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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Jun 15. 2019

태양이 빛을 잃어가는 시간

#8 어쩌다가 ‘강남수향’, 쑤저우 망사원網師園


쑤저우 원림을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쑤저우에 들어온 날 오후, 느지막이 호텔에서 길만 건너면 위치하는 망사원을 산책하는 느낌으로 다녀왔다. 처음에는 보거나, 관찰한다는 어떤 목적도 없이 가볍게 들어섰다. 늦은 오후 시간, 한낮의 태양은 빛을 잃어가는 순간이며,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도심의 중심 주택가 한가운데 높은 담장 안 차분한 원림 풍경은, 나른했던 몸과 마음을 확 깨도록 만드는 별천지였다. 쑤저우 원림을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청명한 색깔의 사파이어를 바라보면 마법처럼 또 다른 세상이 보이는 듯, 고요한 연못에 비치는 반영은 물속의 빛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다음날 두 번째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평화롭거나, 빛났던 전날의 감동이 덜 했지만 역시 아름다웠다.


가산의 높이가 지붕과 비슷해서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아늑한 느낌을 준다.
죽외일지헌에서


원림에 들어서는 순간 나타나는 오동통하며 귀엽고 예쁜 돌다리 공교拱橋를 경계로 펼쳐진 사각형의 수공간은 어둠이 내려오면 하늘에서 별들도 내려와 놀고 갈 만큼 빛나는 공간이 펼쳐진다. 들고 나면서 제일 많이 시간을 보냈던 곳이 앙증맞은 공교 부근이 아니었나 싶다.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귀엽고. 이곳에 서서 연못을 바라보면 가산 뒤쪽에 있는 건물과 담장으로 가려진 만권당이 있는 동쪽 주택들과 일부 건축물을 제외하면 망사원의 풍경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공교 앞에 서면 대부분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귀엽지만 아름답기까지 한 공교
오른쪽 가산 뒤로 보이는 반산정과 흰색 반영건물의 죽외일지헌


왼쪽으로는 꽤 높은 가산과 탁영수각이 오른쪽(동쪽)은 주택 만권당과의 경계를 알리는 흰색 담장이, 공교 맞은편(서북쪽)에 있는 간송독화원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고 이어서 굽은 돌다리와 고목, 죽외일지헌, 사압랑射鸭廊, 반산정伴山亭 등이 보인다. 서쪽에 연못과 한 쌍처럼 어울리는 정자는 육각형 모임지붕을 한 월도풍래정이다.

담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다 보면 놓여있는 모든 건물들의 시선은 연못을 바라본다. 죽외일지헌의 화창에 비치는 사과나무 앞에는 사과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찍기 위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월도풍래정이 있는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환상적인 스카이라인이 그려진다. 동쪽 흰색 벽과 붙어있는 비대칭의 두 개의 지붕은 연못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보는 이를 연못 속 선경으로 안내한다. 아름다운 청대 양식 건축의 지붕이 연못 안으로 베일을 만들었다. 주인장의 심미안은 그윽한 연못의 그림자만큼이나 탁월하다.


다른 전통원림에서는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풍경, 반산정 뒤로 보이는 만권당의 반영
배치와 착시로 인해 매우 넓어보이는 망사원, 왼쪽 곡교위로 오래된 백피 소나무 한 그루, 송대에 사정지가 심은 나무가 아닐까.


원림의 이름인 ‘망사網師’는 어부를 이르는 말로 탁영수각과 더불어 굴원의 작품‘어부사’의 향기가 배어있는 곳이다. 가산 옆에 위치한 탁영수각濯纓水閣의 탁(씻을), 영(갓끈)은 “갓끈을 씻는다”라는 뜻이 들어있는데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면 되리니”는 기원전 초나라 사람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는 오래된 명문이다. 갓끈을 씻고 세상으로 나가 할 일을 다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 건축이다.  

간송독화원에서 바라보니 맞은편 탁영수각濯纓水閣의 모습은 옆에 있는 가산과 키를 같이하고 물 위에 떠 있듯 평화롭다.


