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택수 '글루타민산나트륨'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아내로 이어지는 정성가득한 집밥입니다. 소박하지만 조미료 범벅의 싸구려 음식과는 다르죠.”
자승당 안정구 대표는 흡족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초록 나무와 나트막한 꽃들이 잘 가꿔진 그의 정원엔 초봄, 정오의 태양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명문가의 비밀’, 프로그램에 맞는 인물과 멋진 집이라고 김피디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전 구국 위해 단식을 감행한 안대표는 단식으로 그의 힘과 원동력을 끊고 애국을 위한 결단을 보여준 것이었다! 기획안에 대해 임원진은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 공감이 시청자들에게도 이어질 것이었다. 다만, 이 작가, 안정구 대표의 이름이 처음 거론될 때부터 저런 표정이었다. 애국자가 아닌 건 알았지만 저렇게 일에 프로의식이 없는 줄은 몰랐다.
정원에서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본격적인 식사 장면 촬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의 아내는 새벽장을 보느라 잠을 설쳤다며 이른 아침부터 촬영준비를 시작하는 스텝들에게 볼맨 소리를 터뜨렸다.
“지금 모두들 아침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온 거 아시죠?
내 옆에 선 이작가는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게 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자기 밥은 자기가 챙겨야지.”
이 작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잡곡밥에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나물무침과 몇 가지 슴슴한 밑반찬으로 식사를 합니다. 방송으로 내보내기엔 너무 소박한데요? 아내와 어머니가 모두 손수 하신 겁니다.”
집밥은 그의 집안을 이루는 근간, 그를 일으켜 세우는 단단한 심지와 같은 것이라고 그는 단호한 얼굴로 덧붙였다. 김이 오르는 쌀밥과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는 활짝 웃으며 마주앉은 아내와 어머니를 향해 엄지를 들었다. 당황한 그의 부인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햇살이 들어오는 잘 꾸며진 한옥 주방을 따뜻한 색조로 담아냈다. ‘지금까지 해온 나라를 위한 그의 행보, 그리고 당대표로서의 책임감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바로 집밥, 그것이 상징하는 그의 집안의 단단한 가풍이다.’ 장면에 담길 나레이션을 떠올리며 딱 떨어지는 장면에 김피디는 흡족한 기분이었다.
안정구 당대표는 나라가 뒤숭숭했던 군사독재시절, 남한노동당을 혁파하고 국가보안법의 합리적 적용을 위해 노력했던 검사였다. 당시 지하에 고여있던 남한노동당 사건이나 대학에 퍼진 불순한 사회 이념들을 혁파하고 정화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집단 생활을 할 때,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불순한 사람들이 특별한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이후 정치 행보에서 그의 보수적인 애국 행보는 계속 되었다. 필요 없는 것은 깎고 골라 사회를 둥글게 만드는데 기여한 안정구 대표의 업적은 칭송되어야 마땅했다.
“요즘 먹방이 유행이죠? 제가 먹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집밥이 가장 좋지만 뭐든 먹는 걸 가리지 않아요. 맛있게 많이, 잘 먹어야 복이 들어오고, 나라도 평온해 지는 겁니다.”
밥 그릇을 싹싹 비우며 입안 가득 음식을 넣은 그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웃었다. 내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던 이 작가가 단호한 얼굴로 그의 앞에 나섰다. 왠지 불안해졌다.
“안대표님, 최근 구국 단식 하셨잖아요. 정말 힘드셨겠어요. 먹는 걸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안대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그는 이내 뽀얀 숭늉으로 입을 헹구고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제 절실함을 아시겠습니까? 정당한 분배가 아닌 퍼주기식 복지, 일본에 대한 무대포식 위안부 사과요구, 이런 것들이 나라 경제를 얼마나 위태롭게 만드는지 너무 걱정이 됩니다.”
“이대표님의 친일파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그런 발언이 논란을 부채질할거라곤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말릴 틈도 없이 할말을 마친 안대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대표를 바라보았다. 네가 기자냐. 등짝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안대표는 실없이 웃고 매서운 눈빛으로 이작가를 바라보았다.
