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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Jun 05. 2019

오래 머무르고 싶은, 떠나기에는 아쉬운

#6 어쩌다가 '강남수향', 쑤저우 유원留園


      

리우위엔留園(유원)은 쑤저우의 졸정원과 베이징의 이화원颐和园, 청더의 피서산장避暑山庄과 함께 중국 4대 원림이다. 

오후 4시경,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유원으로 가려니 하늘이 비가 올 것처럼 내려앉아있다. 유원留園은 쑤저우 성 창문阊门 밖 산탕지에 근처에 위치한다. 늦은 오후 관람은 궁극적으로는 관람객 무리를 피하기 위해 잡은 시간이었다. 예상대로(비가 올 것 같은 날씨 탓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사진을 찍기에는 빛이 불안했다. 다 만족할 수는 없지 않나.

   



유원留園은 1589년 명明대에 서시태徐时泰 (1540~1598)가 원림으로 조성하였으며(이보다 이른 시기에 건립했다고도 함) 옆에 있는 서원으로 인하여 동원東園이라 불렸다. 원림의 가산 조성에는 뛰어난 조경사인 주시신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동원을 드나들었던 시인이면서 오현(당시 동원이 있던 곳의 지명)현령이었던 원굉도袁宏道(1568~1610)가 “장강 이남의 원림 중 최고이다”라고 남길 만큼 당시에도 유원의 아름다움은 소문이 자자해 이름난 사대부들이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그 당시 동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현재 유원의 중원 부근이다.     


이후 원림은 청대를 지나면서 아름다워지고 개성은 더욱 뚜렷해졌다. 1794년에는 유서刘恕(1759~1816)가 주인이 되면서 ‘한벽장寒碧莊’으로 불렀으며, 1876(또는 1873년)년에는 성강盛康(1814~1902)이 사들여 확장 보수하면서 이름도 현재의 유원으로 바꾸었다. 당시 쑤저우에 있는 모든 전통원림의 장점이 표현된 유원은 쑤저우에서 명성이 높았다. 학자 유월俞樾(1821~1907) 또한 유원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남기고 있다. “유원의 조화는 쑤저우에서 으뜸이다.”



연못쪽으로 열려있는 아름다운 건물


명明대의 대표적인 원림이 졸정원拙政園이라면, 유원은 청淸대의 대표적인 원림이다. 명대에 유원이 처음 만들어졌지만, 명대의 흔적은 중원에 약간 남아있을 뿐 대부분 청대에 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원림의 입구를 지나면 중원의 연못이 나타난다. 수공간인 연못은 졸정원에 비해 작은 편이며 그 둘레는 건축물과 정자 등 수목으로 꽤나 빽빽하게 조성되어 있다. 관람은 자연스럽게 회랑을 통하는데 700여 미터의 긴 회랑은 각 구역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회랑은 다른 원림에도 있지만, 유원의 회랑은 비가 도 비를 맞지 않고 원내를 다닐 수 있어 관람객이 매우 존중받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다. 색종이를 한두 번 접어 가위로 쓱쓱 오려 낸 것 같은 회랑의 우아한 화창花窓(뚫려있으므로 누창漏窓이라고도 한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바쁜 발걸음은 뜰로 난 화창花窓 앞에서 그 안에 들어와 있는 또 다른 풍경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머물곤 한다. 회랑回廊은 곧 화랑畵廊이 되었다.

    

어떤 구석도 놓치지 않는다.
아름다운 화창花窓, 이오밍 페이는 쑤저우박물관에 이 화창花窓을 오마주했다.
회랑에서


東園은 건축물과 함께 어우러진 수목과 태호석들이 변주된 음악처럼 발길을 옮길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청대의 건축 내부를 장식한 많은 서화 작품들까지(서화는 원림 구성 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구석구석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건축물 안의 서화들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東園 끝 임천기석지관林泉耆碩之館 앞에 있는 관운봉冠云峰은 중국에서 제일 잘생긴 태호석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름을 알고 보니 구름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사자림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잘생긴 태호석이 많은 걸 보면 소장자들의 태호석 사랑이 유난했던 것 같다. 유원에 있는 많은 태호석 중 12개의 태호석은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널리 알려진 것들이라고 한다. 어떤 것은 선인장이나 대나무 같기도 하고 포효하거나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모습 같기도 하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대부분의 태호석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숭숭 뚫린 구멍은 태호석의 아름다움을 가늠하는 요소이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 또는 동물 형상을 하고 있는 태호석들, 가운데가 6.5미터높이의 관운봉이다.
들락날락거리고 싶은 담장의 문
원림 바닥문양들이다. 위는 명대의 졸정원, 아래는 청대 유원의 문양, 유원에서는 살아있거나, 모던하게 표현 방법이 진화했다.

 

중국에서의 원림 조성은 신선들이 사는 이상향을 추구한다. 仙人들은 신선이나 도를 닦는 도인들을 말하며 한자의 ‘선仙’ 자를 보면 그들은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원림 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가산假山 조성이다.

    

가산假山과 정자
귀한 분재들을 볼 수 있는 분경원


관람객들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오후 5시가 훌쩍 넘은 시간, 분재가 있는 분경원을 지나 西園에 도달했을 때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西園은 자연스럽게 식재된 수목들과 어우러져 자연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호젓하고(서원을 관람할 때는 비가 왔으므로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낭만적이며 떠나기 싫을 만큼 다정하다. 졸정원拙政園에서도 볼 수 있었던 예쁜 색깔의 조약돌(때론 도기나 벽돌)로 수를 놓은 것처럼 꾸며놓은 오솔길은 나로 하여금 땅까지 확인하면서 걷게 한다. 원림 전체에 깔린 돌 문양은 어느 한 곳도 중복된 이미지가 없다.



 비가 오면 더 좋은 유원에서 웬일인지 이미 폐관시간이 지났는데도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내리는 빗줄기가 사진 속에 흔적으로 남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빗소리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비가 오면 더 좋은 유원


졸정원拙政園보다 작지만 꽤나 넓은 원림은 모든 자연과 계절을 들여놓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한, 모든 요소가 들어있는 하나의 방주 같다. 한 프레임에 꽉 찬 명화 속을 헤매다 나온 듯, 콘트라스트와 색조, 균형이 완벽한 네 편의 옴니버스 영화를 감상하고 나온 기분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는 영문 이름이 꼭 쓰여 있다. 아직도 어설픈 중국어보다 영문 이름이 직관적으로 다가올 때가 더 많다. 원림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발견한 이름 'Lingering Garden', 이름 한 번 기가 막히다. 유원留園은 오래 머무르고 싶은, 떠나기에는 아쉬운, 다시 오고 싶은 원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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