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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기거하기에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 러시아 – 세르기예프 파사드

by 그루


카잔에서 모스크바

이젠 시베리아를 기차로 횡단할 일은 아마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저녁거리인 샌드위치 하나 사들고 18시 11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카잔 기차역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준비하고 긴장하는 여느 날과는 달리, 마지막 횡단 열차라고 생각해서인가, 마음은 소풍 가는 것처럼 상쾌하다. 시베리아 횡단 기차 여행이라는 것이 누구나 낭만을 가슴에 품고 달리지만, 여러 날 지내기에는 불편함이 만만치 않다.


기차에서 잠을 자고, 그 자리에서 밥을 먹거나 군것질을 하고, 가끔 10여분 혹은 30여분 정차하는 역에서 내려 잠시 몸을 푸는 것 말고는 거의 몸을 움직일 일이 없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남의 눈이 민망하지도 않은 꾀죄죄한 몰골로 책이라도 만지며 아무렇지 않은 듯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꽤 오래 전, 이르쿠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때 처음 횡단 열차를 탔다. 그때는 영화에서 마주친 시베리아의 풍경을 찾을 것처럼, 망원렌즈까지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하루 종일 차창에 기대고 살았다. 결론은 움직이는 기차에서 건진 사진은 없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매끈하고 하얀 자작나무들과 띄엄띄엄 나타나는 소박한 민가와 다차들, 6월 초입이었지만 그제야 툰드라가 기지개를 켜는, 언 땅이 녹은 물은 바쁜 듯이 수많은 개울과 호수들로 모여들고, 투명한 햇빛과, 시시각각 변하던 하늘의 색깔과 함께 은하수처럼 반짝이던 시베리아 들판은 잊을 수가 없다.

러시아에서 처음 타보는 2층 열차


처음 타보는 2층 기차에 오르니 좌석 테이블 위에는 약간의 간식과 음료까지 놓여있다. 열차는 쾌적하고 깨끗해서 부담 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할 정도로 시설은 최고다. 아마도 2018년 월드컵의 도시답게 카잔과 모스크바를 운행하는 기차들은 새롭게 바뀌었나 보다. 게다가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행운도 어쩌다 생기지만, 4인실 쿠페인 우리 방에는 우리 둘 외엔 아무도 타지 않았다.

카잔에서 늦은 오후인 6시 10분경 출발한 열차는 12시간 26분 후 다음날 새벽 6시 40분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비가 뿌리는 새벽임에도 몹시 분주해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 때문인가, 오랜만에 만난 숨 가쁜 대도시는 호기심을 넘어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러시아의 본향에 온 것이다.


사흘 후에는 페테르부르크로 넘어가야 하니, 지하철 티켓(예지느이) 3일 권을 420 루블에 끊었다. 창구에서 3일 권을 달라고 하니 선뜻 만들어준다. 회당 55 루블이니 여러 번 타야 이익이지만, 그것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매번 지하철 티켓을 끊기 위해 일회용 매표구 앞에서 서성이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으니, 분실하지만 않는다면 3일 권을 끊는 것이 좋다. 거대 도시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지하철 시스템은 한국과는 달라서 여러 번 타봐야 터득한다. 가장 낯선 것은 역마다 입구와 출구가 다르며, 같은 지역이라도 호선에 따라 역의 이름이 다르다. 의외로 단순한 것은 왼쪽에서 잘 못 탔으면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다시 탈 수 있고, 티켓은 들어갈 때 개찰구에 한 번만 찍고 나갈 때는 그냥 나간다. 30초 이내로 다음 열차가 도착하니 열차를 타려고 뛰는 사람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낯선 키릴 문자가 빨리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환승할 때 오른쪽과 왼쪽 방향을 잘 구분해서 타야 한다. 리투아니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낸 날을 더해 7박 8일 모스크바에서 지내는 동안, 지하철역과 기차역이 연계되는 시스템을 인식 못하고 들어갔다가 애를 먹었던 사건은 있었지만, 지하철에서는 거의 실수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확신이 없을 때는 지나가는 길손 붙잡고 바로 물어보기, 러시아 사람들 담백하고 친절하다.

