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잘 생긴 늑대 한 마리의 노래

- 윤택수 '아주 잘 생긴 늑대 한 마리의 노래'

by 후시딘

여문 봉숭아가 씨를 뱉어내듯 갑자기 툭, 터지는 스마트폰의 알람에 눈을 뜨는 아침이었다.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침대 밑에 툭 떨구듯 발을 내려놓았다. 차가운 방바닥이 발바닥에 닿았다. 어제와 같은 생각, 그러니까 침대 밑에 매트를 깔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그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그것은 확실히 인기척이었다. 문짝의 얇은 합판 한 장을 경계로 지금 저 밖에 누군가 있다. 침착해야 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막 집어 들었을 때 였다.


방문이 활짝 열렸다. 바닥의 냉기가 역류하듯 온 몸을 감싸고, 아찔한 공포가 몰려들기 전에 내 감각이 감지한 건 무척이나 낯익은 냄새였다. 소고기 무국과 흰 쌀밥의 냄새, 압력밥솥의 뜸들이는 소리. 그런데, 그런데!

하얀색 문틀을 액자처럼 걸고 서 있는 그는 내겐 비일상적으로 너무 낯익은 사람이었다. 사랑해서, 그래서 부끄러운 사람. 어제 밤에도 침대 위에서 밤 늦게까지 얼굴을 마주하며 내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영화배우 김연빈


믿을 수 없지만 그가 내 앞에 서 있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게 분명했다. 꿈이라면, 뭐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몇 년 전 영화 ‘더 울프’에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순정남으로 열연한 그에게 빠르게 빠져들었다. 소위 ‘덕질’이라고 부르는 무모하고 보상없는 사랑이었다. 데뷔 15년차인 그는 생각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고 평범한 집안에서 잘 큰 진중한 남자였다. 간간히 열애설이 나왔지만 솔직히 인정하고 잘 사랑하다 헤어졌다. 알면 알수록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늘 저편에서 웃어주던 그가 내 공간, 그것도 주방에 서 있는 것이다.


“늦잠 안 잤네요. 어서 아침 먹어요.”

모양과 크기가 각각인 그릇엔 엄마가 싸준 김치와 밑 반찬 외에 그가 막 부쳐낸 달걀말이, 흰쌀밥, 그리고 뽀얗게 국물을 낸 소고기 무국이 차려져 있었다. 그의 앞치마에 당당히 써 있는 소주 브랜드 ‘그때 처럼’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쁜 그릇이나 앞치마를 사 둘걸 그랬다. 저 사람은 진자 김연빈이 맞는 걸까? 본능적으로 가슴이 뛰는 것을 보면 김연빈이 분명했다. 역시, 나는 생각보다 본능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김이 오르는 밥상 앞에서 이미 수저를 뜨고 있었으니 말이다. 국은 뜨겁고 쌀밥은....! 달고 고소하다. 이건 꿈이 아니다! 꿈에서는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작업대 겸용으로 쓰는 4인용 식탁 맞은편에 그가 앉아 있었다. 초여름 더위가 성큼 다가온 유월, 불을 써서 요리를 한 탓인지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 되어 있었다. 밥을 먹는 내 앞에 냉장고에 넣어둔 보리차를 따라 놓았다.

“작가님, 오늘은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이건 뭐지? 그는 나의 직업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서른 중반, 배우에게 빠져 덕질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이미 그가 차린 밥을 먹고 배가 부른 이 상황에서, 어쨌든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림 카드를 그려야 되요. 그림책의 부록으로 들어갈 기억력 카드인데 동물을 주인공으로 32장을 그리는 거죠. 같은 카드가 두 개씩 들어가고요. 그러니까 나올카드는 총 예순 두장이 되는 거에요.