죽외일지헌을 나와 간송독화원 앞에서 본 가산과 탁영수각
전통원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회랑과 원림의 모퉁이


있어야 할 곳에 모든 건축들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데, 졸정원에 1/6에 불과한 작은 원림은 아이러니하게도 졸정원의 여유 있는 공간을 닮아있다. 건축이 생각보다 많음에도 작고 예쁜 건물들은 연못가로 향해 있고 북쪽의 간송독화원이나 남쪽의 소산총계헌 등의 건물들은 뒤로 물러나 있는 들쑥날쑥한 배치로 인해 눈에 전혀 거슬림이 없다.     

가산 뒤에 있는 소산총계헌小山叢桂軒의 영어 이름은 The Small Hill and Osmanthus Fragrance Pavilion이다. ‘작은 산이 있는, 계화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말인데, 앞에 있는 가산과 건물을 하나로 본 것이다. 실제로 소산총계헌의 창문은 가산을 향해 나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가산의 모습을 프레임 안에 넣어 놓았다. 10리 밖에서부터 향기가 난다는 계화는 계수나무를 말하는데, 달을 즐기는 중국인들은 대나무만큼이나 계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졸정원에도 이름에 계화가 들어간 건축물이 있었다. 서쪽에는 달을 즐기는 월도풍래정이 서 있으니 달밤의 망사원은 한 번쯤 와 봐야 하지 않을까.   

 

소산총계헌의 창, 앞으로 가산의 모습이 보인다

   

망사원은 남송 2대 효종 때 1180년 경 파면되어 쑤저우에 온 사정지史正志의 주택인 만권당萬卷堂이 있던 자리다. 만권당의 아래쪽에 조성한 원림을 어은漁隱이라 하였다. 초야에 묻혀서 책이나 보면서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당시 사정지가 심었다는 측백나무와 소나무 한 그루가 간송독화원 앞에 남아있다고 한다.


이후 1765년경(혹자는 1755년이라 함) 청 건륭제 때 송종원이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중건하고 송 대 첫 이름인 어은漁隱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망사원이라 불렀다. 건륭제 말년인 1795년 부상 구원촌이 구매하여 확장 보수하였으며 신해혁명 이후 민국 초기에는 1917년 군벌 장쭤린張作霖(1875~1928)이 30만 량을 주고 구매하였다.

1932년부터는 장선자张善孖(1882~1940), 장대천張大千(1899~1983) 형제가 망사원 안에 있는 전춘이殿春簃를 화실로 사용하였다. 중국 산수화로 유명한 장다첸張大千으로 인하여 망사원網師園은 그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현재도 중국에서 가장 고가에 낙찰되어 가끔 뉴스에 오르내리곤 한다. 1930년 경 당시, 그림 구입을 위해 망사원을 들락거린 투자자들은 100년도 못 되어 뻥튀기하듯 세상에서 보기 드문 가장 값진 투자를 한 셈이다. 공부를 좀 하고 돈과 심미안이 있다면 그림 투자만큼 단단히 챙길 수 있는 종목도 드물다. 그림을 매개로 부가 이동하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가끔 일어나지 않는가.     



갓끈을 씻어야 하는 탁영수각濯纓水閣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남자, 갓끈이 아니라 물통에 붓을 씻고 있다. 큰 그림자인 장대천 화가를 생각하고 왔을까. 조심스럽게 다가가니 화면 가득 월도풍래정을 중심으로 한 연못 풍경 그림을 보여준다. 어림잡아 7년가량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던 장대천의 그림 중에 망사원을 그린 작품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쳤다.   

  

왼쪽은 월도풍래정, 회랑을 통해 갈 수 있다. 오래된 나무 두 그루가 오른쪽과 가운데 보인다.  
탁영수각 옆에서 그림을 그리던 남자, 중국에서는 야외에서 그림그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봄날의 이미지를 색깔을 통해 나타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로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들이 많았다. 두 번 모두 늦은 오후에 방문했으므로 다른 원림에 비해 방문객이 적었던 것도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많은 이들이 쑤저우 박물관과 졸정원, 사자림이 모여 있어 사람이 바글바글한 쑤저우 핫 플레이스에 지쳐서 그냥 포기하는 곳일 수도 있지만 다른 날,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방문하기를 권한다. 늦은 3월의 봄날에 만난 망사원은, 만나는 순간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어, 다른 원림에 집중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주었다.

    

지하철역과는 꽤 멀어 많이 걸어야 하지만 졸정원이 있는 쑤저우 박물관 정류장과 망사원 정류장을 오가는 버스가 번호를 기억하지 않아도 될 만큼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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