“나라 잘 되게 하는 일에 친일파 친한파가 어딨습니까? 그런 감정공세로 정치를 하니 나라가 불안한 겁니다. 친일파였던 과거나, 위안부 사과 따위가 당장 먹고사는 일에 도움이 됩니까? 작가님 월급이 오릅니까? 방송사 어디죠? 작가님 계약직이죠?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세요. 그래야 정규직으로 국가 발전에 더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 작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촬영이 끝나면 단단히 일러둬야 겠다. 아니, 진지하게 다름 개편 때 교체를 고민해야 겠다. 공동의 목표에 위해를 가하는 저런 팀원을 두고 볼 순 없는 일이다. 분위기를 바꿔야겠다고 김피디는 생각했다. 안대표의 기분이 상해버리면 촬영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자, 그럼 대표님의 건강한 몸과 사상의 기반은 바로 집에서 드시는 집밥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대표님이 드시는 집밥의 비밀을 살짝 공개해 주시죠.”
인자한 표정의 안대표는 잠시 생각하듯 뜸을 들이고 밥상을 내려다보다가 카메라를 응시했다. 창밖에서 스며든 햇살이 그의 캐시미어 니트 위로 환하게 쏟아졌다. 나라를 걱정하는 정치인, 그러나 더없이 소박하고 인자한 어른을 연출하기에 멋진 장면이었다!
“가족을 생각하는 아내와 어머니의 정성이 듬뿍 담겼다는 것이 바로 비법이겠죠. 전 국민이 알다시피 전 극심한 화학물질 두드러기로 군대도 못 갔어요. 평생 제 한이 된 일이기도 하고요. 군대는 애국의 기본 아닙니까. 그래서 음식하는 집사람이나 어머님이 더 힘드셨을 거에요. 오직 정성으로 맛을 내야 하니까요.”
따뜻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다. 무사히 끝났다! 이제 서재에서 그의 개인 인터뷰를 좀 더 진행하면 되었다. 이 층 서재로 스텝들이 이동하고 이 작가, 보조 카메라가 주방에 남아 스케치에 쓸 장면들을 촬영하기로 했다. 그의 아내가 연출할 식재료들을 가지러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옥색 명주 한복을 입은 허리 굽은 구순 노모가 천천히 우리 앞에 걸어왔다.
“우리 정구는 좀 더 특별한 걸 먹고 있당께. 우리 시아버지가 일본에서 갖고오구 정구 아버지도 일본이랑 일할 때 특별히 일을 잘해서 이 귀한걸 얻었응께. 우리나라엔 없어. 지금도 정구 어미가 외국 갈 때나 컴퓨터로 산다고.”
굽은 허리를 더 깊숙이 숙인 노모는 은밀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 작가는 노모 앞에 한 걸음 다가갔다.
“와, 어머님, 궁금해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께 알려드리면 어떨까요? 안정구 대표님 같은 애국자로 키우신 어머님의 비법을 알려주세요.”
주변을 휘휘 둘러본 노모는 구석 씽크대를 열어 도자기로 만든 작은 양념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진주빛을 발하는 뽀얀 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노모를 한번 쳐다본 이 작가는 작은 수저로 하얀 가루를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혀끝으로 가루를 문지른 그녀의 표정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궁금해진 나도 가루를 조금 떠서 혀끝을 대 보았다. 이 맛, 이 익숙한 맛. 달큰하고 느끼하고 세상 모든 감칠맛을 응축한 이 맛,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잠을 부르고 물을 부르지만, 일상의 중독을 부르는 고향의 맛,
안정구 대표의 집안 대대로 전해졌다는 단단한 맛의 원천!
바로 미원(味原), 일본의 아지노모토(味の素)에서 왔다는 그 조미료,
글루타민산나트륨이었다.
윤택수
지식은 규정 앞에 무력하다
소나무숲같이 규정은 아픔답다
규정은 무겁고 벅차다
규정은 댐이다
규정은 내부의 가시 가지다
귀 오므려 뼈의 잠조차 빨아들이는
규정의 사랑은 잠잔다
규정이 자유라고 규정하면
자유는 발언한다
규정의 자유는 푸르다
명태같이 쓸쓸하다
규정은 추억한다
아들이여
여기 우는가
어디가 아퍼서 여자같이 징징거리는가
느닷없이 습격해와서
두루마기를 흔드는
먹을 수 없는 새들마저
기웃거린다
나는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