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소무의도 무의바다나루길'
무채색의 바다 뒤에는 바위같은 섬들이 걸렸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갈라진 소무의도가 파도 끝에 걸리는 지점이다. 연인의 이별을 촬영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마지막 씬을 체크하며 영훈은 아이패드를 들어 일정과 장소를 입력하고 카메라 앱을 터치했다. 이번 영화의 마지막 로케이션이었다.
셔터를 누르던 찰나, 먼 섬의 모서리에 원근법을 무시하고 한 여자가 와 섰다.
영훈은 잠시 눈 앞의 핸드폰을 치우고 풍경을 들여다봤다. 그의 앞에 서서 저만치 보이는 소무의도를 향해 핸드폰을 올리는 여자의 얼굴이 낯익었다.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회색 패딩을 단단히 입은 여자가 옆모습을 보이며 섰다. 영훈은 핸드폰 화면을 들어 여자의 얼굴을 비췄다. 클로즈업, 클로즈업. 여자가 그를 향해 돌아선다. 느리고 날카롭게 부는 여자의 얼굴에 찰랑이는 단발머리가 쏟아지듯 흩날리며 파편처럼 하얀 얼굴에 붙었다 낱낱이 떨어지고 만다.
미영이 맞았다.
아이패드 속 미영은 그를 보며 천천히 걸어왔다.
썰물로 섬의 바닥이 온통 드러난 광명항은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 더욱 헐벗은 느낌이었다. 오후 두 시를 막 넘긴 한낮이었지만 흐린 하늘 때문인지 해변가는 우중충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과 섬 사이 해변가에 둘은 마주섰다. 미영은 영훈을 곧 알아보고 천천히 미소지었다.
“선배 많이 변했네.”
“넌 그대로다. 머리만 짧아졌네.”
“짧아지고 많이 빠졌지요. 주름도 늘고.”
미영은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며 활짝 웃었다. 오른쪽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게 웃는 습관은 그대로 였다. 통통하던 볼살이 빠지고 그늘진 팔자주름이 보였다. 그녀의 주름은 자신의 빠진 머리나 하얗게 세어버린 귀밑머리만큼 낯설었다. 십오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 있었다.
인천시 토목 산하기관의 홍보지를 만들고 있는 그녀는 취재차 이곳에 왔다고 했다. 무의도에서 소무의도를 잇는 인도교 개통은 기관의 자랑이었다. 작은 배로 오가던 길이 이제 서해바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되었다며 미영은 목소리 톤을 높였다. 할 말을 고를 때 나오는 그녀의 습관은 그대로였다. 말은 빨라지고 목소리 톤은 높아졌다. 그럴 때마다 영훈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꼭 잡아주곤 했다.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고, 내가 옆에 있으니.
대학시절, 제대 후 듣던 첫 전공수업에서 노트를 빌려준 후배가 미영이었다. 창문도 없는 굴같은 지하 강의실에서 러시아음성학 수업을 들었다. 일 학기 수업이 시작될 땐 지독하게 추웠고, 기말 고사 때는 땀구멍까지 다 열어도 더웠다. 단단한 시멘트벽은 추위도 더위도 하나도 막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미영이 있었다. 늘 보송한 얼굴로 그의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그녀의 느슨하게 묶은 긴머리를 보는 것이 좋았다.
수순처럼 자연스럽게 둘은 사귀었다. 그러나 영화공부를 하겠다며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영훈을 그녀는 기다리지 않았다. 취업 후 직장 거래처에서 만난 남자와 평범하게 결혼하고 다시 ‘평범한’ 성격차이로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영훈은 광할한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누우면 발끝이 딱 닿는 한평 반짜리 방에 누워 들었다. 원래 주절대길 좋아하는 동기녀석의 목소리를 안주삼아 조용히 보드카 한 병을 비웠다. 자신이 영화로 승부를 보기엔 지극히 평범하고 재능이 없다는 사실만을 확실히 확인한 5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귀국 후 대기업계열 제작사의 월급쟁이로나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저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썰물이라 그런가 바다 같지가 않아. 노보데비치 호수, 백조의 호수잖아. 난 물이 있는 장소를 떠올리면 거기가 기억나는데, 선배도 알죠?”
