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에는 청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청자는 광장에 모인 군중이라기보다는 내 앞에 있는 단 한 사람이고, 그래서 낭독자는 청자를 배려해 낭독해야 한다는 것까지 말씀드렸지요.
그렇다면 ‘청자를 배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낭독에서는 낭독자에는 있지만 청자에게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텍스트죠. 낭독하는 글이나 책입니다. 우리의 청자는 텍스트를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롯이 우리의 낭독에만 의존해 글을 느끼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낭독자는 청자가 텍스트를 보지 않고도 이 글을 느끼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청자를 위한 배려이지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청자를 배려해 낭독합니다. 그중 으뜸은 바로 포즈(Pause), ‘잠시 멈춤‘입니다. 네, 사진 찍을 때의 그 포즈 맞습니다. 사진 찍힐 때 우리는 어떻게 하지요? 잠깐 동작을 멈추고 촬영할 시간을 줍니다. 왜지요? 계속 움직이면 사진 결과물이 좋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웬만한 움직임에도 흔들림 없이 사진이 찍히긴 합니다. 하지만 흔들림은 없을지라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는 흔히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촬영되는 순간에는 잠시 멈춰줍니다. 촬영자를 위한 배려라고 할까요.
낭독에서도 그렇습니다. 한 문장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잠시 멈춰 주세요. 그 짧은 시간은 청자와 낭독자 모두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오직 내 낭독에만 의지해 따라오는 청자는 그 순간에 앞 문장을 음미합니다. 잠시 쉬어주는 순간은 그 문장을 느끼고 이해하는 아주 귀한 시간입니다. 청자는 슬플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기쁘거나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지요. 청자를 위한 낭독에서 포즈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청자보다 언제나 한 걸음 먼저 발을 내딛게 되는 낭독자에게는 다음 문장을 미리 준비하는 시간이 됩니다. 이런 준비 없이 다음 문장을 그냥 내뱉게 되면 글의 내용과 감성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고 문자만 읽는 실수가 날 수 있지요.
포즈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저는 좀 과격하게, “포즈가 없으면 낭독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합니다. 포즈가 없으면 글의 내용과 감성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고, 낭독이라기보다는 음독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활동이 될지 모릅니다.
낭독의 생명은 포즈다.
낭독 소그룹 코칭을 진행하면 저는 첫 시간에는 내내 이 포즈만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거든요. 빠르게 달려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느긋할 수가 없습니다. 한 문장이 끝나면 서둘러 다음 문장을 입에 담으려고 하지요. 심지어 본인은 나름대로 멈추었다며 포즈가 충분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녹음해서 들어보면 ‘듣는데도 숨이 차다’고 하십니다. 쉼 없이 달려가기만 하면 듣는 사람마저도 숨차게 만드는 것이지요.
낭독은 '쉼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잠시 멈춤, 쉼이 없으면 내 목소리는 낭독으로 승화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받게 되는 질문이, “그럼 한 문장이 끝나고 나서 몇 초 정도 쉬면 되는 건가요?”라는 것이에요. 의문문 뒤에서는 3초, 평서문 뒤에서는 2초, 이런 식의 공식이 있다면 그것은 기술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내레이터는 기술자인 건가요.
안타깝게도, 또 다행스럽게도 그런 공식 따윈 없습니다. 그저 그 글의 감성에 맞게, 그 문장의 느낌에 맞게 내 감성으로 쉬어가는 것입니다. 포즈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며, 낭독은 바로 쉼의 예술인 것입니다.
저를 믿어보세요. 단언컨대 포즈만 잘 넣어 주어도 당신의 낭독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작은 어린아이를 나만이 길을 알고 있는 어느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간다는 마음으로, 친절한 낭독을 해보세요. 청자를 목적지까 편안하게 모셔다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