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밍에서 광난广南까지는 약 462Km로 거리가 장난이 아니다. 광난에서 바메이坝美까지는 43Km로, 광난만 도착하면 바메이는 지척인 셈이다.
바메이로 가는 길 양쪽의 마을 풍경은 석회암지형의 잔구처럼 생긴 산들이 카르스트 지형으로 유명한 구이린을 연상시킨다. 카르스트 지형은 아무래도 윈난 동남부인 이곳 주변부터 구이린을 지나 베트남의 하롱베이까지 연결된다. 광난 입구의 노점에서 망고, 포도, 복숭아 등의 과일과 옥수수를 샀는데 정말 싸고 맛이 좋다.
광난 입구
광난현에 들어서서 약 1시간가량 오니 바메이 마을에 들어갈 수 있는 ‘세외도원’이라고 쓰여 있는 티켓 창구가 보인다. 주변에는 두건으로 머리 장식을 하고 전통복장을 한 아낙네들이 모여 있는데 그중 한 분이 다가온다. 매표 순서대로 손님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나보다.
마차를 타고 10여분 동굴 앞까지 들어간다. 동굴 옆에는 호텔들이 들어서는 듯 공사가 한창이다.
북송시절 전쟁을 피해 숨어들어간 좡족壯族이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동굴 앞은 물길의 하류로, 보가 만들어져 있고, 우기여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는데 작지만 수력 댐의 역할도 충분히 할 것 같다. 바메이 마을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을을 가거나 나오기 위해서는 석회암동굴을 통해야 한다. 동굴 입구는 무척 높지만 폭은 좁아서 때에 따라서는 동굴의 입구를 쉽게 감출 수도 있겠다 싶다. 도화원기에 나온 도화원의 입구를 발견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어쨌든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곳을 상상하기에는 딱인 곳이다.
‘문득 산 하나가 나왔다. 산에 작은 입구가 있어서 그 입구에서 꼭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더라.’(도화원기 중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배, 왼쪽 위에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사람이 오면 순서대로 마을로 태워 들어간다. 길쭉하게 생긴 배는 긴 대나무 같은 것으로 강바닥을 짚으면서 저어 가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속을 랜턴 하나 없이 잘도 간다. 지쳐가는 배가 훅, 하고 지나가는 소리만 들릴 뿐, 타고 있는 사람의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정적이 이어지다가 왼쪽에서 빛이 보이면서 물이 빛처럼 떨어진다. 20여분 지나니 수차가 있는 동굴 입구의 실루엣이 보이더니 날쌘 제비들이 반기는 듯 비행을 한다. 빛나는 녹색으로 그득한 밭들이 있는 마을이 보인다.
‘좋은 밭, 아름다운 연못, 대나무, 뽕나무가 있었고 동서로 이어지는 길들이 나있고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 왕래하며 농사를 짓는데 남녀가 옷 입은 것이 모두 외지인 같았더라.’(도화원기 중에서)
깊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중간쯤, 어둠에서 물소리와 함께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 신비롭다.
마을에 도착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가던 그녀가 자신은 좡족이라고 한다. 좡족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그녀의 얼굴이 베트남인의 얼굴과 비슷하다. 좡족은 광시 좡족 자치구에도 많이 살지만 윈난과 베트남 쪽에도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민족 고유의 언어도 가지고 있을 만큼 중국에서 한족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집 이층은 게스트하우스처럼 꾸며져 있고 깔끔하다. 거실에서는 와이파이도 잡힌다. 분지형의 평원에는 옥수수와 각종 작물들이 있고 밭 사이로는 수량이 풍부한 물길이 지나간다. 멀리 잔구형의 산들이 겹겹이 보인다. 부디 내일은 날이 맑아서 뒷산이라도 올라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을에 내려서 좡족 아낙네를 따라가는 길
숙소 창밖으로, 먼 산의 운해
마을 풍경
바램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아침이 되어도 창밖의 뾰족한 먼 산들은 여전히 구름으로 덮여있고, 새벽같이 내리던 빗소리는 아침이 되어도 창문을 두드린다. 미끄러운 뒷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겠지만 동네 산책은 더운 것보다는 낫다. 무엇하나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부겐베리아가 흐드러진 마을은 수로를 중심으로 길게 형성이 되어 있다. 나이 많은 나무도 마을을 지키고 있고, 기웃거리다 보면 이런저런 농산물과 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 집도 보인다.
어제 오후 물길의 하류로 들어왔던 우리는, 나가는 길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이 지나면 동굴의 형태가 없어질 것 같은 문처럼 생긴 높지만 짧은 동굴과 긴 동굴 2개를 지나가야 한다. 마을로 나가는 마지막 동굴이 꽤 볼만하긴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알록달록 색 조명으로 장식을 해 놔 버렸다. 외부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이다.
‘얼마를 머무르고 가게 되니, 마을 사람들은 “외부 사람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하고 부탁을 한다. 이미 밖으로 나와 배를 타고 길을 잡아서 곳곳에 표시를 해 두었다. 표시한 것을 쫒아가서 찾으려 했으나 다시 길을 찾을 수 없더라.’(도화원기 중에서)
마을 입구에서 본 마을의 지도, 한글 설명은 내가 적은 것
마을을 떠나는 여행객들
짧아서 더 멋있었던 중간 동굴
나가는 쪽으로도 사람들이 들어온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매일 세외도원 (世外桃園)의 명성을 듣고 끊임없이 방문객은 이어지는 것 같다.
도연명(365~427)은 동진(東晋) 시대 심양사람으로 그의 나이 41세, 팽택 현령으로 있을 때 중앙에서 내려온 감찰관의 패행을 보고, 임명된 지 80일 만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고 한다. 그때 쓴 시가 ‘귀거래사’이다. 이후에도 은둔 시인으로 유명한 그에게 정계의 거물들이 출사를 원했지만 그의 관직은 거기까지였다. 귀거래사를 보면 은둔이 아닌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인의 자유로움이 깔려 있다.
그의 도화원기를 보고 이곳저곳에서 세외도원이라고 한단다. 그의 고향이 랴오닝성의 심양이 맞다면 윈난과는 꽤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