미영의 말에 영훈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래, 미영이 모스크바에 온 적이 있었지. 그녀가 막 취직을 하고 그가 유학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분주하던 그때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에 들뜬 시절이었다. 해외사업부 소속이었던 미영이 모스크바에 출장을 왔었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는 미영을 만나지 않았다. 그땐 그럴 때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벅차고 아득해서 제대로 붙잡지 않으면 금방 무너질 모래성 같았다. 그녀라면 알고 기다려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같은 해피엔딩은 완벽한 드라마였다.
소무의도 인도교를 향해 걷는 그녀를 그는 천천히 따라 걸었다. 둘 중 누군가가 산책을 제안한 것도 아니었지만 인도교는 그가 그렇게 걸어야 하는 레일처럼 보였다. 다시 돌아갈수 없는 일방향의 철로. 습하고 차가운 대기 속에 놓인 인도교 위에서 미영의 까만 뒤통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바늘구멍사진기 속 빛의 입자가 된 기분이라고 영훈은 생각했다. 막막하게 외로워졌고, 그 회색대기 안에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로케이션 매니저라고 했지? 무의도 부근은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나왔잖아.”
다리를 건너 그를 기다리던 그녀는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오래전 얘기지. ‘실미도’나 ‘천국의 계단’ 뭐 이런게 유명하지, 아마?”
“그니까. 해변가에 피아노가 다 뭐야. 진짜 웃겼는데.”
둘은 설핏 웃으며 거리를 두고 마주 서 걸었다. 그때 내가 너를 잡았으면, 너를 만나 함께 노보데비치 호수로 가서 너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쥐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몇몇의 선배와 후배들 근황을 뜬구름처럼 전하며 간간히 톤 높은 웃음을 터뜨렸다. 바닥이 드러났던 해변엔 조금씩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12월의 흐린 바닷가는 조금씩 농담을 더해갔다.
“아쉽네. 여기 일몰이 일품인데. 아쉬운데로 칼국수나 먹고 갈래요? 저 집 맛있어요.”
수족관엔 나른한 물고기들이 꼼짝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수족관만큼 탁하고 좁은 횟집에 우리둘은 나란히 앉았다. 해물칼국수엔 바지락과 꽃게가 들어있었다. 이 해산물들은 아마 눈앞의 해변에서 나고자란 것이 아닌 먼 바닷가에서 잡혀 공수되어 왔으리라. 그녀와 나도 길고 먼 시간을 흩어지고 돌아와 이곳에 마주 앉았다. 칼국수는 젓가락을 대면 뚝뚝 끊어질 정도로 찰기가 없었다. 그가 젓가락으로 끊어진 국수가락을 다시 잡을 때 그녀는 소주를 시켜 잔에 따랐다.
“안심하고 드세요. 여긴 섬 아니니까. 택시부르면 온다니까요. 곤란하게 안해.”
바지락을 몇 개 건져먹다 말고 그녀는 연거푸 소주를 마셨다. 뜨거운 국물에 몸이 녹고 소주 한 모금에 몸이 가라앉았다. 소주 한잔에 칼국수 한 젓가락씩 정확히 먹던 그녀는 불콰해진 눈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구는 둥그니까 그런가. 바다를 생각하면 늘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떠올려요. 그걸 보려고 바다로 떠나고. 근데 사실 난 망망대해를 본 적이 없다니까. 앞을 봐도 뭔가 자꾸 시야에 걸리잖아요. 차라리 백조의 호수처럼 영감이라도 떠오르게 아름답던가. 탁 걸리고 아름답지 않고. 그냥 사는 게 그랬어요.”
미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불기 시작한 칼국수를 젓가락으로 뜨다 내려놓았다.
“바다를 찍으면 섬이 늘 시야에 걸리지. 요즘은 CG가 있어서 좀 편리하긴 하지만.”
