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

-허수경 '오래된 일'

by 후시딘

호텔 주차장에 들어선 영진은 시동이 꺼진 차 안에 잠시 눈을 감고 시트에 기대 앉았다. 주말 근무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피곤에 겹친 딱딱한 긴장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분명히 있었던 일, 이제는 단단히 밀봉해 버려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일들이 요 며칠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머리가 아팠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이제 차에서 내려야 한다. 아픈 과거보다 배고프고 차가운 현실이 더 두려웠다. 그만큼 그 일들은 이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리자 지하 주차장의 어둠을 뚫고 승합차 한 대가 들어섰다. 경찰마크가 붙은 9인승 대형차였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뜬 목소리로 웃으며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말끔하게 양복을 챙겨입은 그들은 재밌는 이야기라도 주고받았는지 박수까지 치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녀는 차 키를 꼭 쥐고 승합차에서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직원 동선으로 들어선 그녀는 힘이 풀린 몸을 살짝 벽에 기댔다. 왜 하필 이곳이란 말인가. 그녀가 이곳에서 일하는 걸 그가 의식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 알던 사람들 중 그녀와 연락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시절은 이제 모두가 부러 꺼내지 들여다보지 않는 그저 오래된 일에 불과했다.


“오늘 2시 홀 예식 체크 갑니다.”

벌써 한시였다. 오늘 홀 행사는 모두 세건이었다. 컨퍼런스 하나와 예식 두 건. 그 두 개중 하나가 그의 결혼식이었다. 코스 중 디저트로 나갈 모카 무스와 골든 윙 초코케잌은 오전 뷔페조가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예식이 시작되면 스트로베리 셔벳만 체크한 뒤, 뷔페의 식당의 아이스 디저트들을 체크하고 정리하면 되었다. 차갑게 내야 하기 때문에 셔벳 디저트는 코스의 가장 마지막에 서빙된다. 아직 여유가 있다.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픈거야?”

부주방장이 그녀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잠깐 바람좀 쐬고 올께요. 속이 별로 좋지 않아서요.”

“곧 음식 나가니까 바로 들어오라고.”


천천히 주방 뒷문을 나선 그녀는 결심한 듯 빠른 걸음으로 모자를 벗어들고 예식 홀로 향했다. 직원 동선인 어두운 계단을 걸어 올라 홀이 있는 3층의 문을 열자 환한 빛과 왁자지껄한 소음이 훅 끼쳐왔다. 잠시 비상계단 앞에 서 있던 그녀는 예식이 열리는 홀 입구로 천천히 다가갔다. 줄줄이 세워진 화환 옆에 서서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옅은 화장때문인지 예전보다 더 젊어 보였다.


사람들 속에 섞여 천천히 신부대기실로 다가간 그녀는 역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채 화사하게 웃고있는 신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얀 피부와 작은 키, 살짝 통통하게 살이오른 귀염성 있는 외모, 동그란 얼굴과 커다란 눈.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오래전의 시누이, 그러니까 가끔 연락해 오는 그의 여동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결혼할 새언니가 영진 언니를 많이 닮았다니까요? 오빠는 아직도 언니를 못.. 잊는건지도 몰라요..”

그녀는 시누이의 말을 듣고 대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의 일들은 아직 진행중인것이 분명했다. 나쁜 습성은 죽음과 같은 댓가를 치르지 않는 이상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제과점을 운영했을 때 그는 건물옆 경찰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이었다. 오픈이후 매일 커피와 크로와상을 사러왔고, 어느날은 점심을, 어느날은 저녁을 함께하기 시작하며 연인이 되었다. 경찰인 그는 듬직했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사람을 떨리게 하는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년여의 연애에 이어 결혼까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서른 둘, 동갑인 남편과 함께 영진은 그저, 서로의 일을 열심히 하며 가족을 이루고 남들처럼만 살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인정하는 그의 나쁜습관, 그녀가 일깨웠다고 말하는 그 습관에 대해 알게 될때까진 말이다.


시작은 멸치볶음 이었다. 그녀는 약간 큰 멸치를 깨끗이 다듬어 고추장과 고추기름 마늘을 넣어 빨갛고 매콤하게 만든 멸치볶음을 좋아했다. 그녀가 만든 멸치볶음이 밑반찬으로 올라간 날,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른 저녁이었음에도 한참을 취한 모습이었다. 부부 둘 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영진이 차린 밥상앞에 앉은 남편은 젓가락을 들자마자 영진이 볶은 멸치볶음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

“이런 아무렇게나 한 요리를 나더러 먹으라고? 너 돌았냐? 이건 국에 넣는 멸치잖아.”

갑작스럽게 들은 남편의 거친 말에 영진은 당황했다. 강력 수사계로 발령 난 이후 그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의 본모습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온종일 반죽과 오븐 사이를 오가며 시큰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그녀는 다시 잔멸치에 간장 양념을 해서 볶아냈다.


“먹고 떨어지라는 거지?”

그는 붉어진 얼굴로 접시를 들어 그녀에게 던졌다. 잘 볶아진 멸치가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그녀는 얼굴에 붙은 멸치들을 털어내며 이것이 그의 손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을 한 자신에게 살짝 놀라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


가정이란, 가장의 스트레스를 가장 편하게 풀 수 있는 공간이라고 그는 말했다.

