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순례'
“저, 실례합니다만... 논문 쓰고 있는 학생인데요.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마트로 향하던 순영을 향해 걸어온 커다란 파일첩을 든 여자가 다가왔다. 화장기없는 파리한 흰 얼굴에 무작정 길러 묶은 머리, 유행이 지난 낡은 후드 코트에 앞코가 뭉툭한 검은 구두는 몹시 초라해 보였다. 그럼에도 화려한 이목구비와 젊음이 이 모든 것을 충분히 가려주고 있었다. 아침마다 치장하느라 바쁜 대학생 딸이 생각났다. 어쨌든 같은 또래로 보이는 여자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요. 뭘 도와주면 되나요?”
“감사합니다. 심리검사에 잠깐 참여해주시면 되는데요...... 혹시, 시간되시면 차라도 한잔 하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러시죠 뭐”
창백한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생크림과 초코를 추가한 모카라떼 라지사이즈를 시킨 여자는 눈을 빛내며 자리에 앉았다. 파일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순영 앞에 내밀었다. 종이 구석에는 ‘한국심리상담협회’라는 글자가 동그라미와 하트가 겹치진 로고와 함께 그려있었다.
“이 종이에 그리고 싶은 도형을 채워넣으시면 됩니다. 어떤 도형이든 좋아요. 지금, 마음속에 떠오르는 걸 그려주세요.”
반듯한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은 힘들었다. 힘을 조절하려 애를 써도 한쪽은 계속 일그러졌다. 하얗고 검은 모나미 볼펜에선 자꾸만 찌꺼기가 나왔다. 동그라미 안에 다시 모서리가 꽉 찬 네모를 그려 넣었다. 찌그러진 도형들에 순영은 문득 짜증이 일었다. 앞에 앉은 여자는 생크림이 가득담긴 모카라떼 잔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절반을 비운 상태였다. 꽤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라고 순영은 생각했다.
“콤파스, 자 이런거 없어요? 펜도 이거 말고 좀 잘 써지는 걸 주시면 좋겠고요.”
일그러진 순영의 미간을 보며 앞의 여자는 활짝 웃었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세요. 그리는 사람의 심리를 보는 것이라서 도구를 쓰는 건 오히려 방해가 되요.”
“아니, 그럼 이렇게 삐뚤삐뚤 똥이 묻은 이것들이 내 상태란 말이죠?”
날카로운 순영의 목소리에 여자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지금 불안하고 예민하시잖아요.. 심리적으로 특단의 처방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순영은 자신이 그린 도형들을 진지하게 한번 바라보고 결심한 듯 여자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일을 뒤적여 다른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려주신 자료 출처도 알아야 하고 검사 결과 나오면 알려드려야 하니까, 주소와 전화번호를 써주세요.”
순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를 반으로 접어 앞에 두었다.
“그래요, 일단 나도 커피 좀 마시고. 아, 정말 명절 전이라 너무 정신이 없네요. 오늘도 남은 시장을 봐야 하고, 집에 가선 또 할 일이 산더미에요.”
“다 사모님의 운명에 먼지가 쌓여서 그래요. 털어낼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연락처를 적어..”
“운명에, 먼지라.....”
순영은 깊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였다.
“딱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거였어. 정말, 쉰 다섯해를 헛 산듯한 기분. 요즘 진짜 죽고 싶거든요. 갱년기가 절정인 탓인가 했는데.”
순영의 깊은 한숨에 여자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다 잘 될 거에요. 지금은 조상신이 불만을 갖고 액을 뿜고 있거든요. 제사를 지내시면...”
“아, 조상신, 조상신이라! 가만 있어보자. 지금 그 조상신들을 위해 설날 차례를 지내러 장을 봐야 하거든요. 마트가 붐비기 전에 가야 하니,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순영은 남은 커피를 털 듯이 입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황한 여자도 남은 모카라떼를 컵까지 먹을 듯 비워내고 순영을 따라 나섰다. 설 연휴 이틀 전, 한겨울의 거리는 춥진 않았지만 잔뜩 흐렸고 미세먼지가 가득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대형 마트가 보였다. 6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엔 붉은 신호등이 빛났다. 순영은 사람들을 헤치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여자도 그 뒤를 바짝 붙어 섰다. 이 여자, 마트까지 따라올 모양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하나보단 둘이 낫겠지. 여자를 보며 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는 어떤걸 사는게 좋을까.”
