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를 고민하는 사람
요즘 나는 어쭙잖게 철학 공부를 합니다. 특히 내가 운영하는 낭독모임 '아침낭독반'의 22기에서 [미치게 친절한 철학]을 함께 낭독하며 사유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말 미치도록 친절합니다. 철학이 그저 어렵다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철학사에서 이토록 비중이 높다는 데에 내심 놀랐던 고대철학을 시작으로,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로 다 되는 중세철학을 지나, 복잡하고 말 많은 근대철학을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마스크스 챕터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더군요.
카를 마르크스,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희대의 이단아
젊은이들을 현혹한 선동자
공산당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래서 나쁜 놈!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알고 보니 그가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히틀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겁니다.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칸트와 헤겔의 뒤를 이은 독일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마르크스는 헤겔에게 큰 영향을 받고 변증법을 적극 수용하지만 그의 관념론은 거절합니다. 대신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채택합니다.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결합한 '변증법적 유물론'을 자신만의 철학으로 완성하지요.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 5단계를 아래와 같이 제시합니다.
1단계 원시 공산제
2단계 고대 노예제
3단계 중세 봉건제
4단계 자본주의
5단계 공산주의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
-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 힘의 원천이 노동이라고 합니다.
노동이 인간을 만들었다.
- 마르크스
그런데 당시 시대상황은 노동하는 인간들이 고통당하며 처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노동자들은 참혹한 노역에 시달렸는데, 하루 12~16시간씩 일을 했고 어린아이들조차 탄광에서 10시간 이상 일을 했다고 하네요. 그 당시 런던 노동자들의 평균수명이 20대 초반, 다른 지역에서도 28세를 넘기지 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참혹한 시대입니까. 그 시대 조상들이 최근에 주장되던 '워라밸'이나 '욜로' 등의 말을 들으면 기함할 테죠.
이러한 시대에 '노동 해방'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자유라고 믿은 마르크스는 이단아일지언정 시대의 선구자였을 겁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추앙할 수밖에요. 멋지긴 합니다.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 마르크스 <포이어바흐 테제> 중
오래전 학부 때 [자본론]이 어떤 책인가, 도대체 뭐길래 다들 어렵다고 하는가, 호기심이 일어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요, 한 장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온순하게 반납했습니다. 역시 어렵더군요. 하지만 오늘, [자본론]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학부시절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수업의 과제를 위해서 북한이탈주민 한 분을 전화로 인터뷰한 적이 있었어요. 젊은 남성인 그분은 뜨거운 울분이 내면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자신의 성품인지 혹은 전혀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의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남한 사회에 정착한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난 그에게, 이곳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하소연했는데, 가장 힘든 것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모두 함께 일하고 배급받는 생활을 했는데, 이곳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자신은 그걸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차피 정해진 시간 동안 일을 하면 되는 건데 열심히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하면 되지 나까지 그래야 하느냐, 대충대충 해도 월급은 받는 거 아니냐 등등. 당시 젊은 대학생이었던, 실업고를 졸업하고 몇 년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한 뒤 다시 학생이 된 나로서는 깜짝 놀랄 답변이었습니다. 경제 체제의 차이로 인한 고충이 이해가 되면서도 속마음을 내놓고 말한 그 내용에는 사실 혀를 내두르게 되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고로 일이라 함은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긴,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만. 쿨럭.)
그는 또, '돈 관리'가 어렵다고도 했던 것 같습니다. 수중에 돈이 있어서 필요한 곳에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그게 다 없어졌답니다. 필요한 게 있어도 가질 수 없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서요.
마르크스의 이상은 아름다웠으나, 현실 정치 및 경제 체제로서는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유재산제도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보았지만 바로 그것이 노동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현시점에서도 마르크스의 이론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학문적 토대가 될 것입니다. 어떤 체제나 사상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이로울 수 없으므로, 고민과 개혁, 모순과 개선을 통해 사회는 계속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 '아침낭독반'에서 마르크스 철학을 함께 낭독하며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주류와 다른, 새로운 흐름을 제안하는 목소리를 나는 덮어놓고 비난해오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주창한 마르크스부터, 전교조 교사들과 소위 노동운동, 학생운동 한다는 사람들. 전통을 깨고 정통이 아닌 것을 들고 나오는 자들. 그들을 우리는 조건 없이 배척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혼자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들을 선동한 것을 두고 미워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왜 그랬을까. 언론의 거대한 영향력도 있었지만, '나는 주류에 속한다'는 자부심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류에 속해서 누리는 혜택을 잃을까, 비주류에 동참 혹은 동의라도 하면 손가락질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은 전통과 주류만이 옳다고 하는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반성하는 아침입니다. 진정 열린 지성을 지향한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욕하거나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 해방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요, 나는 영혼의 비상, 즉 내면의 성장과 초월이야말로 나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믿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관념론자겠군요.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아침낭독반에서
다음 책 [미치게 친절한 동양철학]
함께 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