20190821_134146-01.jpg 모스크바 지하철 티켓(예지느이) 3일 권


이른 아침, 오후 2시에 체크인을 하는 나의 첫 모스크바 숙소인 파벨레츠카야Paveletskaya역 근처에 있는 호텔GorodOtel에 짐을 맡겼다. 푸시시한 얼굴로 비까지 뿌리는 날씨에, 일요일이어서 더욱 사람이 넘치는 붉은 광장을 가려니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날에는 사람이 적은 곳이 답이다. 세르기예프 파사드를 가려면 버스에서 부족한 잠이라도 청할 수 있으니.

러시아 정교회의 심장 세르기예프 파사드Sergiyev Posad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약 70킬로미터에 위치한, 황금 고리(모스크바 근교 북동쪽에 오래된 도시들이 고리 모양으로 위치하는 곳)라고 부르는 도시 중의 하나인 세르기예프 파사드로 향했다. 호텔에서 가까운 파벨레츠카야Paveletskaya역에서 출발하여 메트로 베데엔하ВДНХ역에서 하차했다.


구글 맵을 키고, 코스모스 호텔을 보면서 아주 조금만 가면 오른쪽으로 버스터미널이 보인다. 기사에게 200 루블을 주고 표를 구입하고, 막 떠나려는 세르기예프 파사드Сергиев Посад행 388번 버스를 탔다. 비도 오고 오늘은 일요일이다. 주말에 차가 막히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낸들 상관이 없었으니, 졸다가 보면 종점이니, 틀림없이 내릴 것이다. 내려서 보니 평소에 1시간 2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 약 2시간이나 걸렸다. 모스크바로 돌아올 때는 내렸던 곳 맞은편(삼거리)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바쁠 때는 기사에게 구입할 수 있다.

내린 곳에서 그 방향으로 길을 따라 약 10여분 가다 보면 세르기예프 파사드Sergiyev Posad 안내 그림이 보이면서 성곽이 있는 러시아 정교회 수도원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작은 성채가 보이기 시작하니 피곤함이 가시고 호기심이 밀려온다.


수도원 입구


마을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면 성곽이 보이는데 넓은 수도원 앞 광장은 중국 관광객을 태우고 온 대형버스로 가득하다. 매표소가 보이지 않아 성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표를 사 오란다. 도대체 어디에서? 물으니 넘치는 차량 너머 맞은편에 있는 붉은 건물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해도, 개인으로 온 외국인들만 인포센터에서 티켓을 구입하는지, 매표구는 한가하다. 매표 사무실 안에 ATM기도 있어 본 김에 은련 체크카드를 사용해 부족했던 루블화를 뽑았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다른 카드보다 수수료가 적은 은련카드가 답이다.

세르기예프 파사드는 성 세르기우스(세르게이) 라도네즈스키가 1340년 경 세운 수도원의 시작과 함께 성장한 곳이다. ‘세르기예프의 정착지’라는 뜻을 가진, 허허벌판에 소박한 목조 수도원을 세우고 그를 따르던 수도사들과 공동체 생활을 한 것이 수도원의 시작이었으며, 점차 수도원 주변으로 주민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당시 러시아의 도시국가들은 킵차크 칸국의 통치를 받던 시기였지만, 조공과 대공 임명 외에는 자치를 허용했으며 특히 종교에 관대했던 몽골의 통치방식으로 러시아 정교회는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막강한 세력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수도원안의 건물들은 대부분 이반 3세와 이반 4세에 의해서 지어졌으며 현재와 비슷한 성벽이 갖추어진 요새형의 수도원의 모습은 이반 4세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15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들이 아직도 건재한 수도원이 있는 세르기예프 파사드는 인구가 10만을 조금 넘는 소도시지만 수도원 안에는 종교 대학과 신학교까지 있을 정도로 여전히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종교 도시다.