마지막 남은 달걀말이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기억력 카드의 사용 룰은 간단했다. 뒤집어 놓은 카드 중 두장을 고른다. 다른 그림이면 다시 뒤집어 놓고, 같은 카드이면 두장 다 자신이 갖고 한 번 더 뒤집을 수 있다. 카드에 따라 더 복잡한 룰은 많지만, 감성 디자인잡지 부록으로 주어지는 예쁜 일러스트 카드의 룰은 최소화되었다.


최대한 음식을 삼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전달하고 싶은 만큼 또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그의 음식은 훌륭했다. 엄마가 싸준 반찬에 손이 가지 않을 만큼 그가 한 무국과 달걀말이는 황홀할 지경이었다. 민망함도 잊고 그의 앞에서 밥을 말아 계속 퍼먹었다. 싹싹 비운 그릇을 보며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재빨리 빈그릇을 거둬 설거지를 하고 자연스레 믹스커피를 타서 마주앉을 때까지 나는 부른 배를 느끼며 현실감 없이 몽롱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가 내 앞에 밀어둔 커피를 마셨다. 아, 눈물이 흐를 만큼 맛있다! 노란 봉투의 믹스커피가 원래 이런 맛이었던가.


“근데요. 초면에 실례지만, 배우 송애민 씨와는 정말 사귀시는 거 맞아요? 팬클럽 최측근들도 애매하다길래....”

그는 자신의 커피잔을 들어 훌훌 마시고 집게 손가락을 들어 내 입술에 가져다 댔다.

“남의 이야기보다 중요한 건 뭐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이요. 자, 주인공이 될 동물은 뭘로 하실거죠? 기왕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 ‘늑대’, 어떨까요?”


나는 후후 소리를 내며 웃었다. 늑대는 그의 별명이었다. 완만한 커브를 틀며 남자답게 각진 턱, 아몬드 모양의 별을 박은 듯 우수어린 눈, 오똑하고 멋진 콧날과 적당히 크고 도톰한 입술. 빛과 어둠을 모두 가진 ‘천상 배우’의 얼굴은 설원에 고고하게 서 있는 늑대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그가 내 앞에 아이패드와 펜을 내밀었다. 스케치를 시작했다. 우수에 찬 그의 얼굴을 형상화한 블루 그레이 톤의 컬러를 가진 일러스트가 완성되었다. 조금 더 다듬어 카드에 적합한 귀여운 타입의 얼굴도 그렸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근데 부탁이 하나 있어요.”

패드의 스케치를 보며 감동한 표정을 지은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32개의 그림은 나에 대해 그려 줬으면 해요. 당신이 나의 팬인건 알고 있어요. 가능하시겠죠?”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그는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금 신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통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에 눈을 뜬다고 했다. 전날 촬영이 더 길게 이어지거나 가끔은 밤샘 촬영을 하며 현장에서 눈을 뜰 때도 있다고 했다. 일 년의 일 이개월을 제외하고 그는 언제나 드라마나 영화 촬영중이었다. 그 사이 광고를 찍기 위한 스튜디오로 틈틈이 달려갈 때도 있다. 그 틈을 쪼개 또 운동을 했다. 살이 잘 찌는 그는 먹을 것과 틈틈이 근력운동을 하기 위해 신경 썼다. 차에선 쪽잠을 많이 잤고, 삶은 달걀과 구운 연어, 기름이 없어 퍽퍽한 소 우둔살을 매일 250그람씩 먹었다. 곁들여 먹는 채소에는 간을 하지 않았다. 집중력이 필요할때는 커피를 마셨다. 일 년에 한 달 정도 주어지는 휴가기에는 그가 좋아하는 초코쿠키와 티라미수케잌, 곱창볶음과 밀떡만 들어있는 국물떡볶이를 안주로 막걸리와 소주를 즐겁게 먹었다. 그 기간중에 담배도 피우곤 했다. 이런 루틴으로 배우가 된 이래 20년을 살아왔다. 일을 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잘생긴 자신의 얼굴, 그리고 감정의 진폭이 깊어지도록 수없이 노력하는, 그의 연기를 알아봐 주는 팬들이 점점 많아졌다. 유혹은 많았고 가끔 흔들리기도 했지만..


