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롤드 지들러의 경우

- 영화 물랑루즈 'The show must go on'

by 후시딘



“백만배는 더 미남으로 젊게 그려드립죠. 오, 그렇다고 지금 모습이 늙고 형편없다는 건 아닙니다.”

옷소매를 붙잡은 풋내기 화가가 풋내 풍기는 흥정을 벌인다. 주변 능구렁이 같은 녀석들이 일제히 흥미진진한 비웃음을 보낸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내가 허술하고 얼 띤 관광객이 아니라는 것을.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가들, 모든 것이 구식이었던 1800년대를 넘어 이미 1900년대, 그 후로도 1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들의 쇼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림으로 박제될 그들의 영혼보다 중요한 쇼, 예술혼보다 먼저 아우성칠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필사적인 거리의 쇼.


그것이 무엇이든, 파리 최대의 쇼를 보여주기 위해,

오늘 나는 이곳에 다시 왔다.


몽마르뜨 언덕은 여전하다. 언덕 기슭 빨간 풍차도 그대로다. 물랑루즈, 내가 떠난 4년 동안 물랑루즈는 겉모습은 낡았지만 더 이상 쇼를 공연하지 않는다. 털 빠진 암탉같은 여가수들이 은식기가 부딪히는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뮤직홀이 되었다. 공연의 열기가 넘치던 그곳엔 음식냄새와 트름소리가 채우고 있을 것이다. 샤틴, 그녀의 가련한 마지막을 보냈던 곳, 나의 쇼가 있었던 이곳에서 말이다.


그 사건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하찮은 사랑놀음. 결국 샤틴은 죽고 무희들은 떠났다. 지독한 악담은 모두 공연 단장인 내 몫이었다.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이었다. 샤틴에게 거절당한 공작은 연줄을 이용해 극장을 폐쇄시켰다. 극장주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물었다. 쇼는 계속되어야 했다. 그것이 나의 생계였으니까. 아끼던 배우와 일을 동시에 잃었다. 나를 포주 취급하는 악랄한 소문이 돌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무희들이 누구와 자든, 거기서 돈을 벌든 나와 관계없는 일이었다. 샤틴이 공작을 원한 것은 그녀의 의지였다. 배우가 되고, 돈을 벌기 위한. 그리고 무엇보다 병을 치료해야 했다. 옘병할, 가난뱅이 작가 크리스티앙은 그녀에게 약 한봉지도 사주지 못했다. 그녀의 병에 관심이나 있었을까. 제 사랑과 예술에 눈이 먼 이기적인 예술가일 뿐이었다.


물랑루즈를 떠나 마르세이유까지 떠밀려온 나는 아내와 조잡한 극장식 선술집에서 일을 했다. 적당히 헐벗은 삼류, 아니 분류가 불가능한 배우들과 쇼를 공연하며 고단한 항해에서 돌아온 선원들을 위로했다. 피로한 그들은 거칠고 투박했다. 무대 위로 늘 술잔과 오물이 날라들었다. 비바람이 들이치는 않는 공간에서 멀건 부야베스라도 끓여먹으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마르세이유에서 나의 쇼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살점을 너무나 깨끗이 발라낸, 머리와 내장이 거의 전부인 청어와 대구를 얻어 들고가던 어느날이었다. 시가지 서점에서 낯익은 단어를 발견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크리스티앙의 책이었다. 샤틴과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은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했다. 이 촌구석에서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한명, 난쟁이 로트렉 녀석! 물랑루즈의 무희들과 그렇게 놀아나더니 결국 물랑루즈와 그녀들을 그린 그림으로 파리 미술계를 흥분시켰다. 압생트를 조금만 마시라던 내 충고를 무시하더니, 결국 알콜 중독으로 지난해 세상을 떴다. 그가 죽은 후 그림의 가치가 치솟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가련한 난쟁이놈!


