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역할

- 안미옥 '빛의 역할'

by 후시딘

너는 가장 마지막에 왔다. 차오르지 않는 빈 몸으로.

늦봄의 따끈한 봄빛이 네 등을 타고 따라왔다.


주차장과 공원이 연결된 어두운 통로. 공원 쪽으로 낮에는 환한 햇살이 쏟아졌지만 곧 주차장의 그늘 속으로, 회잿빛 어둠속으로 빠르게 몸을 숨기는 일이 가능했다. 그늘의 경계선에 사료와 물을 놓아주었다. 내 발소리를 알아듣는 난로와 미로, 작은 고양이 남매. 대범한 노랑이 난로는 사료 알갱이가 플라스틱 통에 부딪히는 소리에 뛰어와 곧 얼굴을 들이밀고 식사를 했다. 그러면 저 멀리서 복잡한 고등어 코트를 가만히 걸치고 이쪽을 쳐다보는 미로가 있다. 내가 완전히 물러서고 난 후에야 조심히 다가와 플라스틱 두부 케이스에 얼굴을 들이민다. 너는 아주 조금 먹었다. 갸름하고 뾰족한 턱은 미묘의 조짐이 보였다. 작은 체구는 한 몸에서 태어난 난로보다 작고, 아름다웠다.


노랑코트가 따끈해 보여서 난로라고, 짙은 아이라인을 가진 복잡한 고등어 코트가 신비로와 미로라고 이름 붙여 부르기 생각했다. 사실 그들에게 이름을 불러준 것보다 내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미소지은 날이 많았다. 둘은 생후 3개월 정도 지난 아이고양이였다. 어미 노랑둥이의 임신기간으로 따져서 약 백일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노랑둥이 어미는 하루 이틀 보이더니, 어느날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채, 남매만이 이곳에 남은 것을 보고 막연히 그 생사를 짐작할 뿐이었다.


“더 깊이 생각하지 말아요.”

옆집 지원엄마가 내 어깨를 가볍게 치며 씁쓸히 웃었다. 가끔 집에서 조리하고 남은 멸치나 황태, 닭가슴살을 내놓는 나에 비해 지원엄마는 정기적이고 적극적으로, 오랫동안 길냥이들의 사료를 챙기는 캣맘이었다. 사실 길냥이들이 홀연히 사라지는 일은 별다른 사건이 아니라고 했다. 생동하던 생명이 별이 되어 사라지는 일이 별다르지 않은 일상이 되다니 쓴웃음이 나왔다.


그들에겐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생각하며 팔월, 여름을 건너는 사람들.


미로가 사라졌다. 난로 미로 남매를 위해 본격적으로 사료를 사기 시작했던 때였다. 지원엄마는 고양이도 기르지 않으면서 길냥이를 챙기는 나를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자신의 고양이에서 관심과 애정이 확대되며 길냥이를 챙기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건 고양이라서가 아니었다. 눈 앞에서 움직이는, 밥은 먹고 다니는지 늘 물음표가 떠오르는 생명체를 그저 두고 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팔뚝 길이도 되지 않는 작은 뭉치들이 인간이 만들어 둔 위험한 구조물 속을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다녔다. 차가운 콘크리트와 철골 외에 입댈 것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냉장고 속을 떠올리며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다. 부족해 보여 사료를 주문했다.


사료통을 들고 나타나면 늘 일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나를 주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초롱했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본능은 아니었을 텐데 백여일간의 수난이 짐작되었다. 난로의 눈엔 늘 눈꼽이 껴 있었고 미로의 몸은 가늘었다. 가끔은 작고 가느다란 몸을 쭉 펴고 나른해진 눈으로 내 쪽을 바라보며 우리만 알 수 있는 호의를 표현했다. 착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적극적인 호의보다 내겐 더 기뻤다. 적당히 경계하길, 계속 거리를 유지하길. 그것이 길에서 살아가야할 너희를 지키는 길이니까. 나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외면하며 사료를 부어놓고 저편으로 물러났다. 그들의 식사를 지켜볼 때도 있었고 총총히 돌아설 때도 있었다. 이것이 우리 관계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함께 살아갈 공간을 독식하는 인간으로서 너희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미안하기도 쓸쓸하기도 했다.


만나는 순간부터 슬픔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습기와 슬픔이 구별되지 않는 팔월.


미로가 오지 않은지 꽤 되었다. 천천히 나타나 사료를 먹고 사라지는 난로의 몸은 부쩍 커져 있었다. 때를 가리지 않고 퍼붓던 집중호우가 끝난 8월의 마지막 주였다. 나른해진 발걸음으로 쓸쓸하고 천천히 다가오는 난로는 나를 피하지 않고 내 손에 머리를 갖다 댔다. 열대야의 여름보다 뜨거운 노랗고 동그란 정수리. 부패하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의 느낌. 어딘가에서 천천히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을 미로를 생각했다. 너의 아름다움에 미로라는 이름을, 나만 부르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너의 별로 돌아가는 그 길모퉁이에서 복잡한 미로를 만나 헤메고 있진 않을지. 한여름의 습기를 먹은 탓인지 사료를 먹은 난로는 오독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니면 슬픔을 재우느라 천천히, 누이를 생각하며 입에 머금고 있는 것일지도.


두 달간의 만남, 나는 미로를 애도했다. 음식을 나눠먹고, 너를 위한 음식을 장만하며 삶의 한 조각을 공유했던 예쁘고 작은 생명체. 애정을 쏟아 지켜보던 너로 인해 나의 생애 영역은 좀 더 확장되었다. 완전한 상실 속에서 가까운 존재의 죽음을 안을 수 있게 된 나는 미로 덕택에 조금 더 성장한 느낌이다. 며칠 전까지 눈앞에서 먹고 마시던 존재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깊고 진한 애도를 필요로 했다. 일단 짧은 미로의 생에 너무 슬프고 속상한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누구도 알 수 없고 절대 길이로 판단하기 힘든 길고 짧은 생을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자기 기도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마지막은 늘 그렇게 끝났다.

그렇게 여름을 건너고 있었다. 빛은 그렇게 조금씩 줄어들다, 다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노랑 난로의 정수리에, 나의 이마에 수많은 새들이 날개를 접은 숲속에도 절기에 맞는 각도를 가진 햇빛은, 그 노란 빛은 공평하게 내리쬔다. 누군가의 기도에 얽매이지 않은 채, 깊고 따스한 애도로 모두를 위로하는.


그것이 빛의 역할이다.






빛의 역할


안미옥


너는 가장 마지막에 온다. 차오르지 않는 빈 몸으로 온다. 싫다고 말하면 돌아서는 사람들과 있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딛고 주저앉는 사람들과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입을 삐죽이며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저기 저 숲에서는 수천 마리의 새들이 날개를 접고 앉아 있다. 누가 먼저 울음을 멈추는지 보려고 했다. 멈춘 창문. 멈춘 식탁. 손을 잡고 있는 손.

우리에겐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있었다. 아무렇게나 여름을 건너려는 사람들과 있었다. 무너지고 있는 집안에 들어가 깨진 물건들을 함부로 만졌다. 아무것이 붙잡고 매달리고 싶어 하는 두 팔. 매일 같은 자리 같은 공간에 있었다. 튀어오르지 못하는 공은 구르다가도 멈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기도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마지막은 늘 그렇게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헤롤드 지들러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