“흔들렸다고요?”

메모를 하며 스케치를 구상해가던 나는 펜을 꼭 쥐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익숙하게 따라서 마시고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대단한 유혹은 아니고요, 특정 권력자를 위한 특별한 사람이 될 뻔했죠. 돈과 권력을 가진 그런 분이었는데.”

그의 얼굴이 아득하게 굳었다. 나의 접힌 미간을 보며 그가 빙긋 웃었다.

“사실 잠깐 만나기도 했어요. 그분은 나를 놀라게 하기 위해 대단한 것을 보여주겠노라고 했어요. 자, 잘 들어요. 그분의 집 지하에는 영화 감상홀이 있어요. 오른쪽 벽엔 책과 씨디가 가득한데 ‘빨강머리앤’, 그 책을 빼서 뒤집어 꽂으면 신기하게 열린답니다!”


살짝 흥분한 표정이 된 그는 그 서재 뒤에 금괴가 가득 쌓여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라를 뒤흔들만한 장부와 문건, 사진과 녹음 기록들. 내가 아는 모든 미스터리한 사건의 전말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유혹은 바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분은 거대 국가 비리로 수사 대상이 되어 바로 외국으로 도피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메모했다. 그는 생수를 한모금 더 마시고 이미 중천에 떠 있는 태양에 아득한 시선을 주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사랑했던 사람도 있었어요. 당신이 알고 있는 과거의 두명은 정말 제가 사랑했던 여자들이죠. 처음 만났던 그녀와는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세계관이 다른 사람이라 결국 되지 않았지만.”

그는 한층 아득해진 표정으로 테이블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른한 듯 총기가 빛나는 그 아몬드 모양의 두 눈에 내 얼굴은 금새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엷게 웃고 말을 이었다.

“결국 마지막에 생각나는 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었어요. 당신과 같은 사람.”


그는 시선을 내게 떼지 않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의아했지만 그의 시선,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에 내 얼굴은 한층 달아올랐다. 잘생긴 늑대, 그리고 리본을 단 통통한 곰이 손을 맞잡은 카드를 생각하며 나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목을 빼고 내가 그릴 카드의 스케치를 본 그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크게 웃었다.

그가 해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32개의 카드 그림을 구상했다. 대강 구상해둔 패드의 스케치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약지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넘기며 만족스런 표정으로 유심히 보았다.


“자, 책 제목은 ‘빨간머리 앤’입니다. 제목 확실히 써 주세요.”

권력자의 영화감상실 카드 스케치를 가리키며 그가 지적했다. 그 사건과 관련된 스케치를 신중히 보던 그는 몇 가지를 지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빼라고 하면 뺄 작정이었는데 더 공들여 그려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카드그림을 넘기던 그가 마지막 스케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늑대와 팬클럽의 상징인 하얀 아몬드 꽃을 달고 있는 곰순이들의 그림이었다. 손을 맞잡고 돌고 있는 그 스케치를 보며 그는 즐거운 듯, 슬픈 듯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이 카드, 감사합니다. 오래 기억해주세요.”

눈물까지 보이며 고마워하는 그의 표정에 가슴이 벅차오른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일러스트 툴을 꺼내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출출할 때 먹을 샌드위치라도 만들겠다며 냉장고를 열고 뒤적이기 시작했다.

“일을 마친 후엔 한잔 합시다! 맛있는 와인에 어울리는 안주를 올리겠습니다.”

너무 좋아 계속 벌어지는 입을 가리고 나는 펜을 놀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식빵을 데우는 토스트 오븐의 소음, 채소를 썰고 햄을 굽는 소리가 점점 아득해졌다. 그림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리는 점점 점 잦아들었다. 세상은 고요와 어둠속에 잠겨들었다.


