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오늘은 바이칼의 20여 개의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알혼섬으로 들어간다.
아침 9시, 어제 이르쿠츠크 시내의 여행사에서 예약을 한 봉고차량을 타고 출발했다. 드디어 꼭 가야 할 곳을 가야 하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그 땅에는 그 곳을 지키고 살아가는 칭기즈칸의 핏줄이라고 생각하는 몽골족의 한 분파인 부리야트족이 살고 있다. 차창밖의 6월의 시베리아는 봄이 오는 소리로 대지가 꿈틀거린다.
호텔마다 들러 싣고 온 꽉 찬 사람들과 편하지 않은 좌석, 더위로 생각보다 먼 거리에 바이칼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바이칼이 제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낡은 봉고차는 여행자들을 가득 싣고 바이칼을 향해 달린다. 두어시간이 지났을까, 휴게소에 세워주는데 레스토랑에는 손님들의 줄이 이미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그나마 빨리 구입할 수 있어 물 한 병과 크로켓 비슷한 ‘삼사’로 간단하게 때웠다. 이동할 때는 아침을 잘 먹어두는 것이 장땡인 것 같다.
샤먼의 호수 '바이칼'
그래도 기대감은 피곤함을 상쇄시키는 것, 사휴르다 선착장에서 10여분 연락선을 타고 알혼섬에 도착했다.
섬은 맞는데 마치 구릉이 있는 몽골 초원에 물을 부어놓은 것 같은 풍경이다. 이 곳은 몽골과 시베리아의 경계에 놓인 스텝 지대에 있는 호수인 것이다. 초원인지 사막인지 불분명한 지역을 한참을 달려서 오후 5시가 넘어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넓은 섬의 크기가 차량을 싣고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들어가서도 민가까지 한 참을 달린다.
어딘들 호수가 안보일까, 그래도 알혼 섬 서쪽에 위치한 호수 옆의 숙소는 기대 이상 깨끗해 보였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숙소여서 일반 게스트하우스의 목조주택이 주는 아늑함과 아기자기함은 덜하지만 가까운 호수 덕에 이 곳에 계속 한 달은 머물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 민족의 고향이라는 바이칼, 이 사실이 정말 궁금했고, 이 곳에 오면 정리가 될 것 같았다.
몽골 역사 전문가 김운회 씨의 저서에 의하면 “코리족 일파인 솔롱고스(지금도 그들은 대한민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른다)가 남쪽으로 가서 고구려 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몽골에서는 정설로 통한다고 한다. ‘코리’혹은 ‘까오리’라는 한 뿌리에서 부여, 고구려가 나왔으며 몽골 초원에서는 몽골족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칭기즈 칸의 후예로 알려진 부랴트(부리야트)족에 따르면 바이칼 일대는 코리국(고리국)의 발원지이며 이 부족 일파가 먼 옛날 동쪽으로 가서 부여, 고구려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역사의 부여와 고구려 시기에 몽골의 역사는 시작한다. 그들 역사의 시작이 '알랑고아'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는 부여 고구려의 '유화부인' 이야기와 똑 같다.
혹자는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가 그의 딸(원성공주)을 고려의 왕(충렬왕)에게 주어 부마국을 만들 만큼 고려에게 관대하고 관심이 많았었던 이유라고 보고 있다. 고려를 가족으로 생각한 몽골의 왕가는 고려 외에 부마국이었던 외국은 없었다.
숙소앞의 호수
6월의 호수에 발을 담그자마자 오~오~ 처음 느껴보는 차가운 통증이 바로 물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다. 바이칼의 물은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15도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에도 50m의 얼음이 얼어버린다는 바이칼의 겨울을, 잠깐 한 철을 보내고 생을 마감할, 이제야 막 한꺼번에 알을 까고 올라온 날 파리 떼들을 보며 상상해본다.
숙소에서 바라본 바이칼
다음 날 아침, 로비에서 러시아제 미니버스인 푸르공을 타고 하는 섬 투어(1인당 900 루블 정도)를 신청했다. 유난히 빠른 러시아말을 하는 것 빼곤 한국인과 다를 게 없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긴 드라이버 역시 부리야트족일 것이다.
푸르공을 타고...
푸르공
면적이 거제도의 두 배 만한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를 축소해 놓은 듯 바나나처럼 길쭉하다. 그래서 동쪽과 서쪽의 자연환경과 식생이 다르다. 차가 멈추는 곳마다 보이는 신비로운 풍경은 먼 태곳적으로 순간순간 날 이동시킨다. 샤먼의 전통이 남아있는 이 땅의 이름은 부리야트어로 샤먼 (바이)의 호수 (칼)를 뜻한다고 한다. 혹자는 몽골의 바이갈에서 왔다고도 하고.
사자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악어를 닮은 것 같기도 한 바위가 있는 호숫가에는 뭔가를 세웠던 흔적이 있다. 이 곳을 빼씨얀카부두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한동안 배가 닿았던 곳이었을 것이다. 이 곳은 소비에트 시절 강제수용소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빼씨얀카부두
가는 곳마다 신비롭고 예사롭지 않은 풍경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고, 도착한 알혼섬의 최북단 하보이 곶의 물빛은 더욱 푸른 청록빛이다. 하보이곶 주변의 수심은 1,637m로 가장 깊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송곳니를 닮았다. 알록달록한 띠들을 두른 신목들과 돌탑으로 가는 길은 마치 의식을 치르기 위해 가는 길목처럼 느껴진다. 돌탑 위에 올린 내 돌 하나.
하보이곶
하보이곶을 1시간 정도의 트레킹을 다녀오니 각 차의 드라이버들이 요리를 해서 투어에 참여한 손님들을 대접한다. 오물(바이칼의 훈제 생선)을 끓여서 빵과 함께 내오는데 우리나라의 매운탕 맛이다. 탕에 빵을 찍어먹으니 그야말로 일품, 자동차에 타고 다니기만 한 투어인데도 힘들었는지 한 그릇을 다 비웠다. 퓨전요리가 아닐까도 생각해봤지만 드라이버는 이 곳의 전통요리라고 한다.
중국의 요리는 기름으로 볶는 요리가 주류라면 몽골의 전통요리는 우리처럼 대부분 끓여서 먹는 탕 문화다. 길고 긴 시간의 흐름이 지난 후지만 어쩔 수 없이 공유하고 있는 흔적들은 그들과 우리를 소리 없이 다시 한 올씩 엮어주는 것 같다.
하트처럼 생긴 사랑의 언덕
사랑의 언덕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더니 긴 낭떠러지 한편에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간다. 뭐지?
아싸! ~ 바이칼에만 살고 있는 웬만하여서는 잘 볼 수 없다는 귀하신 몸, 민물 물개인 네르파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아~ 저 귀여운 모습이란~~~
네르파
섬이 얼마나 넓은지 아침 9시에 시작한 투어는 오후 5시가 되어 숙소에 돌아와서 끝이 났다.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 알혼섬을 떠난다. 깊은 소나무 숲에도 들어가 보고 한나절 긴 해변에서 놀아도 봐야 하는데, 이르쿠츠크로 떠나기 전, 의식처럼 호수의 물에 발을 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