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페루 쿠스코 친체로와 모라이, 살리네라스와 오얀따이땀보
쿠스코에서는...
쿠스코에 도착한 직후 봐야 될 곳이 너무 많아 어디부터 가야 할지 당황했었다. 이럴 때 도움을 주는 것은 여행안내 서적과 현지에서 얻은 지도나 정보가 매우 유용하다. 쿠스코를 어느 정도 파악하려면 최소한 4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봐야 할 곳도 많아서 입장료 값도 만만치가 않다.
쿠스코에서 하루 이틀 정도의 일정이라면 가는 곳마다 입장권을 구입해서 관람하는 것이 좋고, 사나흘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 쿠스코 관광 입장권 Boleto Turĺstico을 사서 다니길 권한다.
쿠스코에 오기 전 그 어느 곳보다도 보고 싶은 곳이 친체로와 모라이, 그리고 살리네라스였다. 시내에서 멀고 연결 교통편이 그리 좋지 않아 여행사들이 있는 아르마스 광장에서 3곳을 가기로 하고 가격 흥정을 해서 가는 방법을 택하였다.
친체로 Chinchero
친체로로 향하다 보면 코카차를 마시고 있어도 속이 메스꺼워지고 두통이 올라온다. 쿠스코에서 2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친체로는 해발 약 3800미터로(쿠스코는 약 3400미터)고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 버스도 숨이 차는지 굽이굽이 천천히 돌아 올라간다.
친체로에 도착하자마자 예전 스포츠선수였다던 멀쩡하게 생긴 한 남자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간다. 쿠스코에서는 고산에 적응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늘 천천히 여유 있게,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과하면 그다음 여정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친체로는 잉카시절에는 투팍 유빵끼 황제의 궁전이 있었던 곳으로 설산을 배경으로 안데스 고원의 넓은 품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잉카시대의 마을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여행객을 불러 모으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전주 한옥마을 정도라면 비교가 될까 싶다.
흙벽돌로 만들어진 가옥에는 우리네 기와를 닮은 퇴색한 주황색 기와가 얹어져 있다. 골목골목은 포장이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로 여지없이 잉카의 물길이 나 있다. 흰색 회벽이 칠해져 있는 단아하고 소박한 교회가 눈에 띈다. 궁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교회인데 옛 영화를 말해 주듯 잉카의 잘 다듬어진 석축 아래에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다.
여인들이 햇살이 좋은 넓은 초지에 뭔가를 말리고 있는데 보니 감자이다. 감자를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해서 말리는 자연 동결건조방식으로 말리는 감자를 '추노'라고 하는데 5년간 보관이 가능하다고 한다.
스페인의 유일신 신앙은 잉카의 믿음과 교묘하게 어울려 원주민들 속으로 들어와 있다. 교회에는 안데스화 된 성화들이 그려져 있고 파차마마 Pachamama(파차마마는 케추아어로 대지 어머니를 뜻한다)의 단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는 태양이 새겨져 있다. 친체로는 스페인 문화와 원주민 문화가 씨실과 날실처럼 짜여져 적절한 선에서 두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화려하지는 않으나 소박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친체로 마을에서 내려오는 길, 훠이~ 훠이~ 중절모에 머리를 따 내리고 알록달록한 무늬의 폭이 넓은 치마를 입은 원주민 아주머니가 양떼들을 몰고 지나간다.
모라이Moray
어릴 적 지오그래픽을 통해 알게 된 모라이 Moray 유적, 설렘과 기대와 감동으로 친체로에서 약 30분 정도, 그림 같은 마라스 마을이 나타난다. 마라스 마을 사이를 통해 빠져나와 약 9킬로미터 지나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마치 우주비행선이 착륙했을 것만 같은 움푹 파인 거대한 동심원이 나타난다.
모라이는 의미에 앞서 거대하고 완벽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대지예술이다. 잉카 농경기술의 메카라고 볼 수 있는 모라이는 각 단계별 대지에 다른 농작물을 심어 고산 기후에 맞게 적응시켰음을 한 눈에 보여준다.
살리네라스 Salineras
모라이에서 12킬로미터쯤 달렸을까 위태롭고 계곡의 끝자락에 네모난 기하학적 패치워크처럼 꾸며진 안데스의 보물 살리네라스가 모습을 보인다. 산 속에 염전이라니, 오래전 바다였던 곳이 융기하여 바위가 되었는데, 그 곳으로 안데스의 맑은 물이 흘러 오래된 소금바위를 녹여 짠물이 흐른 것이다. 그 물을 막아 지금의 살리네라스가 형성이 된 것.
이곳은 오래전에 안데스인의 삶의 터전이었듯이 지금도 여전히 안데스 후손들의 삶의 무게를 지탱시켜 주는 살아있는 안데스인들의 신성한 일터이기도 하다. 설산의 물이 흘러 들어오는 이곳의 소금은 바다처럼 오염될 일이 별로 없으니 진정한 청정소금일터였다.
오얀따이땀보 Ollantaytambo
살리네라스에서 우르밤바를 거쳐 오얀따이땀보로 가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오얀따이땀보를 보고 그곳에서 마추픽추행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땀보’는 잉카시대의 역참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쿠스코에는 땀보라는 말이 들어간 지역이 많다. 이곳이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땀보인 것은 확실한 듯, 마추픽추로 향하는 여행객들은 쿠스코나 이곳에서부터 마추픽추로 향해서 출발한다. 콜렉티보, 버스, 기차, 또는 두발로.
어느 마을이든지 아르마스 광장은 그 마을의 규모와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꽤나 넓어 보이는 광장은 카페나 레스토랑보다 기념품 가게가 더 많다. 여행객들이 먹고 마시고 쉬어가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을 가기 위해 들르는 성향의 여행객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흐르는 강물 위 다리를 넘어 유적지 앞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층계의 구조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순간 잠시 숨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파괴가 되었건만 식민지 시절을 지나면서도 웅장했던 옛 자취가 남아있다는 것은 잉카시대 당시에는 이곳의 입지가 꽤나 중요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잉카의 유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놀라운 점은 첫 번째는 돌을 다듬는 건축술이요, 두 번째는 물길이다.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상관하지 않고 사람이 사는 곳엔 항상 물길이 열려있는 것이다. 어쩌면 엄청난 규모와 크기의 돌과 물은 파괴가 되어도 어느 정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문명의 뿌리이다. 오얀따이땀보에서도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지없이 돌과 계단 그리고 물길이다.
오얀따이땀보는 잉카 최후의 황제 망고 잉카 Manco Inca가 정복자들에 대항해 결사항전을 했던 곳으로 몇 차례 승리를 거둔 곳이라고 한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여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계단 위에는 정복자들도 파괴하지 못한 거석이 그대로 남아있는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고 국가의 중요한 창고가 있었던 것을 보면 군사적 중요성보다도 종교적, 경제적으로 국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점도시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곳의 창고는 아마존과 고산지대의 중간에 위치하여 아마존의 열대농산물은 쿠스코로 고산지대의 수확물은 아마존으로 연결시켜주는 창고였을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