
카잔카스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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