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를 읽고
우리가 창작물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울하고 힘 빠지는 현실은 이미 오랫동안 봐온 탓에 더 이상 보고 싶지 싶다.
현실 사람들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꿈을 향해 끈질기게 쫓아가다 보면 부와 명예, 사랑과 평화 모든 걸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일본 소년만화는 보잘것없는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내며 최강자로서 결말을 맞는 왕도형 전개를 따르곤 한다.
하지만 요 근래 잘 나갔던 만화들이 김 빠지는 결말로 독자들을 당황 분노케 하는 사례가 종종 일어난다.
한 달 전쯤 회자되었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사태도 그러하다.
이 에세이는 해당 작품의 결말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에 대한 흥을 깨고 싶지 않다면 읽지 말아 달라.
미도리야 이즈쿠는 무개성자‘였’다. 개성(초능력)을 가진 인구가 대다수인 사회에서 그의 장래희망인 ‘히어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 최강의 히어로 올마이트가 나타나 미도리야의 의협심을 보고 히어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올마이트의 개성인 ‘원포올’을 이어받아서 말이다.
남들이 5살 때쯤 발현하게 되는 개성을 중3의 나이에 얻게 된 미도리야는 히어로 육성 전문학교인 UA고등학교에 여차저차 입학하여
최고의 히어로가 되기 위해 사활을 다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최고의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 미도리야 이즈쿠
그런데 문제는 최종장의 마지막이다. 미도리야는 이 작품 내 모든 사건의 원흉이자 최악의 빌런인 ‘올포원’을 무찌른다.
무찌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성 원포올을 잃게 된다. 개성이 없으면 히어로 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는 그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의 꿈을 잃게 된 것이다. 어찌 이렇게 아이러니할까!
그뿐만이 아니다. 프로 히어로가 된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왕래가 드물어졌다.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 미도리야를 기억하지 못한다.
미도리야는 그렇게 그의 꿈과는 상관없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교우들이 선물한 파워슈트를 입고 간간히 히어로 활동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팬들이 왜 이 결말에 화가 났는지 이해가 되는가? 팬들은 미도리야가 잘 되길 바랐다. 그에게 감정이입하였다.
‘나도 미도리야처럼 내가 가진 힘을 키워가며 선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돕다보면 우정과 명예, 사랑 등 모든 걸 갖게 될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화의 연재기간 몇 년간 응원하였던 미도리야의 성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다니!
그는 모든 사람들을 지키고자 노력했는데, 아무도 그를 지켜주지 않다니!
독자들은 최강자가 된 미도리야가 올마이트처럼 최강 히어로로 군림하는 소년만화적 결말을 원했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에 모두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악당들은 영웅들에 의해 징벌된다. 하지만 영웅은 파괴될 뿐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게 현실이다.
우리 곁에 함께 살고 있는 참전 용사들을 보아라.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의 후손을 보아라.
그들이 충분히 보상받았는가? 그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는가? 절대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영웅들처럼 무언가를 위해 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선뜻 ‘네’라는 답변을 내놓을 수가 없다.
나 같은 새가슴 소인배들이 다수인 이 세상과 대비되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희생한 영웅들의 행적은 더더욱 숭고하고 위대하다.
이 작품의 미도리야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기 장래희망인 ‘최고의 히어로‘가 될 필수 조건인 개성 원포올을 희생하였다.
그가 개성을 잃음으로써 더 이상 히어로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최악의 빌런을 이긴 최고의 히어로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주제인, ‘최고의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희생한 영웅들의 행적은 더더욱 숭고하고 위대하다.
물론 나도 미도리야가 모든 걸 잃게 된 엔딩에 너무나도 분통하다. 나도 모두가 그렇듯 미도리야를 응원하고 그에게 감정이입하였기에.
아무리 그래도 그에게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연금이라도 주던가,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하여 동상이라도 세워주던가 해야 하지 않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미도리야가 작품 내내 보여준 의협심과 희생정신을 칭송하고, 그를 본받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 우리 주변의 실제 영웅들인 독립군, 애국지사, 참전용사들과 그들의 후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일도 있을 것이다.
부디 이제부터 현실에서나 창작물에서나 ‘나히아’의 엔딩과 같은 우울한 결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