혼잣말로 중얼거린 순영에게 여자는 야무진 목소리로 포장된 고기를 보며 대답했다.
“제사용 적은 역시 떡갈비보다는 덩어리 등심이 훨씬 나아요. 비싸서 그렇지 보기도 그렇고 나중에 먹기도 훨씬 좋죠.”
신나서 대답하는 여자를 순영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집안일 잘 돕나봐요. 우리 딸은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혀. 지 몸 꾸미는 거나 신경쓰지 머리카락 한번 줍는 일이 없다니까.”
여자는 눈을 빛내며 포장된 고기 중 하나를 고르고 골라 장바구니에 넣고 엷게 웃었다.
“집안에 운수를 바꿀 수 있다니까요. 액을 몰아내는 거죠. 제대로 제사를 지내시면..”
순영은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아가씨,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와 있는 거 아니야. 조상님께 바칠 음식 고르려고!”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던 여자는 시식코너에서 지글거리고 있는 불고기를 향해 다가갔다. 작은 종이컵에 담긴 불고기를 입안에 털어 넣고 만족스런 얼굴로 오물거렸다. 순영은 그런 그녀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시식코너건 맛있는데 그게 또 가져가면 그런 맛이 안 난다니까. 미스터리야.”
“맞아요, 맞아!”
신나게 맞장구치며 대파, 무, 버섯, 햄, 나물 등 채소 코너에서 이것저것 카트에 담던 여자는생각난 듯 순영에게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생선전은 안하세요? 아, 그리고 꽃이전엔 단무지가 들어가야 간이 딱 맞아요.”
김밥용 단무지 한 팩을 카트에 넣은 여자는 이미 포를 떠서 포장해 둔 동태들을 뒤적였다. 한참을 살피던 여자는 굳은 표정으로 생선포를 뜨고 있는 점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동태말고 대구로요. 포 크기를 가로세로 5센티 정도로 고르게 떠주세요. 아무리 바빠도 차례에 올라갈 포를 저렇게 떠 놓으시는 건 너무해요. 조상님께 제를 올릴 건데.”
남자는 뭐 이런 여자가 있냐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뒤에 나타난 순영이 커다란 대구 한 마리를 내밀자 말없이 받아 포를 뜨기 시작했다.
“아가씨, 야무지네!”
“제사가 일상이에요. 사실 좀 지겨운데, 이게 진짜 정성이 다잖아요. 지내는 사람은 돈 들여 공들여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건데, 대충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알듯 말 듯 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여자의 말에 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아가씨가 사연이 많은 것 같다. 제사와 차례에 늘 불평이 많았던 자신의 모습에 반성해야 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자는 사과와 배를 정성껏 골라내고 상처 없는 곶감과 대추, 벌레먹거나 썩지 않은 밤을 신중히 골라 카트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써 본 적 없는 제수용 한과를 권하기도 했는데 크기와 맛이 순영의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복도 많네. 명절 전날 이런 귀인도 만나고. 식구들을 생각하면 정말 난 지지리 복도 없는 년이라고, 요즘 매일 울고 싶고 우울했거든.”
“정말 저랑 오늘, 꼭 같이 가셔야 겠네요. 가장 큰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될 거에요.”
“정말? 나 진짜 남편 때문에 아주 돌아버릴 것 같은데.”
애호박을 집다말고 순영은 눈물을 터뜨렸다. 당황한 여자는 아까 카페에서 잔뜩 집어 코트주머니에 우겨 넣은 휴지를 꺼내 순영에게 쥐어 주었다. 남편이 작년에 바람을 피웠다는 걸, 순영은 최근 우연히 알게 되었다. 모임에서 만난 사십대 후반의 미혼인 학교 후배라고 했다. 남편이야 원래 여자라면 실실 쪼개는 인간이라고 해도 도대체, 그 젊은 여자가 뭐가 아쉬워 환갑이 낼모레인 늙다리 남편과 만났는지 절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걸 뭘 이해하려 하세요. 내가 당사자도 아닌데 그건 불가능하죠.”
순영의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대꾸했다.
“경제적으로 피해 주는 건 없어. 둘이 그냥 잠깐 연애질, 수작질 했던 것 같은데 난 너무 불쾌하고 자존심상해.”