돈 강의 승리자 ‘돈스코이’


모스크바 공국의 드미트리 대공은 1380년, 킵차크 칸국과의 쿨리코보Kulikovo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것은 루시(러시아)가 몽골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투이며,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타타르에게 무서운 보복을 당하긴 했지만, 러시아의 힘으로 타타르를 물리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 준 전투임에 분명했다. 드미트리 대공은 돈 강 유역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돈 강의 승리자라는 뜻을 가진 돈스코이로 이름을 바꿨다. 그가 쿨리코보 전투에 나가기 전, 이곳에 와서 성 세르기우스 라도네즈스키St. Sergius Radonezhsky의 축복을 받고 믿을 수 없는 최초의 승리를 한 것이다. 루시(러시아)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모스크바 대공이 전쟁에 나가기 전 이곳에 와서 사실상 허락을 구하는, 축복 기도를 받은 것을 보면, 당시 수도원의 막강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수도원의 심장, 삼위일체(트리니티) 대성당


1340년 경 성 세르게이 라도네즈스키가 활동했던 작은 나무 교회들은, 1392년 세르기예프 파사드를 침략한 타타르에 의해 불태워졌다. 성 세르기우스가 러시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된 이후 그 자리에 1423년에 석조로 된 삼위일체(트리니티) 대성당이 완성되었다. 이곳에는 교회 창립자인 성 세르게이(세르기우스)의 무덤이 있으며, 러시아 이콘화의 거장 루블료프가 그린 이콘들이 남아있다. 지금은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루블료프의 대표작 <성 삼위일체>는 교회 이름이 되었다.


모스크바 이반대제의 종탑보다 높다는 중앙의 탑, 왼쪽의 황금색 쿠폴과 긴 창이 있는 건물은 트리니티 대성당이다.
치유의 샘에서 본 트리니티<성 삼위일체> 대성당, 길게 줄이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수도원 입구에서 안쪽에 위치한 대성당은 황금빛 작은 쿠폴(둥근 지붕)들을 이고 있으며, 좁고 긴 창을 가진 흰색의 건물에서는 은은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입구에는 관광객이 아닌 신자들이 긴 줄로 늘어서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경건해 보이며, 아마도 신부의 축복을 받으려는 순서인 듯 누구도 빨리 들어가려고 허둥대지 않는다. 사람들처럼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고 긴 줄 뒤에 서 있다가, 바쁜 마음에 앞으로 가서 목례를 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들어갔다.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작은 불빛들과 함께 예배당 벽에 그림자처럼 서서 천사의 음성처럼 끊임없이 불러주는 아카펠라 성가는 마치 꿈속에서처럼 난감하리만치 빠져든다. 황홀하게 몸과 마음을 감싸는 성가는 종교심이 거의 없는 내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아카펠라를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일까, 그 후로도 종종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는 물론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여행할 때, 당연한 듯 발트와 슬라브 지역 문화에서 발달한 아카펠라 합창에 귀를 쫑긋 세우고 감상하곤 했었다.


우스펜스키 대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우스펜스키 성당, 왼쪽 뒤에 모스크바에 있는 이반대제의 종탑보다 더 높다는 종탑이 보인다.


중세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수도원의 성문 격인 세례요한 탄생교회를 들어서면 동화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예배당이 눈을 사로잡는다. 푸른색 밤하늘의 별 빛이 반짝이는 쿠폴 4개와 가운데 황금빛 쿠폴(둥근 지붕)이 있는 우스펜스키 대성당이다.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정벌하고 난 이반 4세는 여러 곳에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이다. 16세기 말에 세운 교회는 모스크바 크레믈에 있는 우스펜스키 성당을 본떠 만들었다.

러시아가 정교회를 받아들였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리스 정교회 의식이 아름답고 장엄해서였다고 한다. 이들의 의식은 모르겠으나, 정교회 건축물의 외관만 본다면 내가 아는 세계 많은 곳의 사원 중에 가장 맘에 들었다. 이것들의 첫인상은 다분히 동화적이며 다정하다. 그것들은 결코 위용으로 놀라게 하지 않으며, 길고 좁은 창을 가진 흰색의 몸체는 양파 모양을 한 아름다운 쿠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사실 별들이 반짝이는 파란색 둥근 지붕을 보는 순간 누구든지 아이스크림 같은 동화 속 단꿈에 젖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회중석과 제단을 구분한,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빼곡한 성화 벽(이코노스타시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부의 벽과 천정에 가득한 성화들과 은은한 불빛은, 공간을 성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뜰에서, 우스펜스키 성당 앞에 보이는 검은 색 건물은 치유의 샘이다.