‘땡’ 하는 토스터 알람의 끝자락이 아득해져 갈 때,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핸드폰에 손을 뻗어 시계를 보니 오후 7시가 넘었다. 주변은 제법 어둑해져 있었다. 꿈인 듯 아닌 듯 주방엔 음식냄새가 옅게 풍겼다. 일어나 불을 켰다. 깨끗이 정리한 씽크대 위에 채소와 구운햄, 달걀후라이와 치즈를 넣어 감싼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패드를 열었다. 카드 아주 잘생긴 늑대의 일대기. 카드 스케치가 완성되어 있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이건 배가 고프기 때문일 것이다.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세상에, 늘 비어있다고 생각한 냉장고에서 이런 샌드위치가 탄생하다니. 그가 다녀간건 꿈이었나, 내가 만든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열었을 때였다. 친구들로부터 잔뜩 메시지가 와 있었다. 무슨일인가, 열어본 순간. 나는 손에 든 샌드위치를 떨어뜨리고 온 몸을 떨었다.


김연빈, 그가 죽었다.


교통사고였다. 사고 장소가 우리집 부근의 순환도로라고 했다. 촬영 후 서울에 오던 그의 차는 졸음운전을 하던 대형트레일러와 충돌했다. 눈물이 흘렀다. 그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할 수만 있다면 마지막은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과 보내고 싶어요. 그들이 좋아한 소박한 음식같은 걸 나눠도 좋겠죠?’

패드를 들어 완성한 스케치들을 훑어나갔다. 잘생긴 늑대의 일대기. 우리집 근처에서 마지막을 보낸 그는 급한 대로 나를 찾아 온 것인가? 아니면 꿈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그저 숙연했고, 스토리텔링으로 이어간 정교한 카드의 스케치에 나도 놀랄 따름이었다. 제대로 완성해서 세상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 열정을 다해 열심히 살다간 한 마리 잘생긴 늑대의 일대기를.


“카드 때문에 이번호 난리 났잖아요. 세상에, 이런 일이! 근데 정말이에요? 그 카드가 배우 김연빈의 이야기라는 이야기가 떠돌거든요. 혹시 작가님 김연빈 팬이세요?”

나는 웃고 말았다. 출판사에서 보낸 택배를 열었다. 일상 포착 감성매거진 ‘그룬’ 별책부록이 툭 떨어졌다. 가로세로 7센티짜리 직사각 종이상자엔 서른 두 장으로 그린 그의 일생이 각각 두장씩, 두 배의 카드가 들어있었다. 나는 한 장씩 빼서 바닥에 펼쳐보았다. 유월에 떠나간 잘생긴 늑대,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시길.

그때 현관에서 벨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음식 배달을 왔다고 했다. 시킨 적이 없으니 잘못 오셨다고 돌아선 그때, 배달원의 볼멘 목소리가 머릿속에 와 꽃혔다.


“보낸 사람이 김연빈이랍니다요! 확인하세요. 주소 여기 맞거든요?”

커다란 박스 안엔 와인 한 병과 치즈 세트 살라미, 프로슈토 세트와 말린 과일 몇 종류가 들어 있었다. 카드가 완성되면 술과 안주를 대접하겠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아주 잘생긴 늑대 한 마리의 노래. 그의 모습과 이름이 기억력 카드 속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장미가 피는 유월의 어느날, 늑대와 마주친 그날을 잊지 못하듯 카드가 기억의 씨앗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아주 잘 생긴 늑대 한 마리의 노래


윤택수


사랑하는 늑대야 너는 돌과 장미의 미혼의 나날이고

늑대야 그늘과 거품의 낮이 지나고

어찌 그 지붕 아래 쌀을 끓이는 너는 푸른 바지를 입었어도

생각은 끝없고 무국과 그 여윈 발등의 떨림에 대한

유월이 와서 너를 위하여

한 마리의 아주 잘 생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