채소 코너 구석에서 훌쩍이는 순영을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여자는 순영의 어깨를 토닥이며 씩씩거렸다.
“이혼이든 폭로든, 마음이 풀리는 대로 하세요. 다만 냉정해지실 필요는 있죠. 지금 전업주부이시면 남편의 경제력은 그래도 소중하거든요. 내 경제력을 확보할 때까진 일단 지금 상태를 유지해야 됩니다. 정말 돈 없으면 힘들어요.”
여자의 한숨과 푸념 섞인 말에 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자랑 남자 둘 다 나쁜 사람들이에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죠. 섣불리 남편 앞에서 여자 잡아봤자 역효과가 나더라고요. 두 사람 관계에 대해서 냉정해 질 때까지 일단 기다리시고 증거와 경제력을 확보하세요.”
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근데 자기는 젊은 아가씨가 뭘 그런걸 다 알아요? 내 딸보면 천둥벌거숭이구먼.”
여자는 의미심장하게 웃다가 진지한 얼굴로 순영을 바라보았다.
“도를 닦으면 알게 됩니다. 친절한 조상님들은 우리를 굽어 살피신다니까요.”
카트를 미는 순영을 따라가던 여자는 마트 구석에 있는 롯데리아를 보며 눈을 빛냈다.
“저기, 저기서 음료수 한잔 더 마시고 가면 안 될까요?”
그러나 매장 카운터에서 여자가 주문한 것은 가장 비싼 한우버거세트였다. 어이없는 얼굴로 콜라를 주문하려던 순영을 제지하며 여자는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세트 먹으면 콜라는 무한 리필 되요.”
작은 물 컵에 자신이 먹을 콜라를 따르고 큰 컵을 순영 앞에 내민 그녀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깨끗이 먹어치웠다. 그래도 여자 때문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고 순영은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던 이야기를 이렇게 털어놓게 될 줄 몰랐다. 햄버거나 음료수 값은 그녀가 들어준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햄버거를 먹는 그녀를 보다가 문득 전화기를 보니 다섯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천천히 먹어요. 체하겠어.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시장도 같이 봐주고, 한심한 내 얘기도 들어주고요. 아가씨도 공부 잘 하시고, 즐겁게 사세요. 새해 복 많이 받고요. 천천히 마저 먹고 가세요. 전 이만.”
남은 감자튀김을 정신없이 탐하던 여자가 놀란 듯 벌떡 일어나 순영의 손을 잡았다.
“아, 저랑 같이 가셔야 돼요. 아니, 저한테 감사하다면서, 같이 가주시면 안돼요?”
울 듯이 매달려 손을 꼭 잡은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순영에게 덧붙였다.
“남편분과의 일은 정말, 제가 진심으로 말씀드리는데요. 조상님께 복을 비는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면 해결돼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게.. 제 말을 믿으셔야 되요.”
울 것 같은 여자의 목소리에 순영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오늘 가서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서 설 차례를 지낼께요. 아가씨도 새해 복 많이 받고. 참 이거 젯상에 보태세요.”
순영은 카트를 뒤적여 사과와 배를 집어 여자 앞에 밀어 넣었다.
“저도 좋은 곳이 있다는 걸 믿어요. 도를 믿지만, 인생의 도는 정말 순례같아요. 너무 힘든데, 끝나고 나면 좋은 곳에 가 있겠지."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여자를 뒤로하고 순영은 카트를 밀어 주차장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재료 다듬기의 긴 명절 레이스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모일 가족들 앞에서 태연하게 웃으며 음식을 나누는 일, 팔순 시어머니의 반찬 투정을 무심하게 들어 넘기는 일. 올해도 잘 넘길 수 있을 거다. 여자 덕택에 올 설에 부칠 대구전과 산적은 모양도 맛도 지난 명절과 다를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순영은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트렁크를 열어 시장 본 물건들을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황인찬
그는 내가 눈이 맑다고 했다 그는 내가 보호받고 있다고 말했다
저녁 다섯 시,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는 내 말을 듣기를 원했다 그는 내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행복해지기를, 그가 내 위안이 되길 원했다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할래요?”
그가 한 말이었다 그는 내게 좋은 곳에 가자고 했다 그는 내가 거기서 더욱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나는 좋은 곳을 믿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저녁 다섯시, 나는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