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배꼽, 오렌지빛 '쿠스코'

제5화 페루 쿠스코 “대성당은 너무 짙게 화장한 늙은 여인처럼 보인다.”

by 그루

세상의 배꼽, 오렌지빛 쿠스코로


늦은 밤 무거운 배낭을 끌고 지고 나스카 중심가에서 꽤나 먼 버스터미널에서 쿠스코 Cuzco를 향한 버스에 올랐다. 14시간 정도를 타고 가야 하니 따뜻하고 편한 옷차림과 침낭, 아침에 먹을 요깃거리 등을 준비하고 마음의 각오를 하는 것은 당연, 나스카의 약국에서 고산병 약으로 유명한 소로체를 구입해 복용, 몹쓸 고산병에게 덜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애써 잠을 청했다.


고산지대를 넘어갈 준비를 나름으로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토하고 괴로워하고 헤매는 형국이니 남을 돌볼 정신조차 없다. 안내원이 던져주고 간 간식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버스는 해발 4000미터 이상을 올라가더니 4000미터 아래로는 내려오지도 않고 4300미터쯤 갔다가 다시 4200미터, 다시 4400미터 이런 식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계속한다. 고도는 높고 안데스의 산길은 좁은데다 구불구불하기까지 하니 불빛 하나 없는 산중에 운전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14시간 중 서너 번 정도 쉬었던 것 같은데 길어야 15분, 짧으면 5분, 정차를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화장실을 들러야 하니 화장실 갈 시간마저도 짧다. 거기에다가 승객을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그날 고산병의 기억은 각인되어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핼쑥하고 헝클어진 몰골로 조금씩 정신이 가다듬어지는 걸 보니 고도가 조금 낮아진 듯하다. 물어보니 고도가 3700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조금씩 숨 쉬는 것이 나아진다. 버스가 언덕을 내려가는 걸 보니 고도가 조금씩 낮아지나 보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부근


다음 날 정오가 되어 갈 무렵, 고행의 버스 창밖으로 밝은 황토색의 뽀얀 먼지와 함께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몽환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빛바랜 주황빛 기와를 얹은 도시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독립기념일 주간이다. 꾸스꼬는 잉카의 중심 도시답게 골목골목이 떠들썩한 축제의 행렬로 가득하다. 아르마스 광장 부근의 호텔로 가야 하는데 택시가 꼼짝도 하지 못한다. 어렵게 호텔로 들어오니 로비엔 코카차가 준비되어 있다. 이후 코카차는 우유니를 거쳐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늘 가지고 다니며 마시는 차가 되었다.


쿠스코의 티코, 좁은 골목과 단단한 포도위에는 '티코'가 적격이라 했다.


코카차를 한두 잔 마시고 난 오후, 며칠 후 볼리비아로 들어가기 위해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볼리비아 영사관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볼리비아영사관으로 가자고 하니 한적하고 윤택해 보이는 주택가에 내려 준다.


쿠스코 볼리비아대사관


한참을 기다려 볼리비아 비자를 받았다. 생각보다 빨리 받았지만, 볼리비아 비자 받기가 생각보다 까다롭다. 다소 권위적이며 그리 친절하거나 유연하지도 않은 업무태도에도 기분이 별로 상하지 않는다. 볼리비아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인가.


아르마스광장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여행자들이 몰리는 쿠스코의 골목, 이 골목에 12각의 돌이 있다.

습관처럼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왔다. 남미의 도시 여행은 광장에서부터 출발하면 대부분 효율적이다. 잉카시대에는 아우까이빠따 광장이라고 불렸던 아르마스 광장의 주위에는 잉카의 건축물이 있던 토대 위에 식민시절의 교회와 건축물들로 세워져 있다. 세계의 어느 광장보다도 아름다운 광장은 큰 건물인 대성당과 라 콤파냐 헤수스교회가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는 편하고, 고즈넉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결코 넘치지 않는 호수를 닮아있다.

