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의선 광인 Aug 28. 2024

문제 투성이 결혼 생활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

책 <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나는 법륜스님 말씀을 참 좋아한다. 그분의 유튜브 영상들을 보다보면 세상의 온갖 고민들이 내 마음먹기에 따라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다. 스님의 저서 중 내 눈에 들어온 건 <스님의 주례사>.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 혼기가 꽉 찬 나에게 도움이 되리라 펼쳐든 책을 읽어보니 왠걸, 신혼부부에게 신의 축복을 전해줄 것 같은 제목과는 다르게 실제 내용은 결혼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혼자들의 매운맛 고민 타파이다.


들어가는 글에서부터 스님은 결혼을 결심한 당신에게 호되게 겁을 준다. 막상 결혼해보면 금방 “배우자 때문에 못 살겠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며. 스님은 사람을 이렇게 쫄게(!) 만들어놓고 곧바로 이에 대한 원인분석을 해주신다.

상대방으로부터 덕을 보려는 심보 때문이다!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이 고약한 심보를, 결혼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욕심부리려다가 진정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대부분의 부부관계를 고치고자 한다. 물론 책에 나온 대부분의 사연이 사연자의 탓이 아닌(일반인의 시선으로 보기엔) 경우이다.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던가, 배우자가 폭력을 행사했다던가. 우리같은 속세의 중생들이 보기엔 이 모든 건 그 부정을 저지른 배우자의 문제이다. 스님도 이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을 저지른 인간들은 어린 시절 무언가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못난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배우자가 못나고 더러운 ‘짐승’이더라도 그를 짐승으로 받아들일지, 존경하는 내 아이의 부모이자 사랑하는 내 배우자로 받아들일지는 본인에게 달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를 짐승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내 인식으로 인해 내 아이도 알게모르게 자신의 부모를 더럽다고 느끼게 될 것이고, 그렇게 내 아이까지 위축되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업보를 남기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분명 잘못한건 사연자의 배우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와 내 주변 사람들까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지, 아니면 이를 마음 수양의 기회로 삼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다면, ‘내가 남편에게 소홀했나보구나, 내가 모자랐나보구나’라고 여기고 ‘이런 모자란 나라도 사랑해줬어서 고마웠고 그동안 신경써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정말 파격적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잘못은 저놈이 했는데 왜 피해자가 사과기도를 해야 하는가?


결과론적으로 이 기도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다. 그 배우자를 이해타산으로 따지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또는 더이상 미워하지 않고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떠나보내기 위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당연한 이야기다. 왜냐면 내가 아직까지도 이 책의 핵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결혼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결혼은 이해타산이 아닌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 말에 대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지, 누가 상대방을 통해 이득을 보려고 결혼을 하냐고.” 아니다. 대부분의 부부는 후자를 노리고 결혼하였다. 배우자에게 실망하고 화를 내며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원인은 상대방에게 무언가 기대를 하였기 때문이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자를 원하는가? 부유한 배우자를 원하는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배우자를 원하는가? 아니라고? 나는 배우자에게 원하는 조건이 하나도 없다고? 그러면 길에 돌아다니는 아무 사람이랑 결혼해서 살아도 된다.


저자는 위와 같이 배우자에게 무언가 기대하게 된다면 실망하는 순간이 분명히 오게 된다고 한다. 좋은 조건에는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적으로 뛰어난 배우자의 경우 다른 이성들도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외적으로 뛰어난 배우자는 외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이런 이성과 결혼하게 된다면 이정도는 감내할 각오, 이런 일이 현실로 다가오더라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야 한다.


본인이 배우자를 사랑이 아닌 이해타산적으로 여긴다면, 배우자 또한 자신에 대해 이해타산을 따질 거라는 걸 이해해야한다. 자기는 배우자의 어떤 점이 좋아서 결혼했으면서, 배우자는 자기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시쳇말로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그러면 반대로 사랑한다는 건 무엇일까? 스님은 사랑을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라고 표현한다. 상대방이 무슨 짓을 하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 편에서 이해하고 마음 써줄 때 감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 편에서 이해하고 마음 써줄 때 감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사례로 돌아가보자. 바람을 핀 남편! 이 파렴치한 녀석이 사연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연자는 화가 날 만도 하다. 사연자는 남편이 본인을 사랑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연자도 남편을 이해타산적으로 여긴 것이다. 그를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며 사랑한 것이 아니라.


따라서 사연자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있다. 그와 같이 살던가, 떠나보내던가. 일단 두가지 선택 모두 용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를 용서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자기에게만 손해이다. 배우자와 악연이 될 것이며, 배우자를 떠올릴 때마다 화가 치밀어오를 것이며 자기 자신과 남은 가족에게 평생 남을 상처가 될 것이다. 반대로 사연자가 배우자를 용서한다면 사연자가 배우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놓아버리면서 미움과 아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를 용서하는 것의 시작이 바로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다시 말해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소홀했던 동안 이런 일이 있었구나, 외롭게 두어서 미안해라.’ 잘못한 사람에게 되려 본인이 사과기도를 하는 아이러니를 통해 사연자는 그를 미워하느라 뺏긴 에너지를 돌려받고 다시 행복할 수 있게 된다.


자, 다시. 헤어지냐 헤어지지 않느냐의 분기점으로 돌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밉다면 그때 이혼을 선택하면 된다. 손에 쥔 불덩이가 뜨거우면 ‘앗 뜨거’하고 곧바로 놓아버리듯이, ‘어떻게 헤어져야 해요’라는 고민 없이 그냥 놓아버림을 선택하면 된다. 본인이 행복하기 위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해.


법륜스님은 이 책을 통해 외도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자 뿐만이 아니라,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지 못해 고민일 때, 시부모님과의 불화로 인해 고통스러울 때, 술주정을 부리는 배우자로 인해 힘들 때 등등에 대한 솔루션들도 애정있고 심도있는 시선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의 해답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행복해지기’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스님이 자신의 저서에서 거듭 강조하는 법문이 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같은 현실에서도 불행할수도, 행복할 수도 있다. 내가 현실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내 마음가짐을 바꾸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수행자로 생각하며 인생에 어떤 일이 있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수행하는 연습을 하면 된다. 긍정적인 생각을 습관화하는 게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자전거를 처음부터 잘 탈 수 없는 것처럼, 여러번 자빠지고 넘어지며 조금씩 조금씩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갑자기 책이 읽고싶어졌는데, 뭘 읽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