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산이 있는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늘도 어제처럼, 고도를 체크하며대해초산고원의 입구까지 구름 속을 엉금엉금 기어 왔다. 차를 타고 왔건만 내 몸은 걸어온 것보다 더 힘이 들어가 있다.
윈난의 6월은 우기인 것이 진정 맞다. 우기인 것을 알면서도 대해초산(大海草山)을 떠 올리며 양 떼들이 풀을 뜯는 그림 같은 초원을 떠올렸다. 융단처럼 끝이 없이 펼쳐진 야생화 군락 속을 헤매며 다니는 상상을 얼마나 했던가, 입구에는 대해초산이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지만 창구에는 표를 팔지도 않는다. 내일 오라고 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내일도 가망이 없다. 대해초산의 식물과 꽃들은 그냥 한 계절 숨어 살고 싶은 거다.
내려오는 길, 멀리 도시가 보이기 시작하니 하루 종일 같이 다녔던 윈난 고원의 구름은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비 개인 오후 같은 후이쩌(会泽)의 모습이 성에 낀 유리창을 닦아낸 것처럼 선명하게 들어온다.
비 개인 후이쩌(会泽)
하루 저녁 의탁하기에 후이쩌는 분에 넘칠 정도로 활기차고 도시스럽다. 도시를 산이 둘러싸고 근처를 지나는 여러 강들이 이곳에서 만난다. 이름을 보니 그럴듯하다.
지공산을 가기 위해 들렀던 험한 산길을 돌고 돌아 찾은 자오통시(昭通)는 기원전 122년 장건에 의해서 발견된 수션두다오(蜀身毒道)의 중심지이다. 촉나라(지금의 쓰촨)와 동남아, 인도를 통하는 길의 중심에 있어 모든 물자들(중국에서는 비단과 대나무, 동남아와 인도에서는 금, 은, 호박 등)이 모여들었다. 그렇다면 남방실크로드는 북쪽의 실크로드보다 200년은 앞섰다는 이야기가 된다. 도시의 이름이 우리 음가로는 소통(昭通)이다. 그러고 보면 한자에는 많은 시간과 공간이 함축되어 표현된다. 언제부터인지 한자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나는 중국 여행을 시작하면서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중국말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 한글을 배우는 네댓 살 먹은 아이처럼, 지나가는 간판에서 아는 글자가 보이면 반갑고 신나는 것이 은근히 중국말이 재미있다. 시끄럽게 들렸던 중국말의 특징인 성조가, 관심을 가지고 들으니 음악의 리듬처럼 들리기도 한다.
후이쩌는 청나라때 동촨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구리 채굴로 인해 마을이 커졌다. 당시 동전 주조 시설의 중심지답게 시내에는 동전으로 꾸며진 공원이 있다. 길도 시원하고 널찍하게 뚫려있고 인구도 꽤 많은 지 관청의 규모도 크다. 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후이쩌의 옛길도 깨끗하다.
후이쩌 시내의 공원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후이쩌의 옛길
동촨(东川), 6월의 홍토지
후이쩌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내려오다가 동촨(东川)에 이르면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예전에는 후이쩌현에 속해 있었다고 하는데 동전을 만드는 구리의 생산지가 동촨이었다고 한다.
홍토지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10월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6월의 홍토지를 두 번이나 오게 되었다. 맑은 날에 한 번, 10여 일 후 비가 개인 후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당연히 맑은 날보다 비가 온 후 땅의 색깔은 훨씬 산뜻하고 차분하다.
구름이 살짝 커튼을 올린 듯, 월량전이라고 써 있었던 곳에서
낙하구(落霞沟), 하늘에는 아직 기다리고 있는 구름들, 잠시만 비켜주면 좋으련만..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넓게 퍼져있는 동촨의 둥근 능선들에는 시절에 맞는 작물들이 경작되는데, 기후가 좋아서 일 년 내내 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농부들의 고단함이 스쳐 지나간다. 다니다 보면 뷰가 멋진 곳에는 나름대로 예쁜 이름들을 붙여 놓았다.
윈난의 흙빛깔이야 대부분 붉은색을 띠고 있지만 동촨의 땅이 더 아름다운 것은 이곳의 능선은 다른 곳의 언덕보다 비교적 낮은 각도의 넓은 대지가 긴 시야를 확보해준다. 게다가 땅에 대한 긍지랄까, 주민들은 그들의 노동에 자긍심을 덧입혔다. 그래서 더욱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