아르마스광장의 라 콤파냐 데 헤수스 교회


잉카는 왕을 뜻하는 케추아어로 제국의 이름은 모든 방향, 또는 4방위 연합체라는 뜻의 ‘타우안틴수유Tahuantinsuyo’였다. 안데스 산맥 자락 해발 3400미터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쿠스코는 타우안틴수유의 창조신 비라코차에 의해 티티카카 호수에서 태어난 망고 카팍과 그의 누이 마마 오클로에 의해 1200년경 세워졌다고 한다. 제9대 파차쿠텍 Pachacutec잉카 때에 더욱 발전하여 제국의 수도로 거듭났다.


잉카시대 이전에 살던 거주자들의 창조신인 비라코차 Viracocha 신전 위에 세웠다는 쿠스코의 랜드마크인 대성당은 저만치 긴 그림자를 드리운 체 말없이 서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체 게바라는 쿠스코 대성당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대성당은 너무 짙게 화장한 늙은 여인처럼 보인다.”


12각의 돌


피사로는 쿠스코의 신전과 궁전을 부수고 모든 걸 강탈해 갔다. 잉카의 토대 위에 그들의 신전을 지었는데 태양신전 코리칸차 Coricancha가 있던 곳에는 산토도밍고 교회가, 와이나 카파쿠 궁전 터에는 라 콤파냐 헤수스교회가 대신하고 있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가 처형된 아르마스 광장, 대성당과 혜수스교회 뒤 쪽의 길들을 따라가다 보면 잉카시대의 석벽과 돌길들이 500년 전 쿠스코의 영화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심봤다!


두 다리로 무작정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은 여행자만의 무기다. 그러나 하루 종일 걷다 보면 두 다리가 천근만근이 되는 것은 허다하다.


삭사이와망을 돌고 온 오늘도 역시,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산 어거스틴 거리에 있는 좀 유명한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찾았는데 아뿔싸! 레스토랑이 없어져 버린 거다. 맛은 그렇다 치고 잠시 쉴 자리라만이라도 감지덕지다.


‘Nonna Trattoria’라는 예쁜 간판의 레스토랑이 눈에 띄었다. 이름으로 보면 ‘할머니의 작은 이태리 레스토랑’이란 소리인데, 이태리 음식은 어디서든지 만만하지 않은가. 들어가 보니 편안하고 여유 있는 자리배치, 주문을 받자 반죽해서 바로 화덕에 구워주는 공정까지 모두 보여준다.


Nonna Trattoria의 식탁


서비스와 맛은 지금까지 먹어 본 이태리 음식 중 최고였다. 양도 많은 요구르트는 종류별로 맛보고, 커피 맛까지, 다시 가고 싶은 내가 손꼽는 맛 집 중의 하나이다.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소는 Calle San Agustin N298




어둠이 내려앉는 대성당 앞 계단에 앉아, 교회 옆 골목, 할머니와 손녀에게서 산 과일 한 개를 한입 베어 물었다. 과육의 연한 질감과 풍부한 즙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그 사이 내 앞에는 잘 차려입은 페루비안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한쪽에선 악기를 연주하며 등장하는데 웨딩드레스에 외투를 걸쳐 입은 신부와 신랑의 모습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광장으로 나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알리는 세리머니이다.


광장에는많은 숫자의 경찰관들, 따뜻한 경찰의 이미지를 느끼게 해 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광장에는 사람들의 발길로 가득하다. 하나 둘 켜지는 불빛들이 광장의 정경을 아름답게 밝혀주니, 춥긴 하지만 고단한 몸과 마음이 나른해지며 긴장의 끈이 놓인다. 많은 경찰들의 모습에서 다시 경계의 몸짓을 하지만 내려앉는 눈꺼풀엔 도리가 없다. 광장 한 가운데에서는 음악소리가 연주되고 몇 겹 사람들로 빼곡하다.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흔들리는 불빛을 잡고, 눈꺼풀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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