나는 텅 빈 예배당이 좋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공간 세르기예프 파사드에서, 폐허로 인한 텅 빈 공간으로 감동을 받았던 아르메니아 아라갓산 Aragat Mountain(4,090m) 중턱에 있는Vahramashen Church를 떠올렸다. 풍족함과 화려함 앞에서 늘 그렇듯이, 꾸미지 않은 더없이 편안한 공간을 그리워한다. 예레반 교외에 있어 어렵게 찾아간 암버드 성 끝자락 절벽에 서 있던, 빛과 어둠의 하모니만 일렁이는 11세기에 지었다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황홀한 교회 안에서는 저절로 기도가 흘러나왔다. 옆에서 채근하는 이만 없으면 한나절이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었다. 그 옛날에는 이 곳도 치장하고 쳐 발랐던 소싯적이 있던 예배당이었겠지만, 폐허가 만들어 준 공간은 신이 기거하기에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어릴 적부터 기독교인이었지만, 소리치듯 하는 기도에 주눅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기도를 하지 못했다. 어려서 기도를 해야 할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열아홉 살, 내 기억 처음으로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마저도 소리 없는 간절함이 전부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떠밀려 일 년 정도 주일 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다. 맡겨놓은 듯 떼쓰는 기도가 어색한 나는,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짧은 서너 줄로 기도를 끝내기 바빴다. 직장을 잡고도 중고등부 교사를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게으르기가 남달라 일요일은 쉬고 싶었던 나의 교회학교 교사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각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면서 나의 신앙생활은 점점 소원해졌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종교(개신교)는 점차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객관화가 되어갔다.


우스펜스키 성당 앞에는 아름답게 장식한 예쁜 샘이 있는데 치유의 샘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물병에 물을 받고 있다. 물이 좋은 곳을 보면 역시 이 수도원은 명당 중의 명당인 셈이다. 수도원의 뜰에 앉아서 모스크바에 있는 이반 대제의 종탑보다 더 높다는 18세기 중반에 세운 매력적인 하늘색 종탑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땅바닥에 앉아 종탑을 향해 하늘을 보았다. 하늘과 어우러진 종탑은, 교회의 둥근 지붕의 푸른색과 황금색은 하늘에 그려진 그림이다.

치유의 샘에서는 물병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뒤로는 트리니티 대성당의 황금돔이 보인다.


우스펜스키 성당 맞은편에는 교회라기에는 세속적이며 매우 크고 세련된, 이국적인 느낌의 건물이 시선을 끈다. 17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한 때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연회장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크고 화려한 연회장을 갖춘 수도원이라니, 아마도 이 시기를 전후해서 수도원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당시의 많은 권력자들과 영향력 있는 세력가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니 연회장은 수도원의 부와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내부는 연회장답게 천정화와 벽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연회장이지만 예배도 드리는 곳으로 어느 곳보다도 화려한 이코노스타시스(성화벽)가 시선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곳은 건물 외부가 더 매력적이다. 체스판 패턴의 무늬를 사용한 외벽은 세련되었으며 과장되게 표한한 복도의 기둥 조각은 바로크의 생동감이 넘친다. 기둥이 화려한 건물 복도에 서있으면 마치 16세기에 지은 여느 이탈리아 별장에 와 있는 기분이다.


들어가자마자 압도당한, 너무나 화려한 연회장의 이코노스타시스
러시아 바로크식의 아름다운 외관


수도원을 나가면서 바라본 입구 왼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수도원에서 만든 빵을 파는 곳이 있다. 빵 냄새가 솔솔 나기 때문에 배가 고픈 이는 금방 눈에 들어온다. 나그네가 빵 집앞을 그냥 지나가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티나듯 팔려나가는 두툼하고 먹음직한 빵은 비주얼로 한몫 하지만 맛은 더 죽인다. 수도원까지 오는 길에 마음이 바빠 먹을 곳을 발견하지 못했던지라 빵을 보자마자 게 눈 감추듯 해치워버렸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서 있는 간이 기념품 판매대에서, 마트로슈카Matryoshka 인형 하나를 350 루블에 건졌다.


서울에 돌아와 책장에 앉아있는 마트로슈카, 마트로슈카는 모스크바보다 세르기예프 파사드가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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