물랑루즈에서 보낸 한 때를 우리고 우려, 그들의 쇼는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나의 일상과 같은 쇼를, 일을 하며 살아가려던 것뿐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었나. 크리스티앙 놈이 외치던 사랑, 나도 했다. 내 일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배우들과 무대를 사랑했다.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공작의 투자가 절실했다. 그런데 그 둘의 사랑놀음이 나를 망쳤다. 결국 샤틴은 죽고 남은 크리스티앙은 더 큰 판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다. 샤틴을 팔아 사람들앞에서 질질짜는 쇼를 펼친다. 그 무대 뒤에선 다른 쇼를 펼치고 또 다른 다이아몬드를 찾아 사랑놀음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샤크레퀘르 성당 뒤로 저녁노을이 진다. 한 달전, 아내가 숨을 거두던 시간에도 창밖으로 이런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빛나는 다이아몬드’같은 시절이 있었다. 배우인 그녀를 내 사적인 쇼에 끌어들인 것이 잘못이었다. 샤틴과 크리스티앙처럼 그때 우리는 매순간, 둘의 영혼으로 모든 것이 빛나고 그 순간만으로 좋은, 모든 것이 멈춰서는 사티로스의 시간을 살았다. 영원을 맹세한 우리는 결혼했고, 크로노스의 시간을 함께 감당해야 했다. 쇼는 계속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한 글자그대로의 ‘쇼’.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는 정말 먹어야 일을 하고 살아갈 수 있다. 마르세이유에서 거의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식재료가 바로 생선부산물이었다. 살점이 워낙 적어 내장을 모두 넣고 끓인 부야베스를 먹었을 뿐이다. 독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날 저녁을 아내와 함께 먹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 무대가 아닌 오두막에서 그녀는 지독한 거품을 물고 물거품처럼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녀의 쇼는, 나와 함께여서 더 힘들었을 아내의 크로노스 시간은 그렇게 끝났다.


파리의 공기는 상쾌하지 않지만, 더 이상 비린내를 맡지 않으니 살 것 같다. 쉰 두 해를 지속해온 나의 쇼는 이곳, 몽마르뜨에서 끝내려 한다. 물랑루즈의 붉은 풍차에 불이 켜 진다. 빨간극장이 나의 심장처럼 뜨거워 보인다. 십오년간 일했던 물랑루즈, 낡은 변압기는 아마 그대로일 것이다. 나무로 만든 무대장치들은 작은 불꽃에도 취약하다. 1914년 여름, 사크레쿼르 성당이 지켜보는 가운데 몽마르뜨 언덕을 배경으로 붉은 풍차의 물랑루즈에선 세기의 쇼가 시작될 것이다. 그 쇼의 연출이자 단장은 나 헤롤드 지들러다!


-딴 방법은 없어. 쇼는 계속돼야 해, 샤틴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사랑 따위는 안 어울려.


푸른 조명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던 창백한 얼굴의 샤틴이 떠오른다.

그래, 쇼는 계속 될 것이다. 너의 죽음 후에 그랬던 것처럼.

물랑루즈가 사라진 뒤에도!







https://youtu.be/_YCLDvhaM-Q




The show must go on

영화 '물랑루즈' 중


Another hero. Another mindless crime.

또 다른 영웅에, 또 다른 범죄가 있다오.

Behind the curtain, in the pantomime.

장막 뒤에서도, 판토마임에서도.

On and on.

끊임없이.


Does anybody know what we are living for?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혹시 아는 사람이 있소?

Whatever happens, we leave it all to chance.

어떤 일이 일이나건, 우리는 그저 운에 따라야 한다오.

Another heartache. Another failed romance.

또 다른 상사병에, 또 못다한 사랑이 나오겠지.

On and on.

끊임없이.


Does anybody know what we are living for?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혹시 아는 사람이 있소?

The show must go on

쇼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Outside the dawn is breaking on the stage

아스라히 떠오르는 해가 무대를 비추는구나.

That holds Our final destiny

우리를 운명으로 이끌 무대를.

The show must go on

쇼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Inside my heart is breaking

내 마음이 사랑에 미어지고

My makeup may be flaking

내 분장이 눈물에 번져가도

But my smile still stays on

내 미소만은 계속 남아야 하겠지.

The show must go on

쇼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I'll top the bill, I'll overkill

나는 얻어낼거야, 나는 성공할거야.

I have to find the will to carry

나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

On with the

이어가기 위하여

On with the

이어가기 위하여

On with the show

쇼를 이어가기 위하여


The show must go on

쇼는 계속 이어져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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