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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랑한 마들렌 May 26. 2022

한 문장으로 나를 어필하기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급의 명문장은 아니더라도.

또다시 선거철입니다. 동네마다 선거 홍보용 현수막과 포스터 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오디오북 녹음 중에 바깥에서 들려오는 유세 방송 소리에 한참 동안이나 멈추고 기다려야 했던 것은 상식 선에서 양해합니다. 다만 보다 효율적으로 홍보가 이루어지면 어떻겠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오늘은 막내 학교에서 학부모 공개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공개 수업일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홍보하기 좋은 기회지요. 보통은 인근 학원들에서 나와 학교 앞에서 대기하며 부모들에게 유인물과 홍보물을 나누어 주곤 합니다. 이 선거철에 후보들께서는 이런 기회도 잘 활용하셔야겠지요. 어김없이 학교 앞에는 몇몇 후보가 직접 나와 명함형 선거 홍보물을 주며 인사합니다.


뻘쭘하게 홍보물만 내밀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한 마디 해야겠지요?

어떤 말이 좋을까요?

1초 정도밖에 되지 않은 찰나의 시간에 유권자에게 어필해야 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제가 오늘 만난 첫 후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대학원 입학 직후 교수님들과의 첫 만남 자리에서 신입생들이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학생들은 간단한 소개 후 하나같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습니다. 다 들으신 후 한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후일 저의 지도교수가 되신 분이시지요.)


열심히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 학교까지 왔는데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열심히'는 당연한 것이고, '잘'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꽤나 무책임하게 들립니다. 세상에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야 부지기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인정받을 수 있나요? 더군다나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선출직을 맡고자 한다면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유권자에게 어필될 수는 없겠지요. 초등학교 학급 임원선거에서조차도 단순히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제발 '잘' 해주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만난 후보께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학교 교장이 제 후배입니다.
OOO, 제 후배예요. 허허허..

얼른 명함 받고 지나가려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는데도 웃음으로 마무리지으시더군요. 열심히 하겠다는 기본적인 표현에도 도무지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런 말씀을 하시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첫 번째로 받은 명함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지만, 이 명함은 조금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력사항을 보니 이 지역 출신이시더군요. 그것을 어필했으면 차라리 나았겠다 싶습니다. 내 아이가 재학 중인 학교 교장 선생님의 선배이니 이 후보에게 투표해야겠다고 생각할 유권자가 계실까요?




언제든 그렇지 않았으랴마는, 현재는 마케팅이 대단히 중요한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지나쳐버리는 사회에서 '나를 알리는 것'에 깊은 고민 없이 임할 수 있을까요? 작은 상품을 판매하시는 분들도 '어떻게 하면 나의 상품이 팔릴까?'하고 끝없이 궁리할 것입니다. 수많은 마케팅, 자기 계발 서적들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선출직의 후보자라면 '1초라는 짧은 시간에 어떤 말로 나라는 후보에게 관심을 갖게 할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중대성을 인지하시는 분이라면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궁극의 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말 겁니다.


단지 열심히 하겠다는 말, 이 학교 교장의 선배라는 것으로는 전혀 그 후보들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되거나 관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잘 기억했다가 반드시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몰라도요.



명함을 손에 들고 있는 것조차 불편했습니다. 마침 길 건너에 선거운동 보조원들이 계시더군요. 후보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는 분에게, 받은 명함을 살포시 돌려드렸습니다. 버리자니 요즘은 길에 쓰레기통도 없거니와, 내가 버리면 그냥 쓰레기가 되는 것일 뿐 홍보물이 부족해지면 더 인쇄를 할 것이니 고이 돌려드리는 것이 최선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말로 나를 어필할까?' 생각해 봅니다.

이미 보편화된 온라인 세상,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짧고 굵게 나를 표현하는 창의적인 전달력이 요구됩니다.


당신은 어떤 문장으로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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