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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은 운전처럼 3

멀리 봐야 오래 간다

by 낭랑한 마들렌

"왜 이리 지그재그로 가요?"


"네? 똑바로가 아니고요?"


처음 운전석에 앉아 도로에 나선 순간이었습니다. 옆에 강사님이 앉아 계시지만 잔뜩 긴장하게 되더군요. 제가 면허를 따던 시절에는 도로주행시험이 없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도로연수'라는 과목을 개설해 실무운전을 가르쳐주곤 했답니다.


맨 처음 당황스러웠던 것은 자동차의 페달이 꽤나 무겁게 느껴진 것이었고, 그다음은 차가 도로에서 차선의 중앙을 달리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그래서 두려웠던 것입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운전석은 차의 중앙이 아니라 왼쪽에 치우쳐 있으니까요. 저는 차의 양쪽 끝을 나름대로 주시하면서 이 차가 도로의 중앙으로 가도록 최선을 다해 운전대를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사님이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차가 왔다 갔다 하잖아요!"


"아니,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건데요……."


오히려 차가 좌우로 조금씩 계속 움직이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더욱 긴장해서 운전대로 중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차는 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소리를 질러대는 강사님에게 내가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잘 안 된다고 설명하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코앞을 보면 안 돼요! 멀리 봐야죠. 그래야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거예요."


앗! 그걸 몰랐네요. 시선을 차의 앞쪽 양끝이 아니라 차의 몇 미터 앞으로 옮기니 차츰 안정을 찾았습니다. 금세 차는 흔들리지 않고 중앙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인데 아직도 가끔 이 일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인생 역시 그렇지만, 운전도 낭독도 코앞의 일만 보며 일희일비해서는 안 됩니다. 당장의 작은 결과에만 집중한다면 오래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흔들흔들, 안정을 잃고 두렵고 재미도 느낄 수 없게 되지요. 결코 나의 낭독에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낭독할 때도 멀리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이 낭독이 나의 종착지가 아니듯, 지금 한 낭독만으로 나를 평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 먼 곳으로 향해 가는 과정임을 인지하고 인정한다면 오늘의 부족한 모습도 용납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오늘은 낭독이 좀 별로네. 내일 다시 해봐야겠다.' 우스운 듯 쿨하게 넘어가주는 아량을 자신에게도 베풀어 보세요.


그리고 낭독하는 우리는 더욱더 먼 곳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운전해서 서울을 출발해 부산까지 간다고 생각해 보시죠. 코앞이 아니라 몇 미터 앞만 보고 운전해야 하겠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부산까지 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총거리를 토대로 도착하기까지 대략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해 보고, 이 여정이 만만치 않음을, 꽤나 힘들 수도 있음을 미리 인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휴게소가 나올 때마다 원하는 만큼 쉬어 간다면 소요 시간이 한정 없이 늘어질 테고 이 운전이 언제나 끝나려나, 하며 지긋지긋해질 것입니다. 반면, 빨리 도착하겠다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계속해 운전해 간다면 그것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니지요. 온몸이 뻐근하고 지쳐서 다시는 운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겠죠. 멀고 힘든 길이니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적당히 쉬면서도 성실하게 가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을 겁니다.


운전이 할 만해야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듯이, 낭독도 그렇습니다. 낭독이 너무 어렵고 힘들기만 해서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만만해야 하고, 할 만하다 싶어야 내일도 다시 낭독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다시 해보고 싶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있어야 오래도록 낭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 낭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낭독이 깊어지고 매력적으로 가꿔지기 때문입니다.


낭독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낭독은 깊어지는 것입니다. 낭독의 맛, 찌개맛과 곰국의 맛에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낭독은 다 맛있습니다. 다만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느긋하게 운전하듯 부디 오래 낭독하셔서 더 깊은 맛을 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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