그런가? 미영은 설핏 웃고 다시 소주잔을 입에 댔다.
“선배도 먹고사느라 힘들구나, 추운날 섬구석까지 일하러 오고 말이죠.”
영훈은 쓰게 웃었다. 거의 손대지 않은 그의 칼국수는 이미 불어 국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못한 이야기들이 심장에 붙어 가슴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모스크바에서 너에게 못한 이야기, 사실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떠난 건 나였다고, 그래서 그 미안함에 기다리라고 할 수 없었다는 말을 지금 할 수 있을까? 아무 소용없는 공허한 울림이 될지라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살짝 취한 그녀가 그의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업체 포토그라퍼가 남은 촬영을 마치고 그녀를 데려다주기 위해 광명항으로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 밖으로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굵고 경쾌했다. 짧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서둘러 밥값을 계산했다. 밀물이 본격적으로 차오르기 시작한 어둠 속의 바다는 몇시간 전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용히 앞서 걷던 그녀가 인도교 중간에 우뚝 섰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의 옆에 섰을 때였다. 그녀가 주저앉아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는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과 ‘영광교회’라고 새겨진 휴대용티슈를 꺼냈다. 무슨 일이 생기든 인도교 위에서 속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닦아주고 휴지로 토사물을 덮어 치웠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오래전 일이 기억났다. 그녀가 토하고, 그가 닦고 치우고, 주저앉은 그녀를 업고..... 그리고 천천히 걸은 일까지 그대로 였다. 두 사건 사이를 통과한 시간의 덧없음에 영훈은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빠르게 일어섰다. 손수건을 꼭 쥐고 마저 입을 닦은 후 크게 한숨을 쉬었다.
“예전엔 여기가 뱃길이었어서 멀미를 한거죠, 내가. 사는 일에 멀미를 느끼는 건 절대 아니라고.”
영훈은 소리내어 조금 웃고 총총히 인도교를 따라 빠르게 걷는 그녀를 천천히 따라갔다. 밀물은 어느새 다리 바로 아래까지 차올라 있었다.
광명항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나오자 페인트가 벗겨진 벤치에 앉아 전화를 받는 그녀가 보였다. 하얗게 뜬 얼굴이 파리해 보였다.
“전 저쪽 주차장에서 업체 분을 만나서 같이 가면 돼요. 선배, 오늘 반가웠어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미영은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영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류장 저편 자신의 차가 주차된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린 밤바다는 무한히 넓어 보였다. 시야를 가로막던 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어둠이 그 모든 것을 가린 것이리라. 엄연히 존재하는 끝과 섬처럼 떠다닐 수많은 걸림돌들을.
미영이 사라진 곳을 보았다. 모퉁이를 돌아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밤바다를 쳐다보던 그는 그녀가 사라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밀물이 완전히 들어찬 바다는 어둠속에서 망망대해처럼 보였다. 노란 버스정류장의 불빛과 간판들은 밤의 시간이 깊어질수록 환하게 빛났다. 노란 불빛아래를 지나간 영훈의 모습도 곧 어둠의 망망대해로 사라졌다.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황인찬
지구의 바다는 끝이 없이 펼쳐져 있다고 했는데
끝이 보이는 바다는 처음이야
너는 말했지
한국의 바다에는 끝이 있다 세계의 모든 바다에도 끝이 있고, 바다 건너 어딘가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그런 이야기에도 끝이 있고
바다에 끝이 없다고 누가 했는지
파도에는 끝이 있고, 해변의 모래에는 끝이 있고, 바다의 절벽에도, 바다 절벽 위의 소나무에도, 파도가 깎아놓은 몽돌에도 끝이 있는데
아직 우리는 끝을 보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들 속에서
끝이 있는데도 끝이 나지 않는 날들 속에서
사랑을 하면서
계속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어디를 둘러봐도 육지가 보이는 섬의 해변에 앉아 있었다
돌아가는 배 위에서는 멀미를 하는 너의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계속되는 것이구나
생각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