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레스크

- 황인찬 '피카레스크'

by 후시딘

촬영은 반나절이면 끝난다고 했다. 촬영장비와 벤이 들어서는 동네 공터에는 뿌연 먼지와 함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미 도착한 스텝들이 동선을 체크하고 보조 카메라를 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죽시트에 몸을 깊숙이 묻고 팔짱을 낀 채 미동도 없는 민혜의 모습을 매니저는 백미러로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메이크업을 하고 차 밖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화가 난 건지 피곤한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저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짧은 한숨을 내쉰 매니저는 표정을 풀어 활짝 웃으며 몸을 돌려 민혜를 바라보았다.

“이제 준비해야지?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애틋하고 화사한 얼굴, 그런 거 있잖아...”


애절함을 넘어 단호하기까지 한 매니저의 표정에 민혜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 서둘러 거울을 보았다. 최소인원으로 움직이길 원한 그녀의 뜻에 따라 오늘 촬영엔 매니저만 동참했다.2년전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아름다운 가사와 음색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싱어송라이터 구민혜. 내면의 영감을 통해 한편의 시와 같은 영롱한 가사와 곡을 쓰는 그녀의 모습은 프로그램 내내 화제였다. 이름도 생소한 시골마을 출신의 소녀가 서울로 올라와 음악공부를 하고 최고가 되는 스토리는 너무나 식상하고 진부해서 기발한 스토리를 찾는 이 시대에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 것이라는 기자들의 분석이 잇따랐다. 그리고 그녀에겐 이 모든 것을 상쇄하는 ‘실력’이 있었다. 오늘은 방송사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가수 구민혜의 다큐멘터리 촬영 첫날이었다.


그녀의 집은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네 시간, 비포장 시골길을 한 시간 더 달려야 하는 남쪽의 외진 구석에 있었다.

“민혜야, 밥 먹었나. 다들 밥 먹고 하시지예. 아이고, 우리 아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이에 비해 늙은 엄마는 거친 손으로 딸의 손을 잡아끌어 밥상 앞에 앉혔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밥상에 놓인 톳무침을 입안에 가득 넣고 오물거렸다. 엄마가 흰 쌀밥위에 얹은 조기 살점이 클로즈업되었다. 뽀얀 밥알이 조명을 받아 진주알처럼 빛났다.

밭일을 마친 아버지가 잘 우러난 보리차를 한 컵 따라 그녀의 앞에 무심히 놓아주었다. 피디는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촌부를 보며 적절한 나레이션을 떠올리곤 미소를 지었다. ‘무심하고 따뜻한 그녀의 곡엔 분명한 기원이 있었다.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가족...’

작은 창밖으론 멀리 남해바다가 푸른 띠처럼 아스라이 둘러져 있었다. 카메라는 작은 시골집과 푸른 산, 하늘에 맞닿은 바다를 그림처럼 잡아냈다. 그녀의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멋진 편집을 떠올리며 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웠다.


.....

시골에 있는 나의 작은 집에서는

조용히 양파를 까는 저녁과

흐르는 물에 그릇 부시는 소리 가득한 오후와

.....


촬영이 끝났다. 장비들이 정리되고 어수선한 찰라, 노부부는 딸의 손을 잡고 창고 뒤편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눈에 작은 공포가 어렸다. 현장 정리로 어수선한 집 앞의 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녀는 잡힌 손을 냅다 풀었다. 부모님의 화난 얼굴, 자신에게만 향해지던 공포스런 표정이 눈에 가득찼다. 자기도 모르게 민혜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너, 오빠한테 돈 안보내재? 그렇게 너만 잘 먹고 잘살고, 니 오빠랑 우리들 맹키로 감빵가고 거렁뱅이 되면 너한테 좋겠나? 이리 된게 다 니가 잘나서 그런 것 같재? 웃기는 소리 마라. 니가 뭐라고.”

팔짱을 끼고 거칠게 내뱉는 엄마의 말에 민혜는 몸을 더 작게 웅크리고 머리를 감쌌다. 옆에서 담배를 꺼내 들던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먼 산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엄니가 그러는 거 서운해 말거라. 장남이 잘되야 너도 편히 살 수 있는거라. 우리가 있고 오래비가 있으니 네도 있는거다. 늘 명심해야 한다.”


멀리서 그녀를 찾는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천천히 집 앞으로 나왔다. 마당 한구석, 과꽃 화단 옆에 버려지듯 방치된 녹슨 펌프가 보였다. 그녀와 두 살터울인 오빠는 국수를 좋아했다. 손이 큰 엄마는 늘 오빠가 좋아하는 국수를 한가득 삶아놓곤 했다. 입이 까탈스러운 오빠가 몇 젓가락 뜨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늘 그랬다. 국수를 삶은 날 밤이면 엄마는 그녀를 펌프 옆 화단 모서리로 데려왔다. 음식이 버려지는 걸 하늘이 무너지는 것으로 여기는 아버지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남은 국수를 건져먹게 했다. 별도 없는 산골의 까만 밤, 엄마의 눈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것을 기억한다. 국수를 모두 건져먹은 날, 새벽이 되면 그녀는 식구들 몰래 일어나 울 밖으로 나가 먹은 것을 모두 토했다. 마지막으로 토한 날 새벽, 그녀는 모아둔 약간의 돈을 챙겨 서울행 버스를 탔다. 숙식이 해결되는 고급 요리점에 숨어들 듯 취업을 했다. 그리고 곡을 썼다.


.....

겪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삶이

자꾸 제작되고 있다

슬픔이 찾아오는 날에는 일기를 썼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 소설이었습니다“

.....


펌프 옆에 넋을 놓고 서 있는 그녀의 등을 매니저가 조용히 토닥였다.

“오늘 고생 많았어. 서울가는 차에서 눈 좀 붙여.”

매니저의 손엔 커다란 보퉁이가 들려 있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녀에게 그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가 주셨어. 반찬하고 이것저것.”

속이 울렁거렸다. 퉁퉁 불어 오른 국수 가닥이 목울대를 뚫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대문 저편에 보라색 꽃이 일렁이는 도라지 밭이 보였다. 국수를 잔뜩 먹은 새벽에 속을 비우던 쓰레기장이 보라색 꽃밭이 되어 있었다.


.....

화단에 가득 피어난 꽃들이 다 죽은 것을 보며

여름 내내 울었다.

.....


민혜는 가만히 입을 막고 하늘을 보았다.

초여름 하늘은 더없이 푸른빛이었다. 푸른 다도해의 바다와 하늘이 감싸고 있는 이곳은 더없이 평안한 그림처럼 보였다. 그녀는 서둘러 자신이 타고 온 검은 벤에 올랐다.


그리곤 맑고 푸르고 화창한, 전형적일 만큼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 속을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피카레스크


황인찬



그게 무슨 고백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계속 고백하다보면 진실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여기서 그는 나와 오래 함께 살았다

그는 화단에 가득 피어난 꽃들이 다 죽은 것을 보며

여름내내 울었다


그는 어두운 시골길을 지나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다


아직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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