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5
오늘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편지를 씁니다. 미국에는 여행으로 또 출장으로 여러 번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 출장으로 가는 시카고와 신시내티는 처음으로 가게 되는 거라 감회가 남다릅니다. 새로 이사 간 런던은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노팅힐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일이 익숙하지 않고 영어도 아직 부족해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곳의 매니저가 일을 잘 알려주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따뜻하게 격려해 준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좋은 리더를 만난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12년간 여섯 분의 팀 리더들을 모셨습니다. 그중에 한 분은 한국인, 네 분은 미국인, 다른 한 분은 인도인이었습니다. 이 여섯 분 모두, 단점도 분명히 있었지만, 리더로서 배울 점이 더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오늘은 저의 리더들에게 제가 배웠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저의 첫 번째 팀장님은 한국인이었는데, 한국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산업디자이너로 일하시다가 저희 회사로 오셨던 분이고, 감사하게도 저를 채용해 주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예민하고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저와 제 동료들이 힘들 때도 많았지만, 저는 이 분께 외국 회사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분께 배운 점을 몇 가지 소개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외국 회사에서는 능력을 입증하지 않으면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일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작은 기회라도 만들고, 기회가 주어지면 약속한 것보다 더 탁월한 결과물을 내야 합니다.
둘째, 크고 작은 성과물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성공을 우리 팀 혼자 독차지할 것이 아니라, 리더들과 비즈니스 파트너들의 공으로 돌립니다.
셋째, 한국으로 오시는 손님들을 잘 대접하고, 반대로 해외로 출장을 가게 되면 그곳에 계신 분들을 위해 반드시 작은 선물을 챙기고, 그 분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첫 팀장님이 이처럼 저를 훈련시켰고, 또 몇 년간 저 스스로 배움을 실천했기 때문에, 2018년에 있었던 저희 회사의 대규모 정리해고 때에도, 전 세계의 많은 동료들이 저를 도와줘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세 가지 배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데, 예를 들면 지금 저의 여행 가방에도 시카고와 신시내티의 동료들에게 줄 선물들이 가득합니다.
저의 첫 팀장님이 회사를 떠나시고, 몇 년간 세 분의 미국인 리더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팀원들에게 신뢰를 보내고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프로젝트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본인이 생각한 것과 프로젝트가 다른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도 팀장 권한으로 못하게 하거나, 개인적인 감정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결과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했습니다. 팀원의 자율에 맡기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주셨습니다.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보고하고 리더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닌 나의 소신과 경험에 따라 일을 진행하고 대신 온전히 결과에 책임을 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자율적이되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믿는 방향대로, 제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 또한 진심으로 또 열정적으로 일을 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에서 저의 리더는 인도인이었습니다. 그분도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 분이었지만, 특히 동기 부여가 탁월했습니다. 아래는 그분이 저에게 해 주셨던 말씀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입니다.
“저는 저보다 더 똑똑하고 나은 사람을 뽑습니다. 당신은 디자인 전문가이고, 디자인에 대해서는 당신이 저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의 의견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해외 출장을 갔을 때, 그곳의 브랜드 매니저나 마케팅 매니저가 아니라, 마케팅 디렉터나 매니징 디렉터를 만나세요. 당신은 나를 대신해서 그 나라에 간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직급이 아니라 저의 직급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저를 가리키면서) “저희가 오늘 이야기했던 문제는, 이 분의 마법으로 해결될 겁니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보셨나요? 이 분은 제리 맥과이어 같은 에이전트처럼 자신의 팀원들을 스타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가끔 제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 이 분은 제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마치 굉장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까지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 분에게만큼은 제가 계속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노력했습니다.
앞서 편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는 제가 팀장으로서 두 명의 팀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또 상반기 안에 한 명이 더 저희 팀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팀장이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일주일에도 몇 번씩,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때마다 저는 저를 거쳐간 리더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리더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앞날의 당신의 인생에 좋은 리더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마윈이 말했던 것처럼 특히 20대 때에는 당신을 잘 이끌어줄 리더가 누구인지 잘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학교나 회사의 인터뷰를 보게 될 때, 인터뷰 자리에서 면접관들이 당신을 평가하는 것처럼, 당신도 면접관들, 특히 당신의 리더가 될 사람을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조직에 속하게 되면, 리더의 단점들보다, 장점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