“근데 집에 오면 난 스트레스가 쌓여.”

그녀가 세탁한 옷, 그녀가 청소한 집과 마련한 음식,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스트레스가 된다고 했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화를 냈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그녀의 몸에 던지다가, 던질 물건이 마땅치 않자 손을 들어 때리기 시작했다. 술에 잔뜩 취했을때도 일을 해야 하는 그녀를 배려한 탓인지 얼굴에는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첫 몇 달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지나갔고, 그후 일년은 그를 선택한 자신에 대한 자존심으로 견뎠다. 그리고 그 다음해부턴, 그의 패턴을 이해하고 견디기가 수월해 졌다. 그 순간만 지나가면, 두어시간의 폭행을 견디면 일주일은 나름의 죄책감 때문인지 잠잠해졌다. 심지어 더욱 다정해졌다. 그 극단을 오가는 일이 익숙해지고 태연해졌고, 그녀는 그것을 견디는 일이 일상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녀의 잘생기고 자상한, 늠름한 경찰공무원 남편이었다. 주변의 부러움 속에 가정을 지키는 건, 성실히 살아온 자신의 일생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이런 고통스런 비밀을 하나씩은 갖고 산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끔 수사팀에 직접 구운 머핀과 쿠키, 케잌들을 핑크색 리본으로 묶어 보내는 따뜻한 아내였다.

그녀는 가끔은 궁금했다. 그녀의 멍자국처럼 무른 디저트를 동료들과 나누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정의 순간은 그녀가 꽤 오랜 시간을 견딘 후에 찾아왔다. 오븐을 열어 초코케잌을 꺼내던 그녀는 혼곤히 피어오른 어지럼증과 구토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의식- 그녀는 어느순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그와의 접촉을 의식이라고 불렀다.-으로 엉치뼈 부근에 든 멍이 눌려 아파왔다. 머리를 때리진 않았는데. 그때였다.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파왔다. 하체가 끊어지는 통증에 그녀는 그 의식때처럼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하얀 제과복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쿠키를 정리하고 주방으로 온 직원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눈앞에 하얀 안개가 쏟아지듯 의식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유산하셨습니다. 스트레스 성인지, 원인은 더 봐야...”

흐릿하고 익숙한 담배냄새와 함께 의사 뒤로 남편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 없이 슬픈 모습으로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손을 잡았다. 의사는 그와 그녀를 말없이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임신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혹사시켜 일을 했어? 누가 보면 내가 돈도 못벌고 와이프 부려먹는 줄 알잖아. 어떡할거야?”

그는 손을 뿌리치고 팔짱을 꼈다. 입을 굳게 다물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온 몸이 겁에 질린채 그녀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괜찮다, 여긴 집이 아니니 지금은 아무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어이없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또 대답이 없지. 항상 그래. 다 너때문이라는 거, 너도 아니까 말을 안하는 거잖아. 니가 늘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내가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인정하지?”

그가 그녀의 손을 거칠게 잡았다 세차게 내동댕이 칠 때, 의사가 들어왔다. 곱슬머리를 말끔히 올려묶은 의사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남편을 쏘아보았다.


“환자가 안정이 필요하니 보호자분께선 돌아가시는게 좋겠습니다.”

“오늘밤 제가 병실을 지키려고 합니다.”

의사는 완강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그러실 순 없습니다. 이곳은 입원환자들이 많은 병원이라 남자 보호자분들은 계시면 곤란합니다. 백프로 간호사선생님들이 케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면회시간도 지났으니 돌아가시는게 좋겠습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이마를 쓸어준 후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의사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왜 유산되었는지 아시죠? 진단서 필요하시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앞에서는 한번도 울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의사는 티슈를 건내주었고 화가 난 얼굴로 그녀의 옆에 앉았다.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더 오래전의, 더더 오래전의 당신 모습으로 돌아가세요. 끔찍한 기억은 잊으시고요.”


4년간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공무원이라는 그 알량한 명예와 밥줄을 지키기 위해 그는 합의이혼에 순순히 동의했다. 영진은 가계를 정리하고 호텔 양식부에 취업했다. 바쁘고 힘들고 평화로운, 그의 의식 후에 찾아오는 가짜 평화가 아닌, 고요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진짜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와의 기억은 오래된 일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결혼한다. 가정과 결혼이라는 테두리에서 숨을 가두고 의식을 반복할 그 결혼을. 그는 변했을까? 영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 비열한 습속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신부를 보는 순간 영진은 확신했다. 오래된 기억이 살아나며 온 몸이 떨렸다.


토마토와 버섯으로 만든 어뮤즈 부쉬부터 대구요리와 스테이크가 차례로 나가고 디저트 타임이 되었다. 초코케잌과 셔벳이 담긴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세팅된 접시를 쟁반에 담았다.

“수석님께서 들고 나가시려고요?”

“특별히 아는 분이라 인사가 필요해서.”

영진은 의미심장하게 웃고 쟁반을 들었다. 주방장이 보면 화를 내겠지만 그는 오늘 저녁 중요한 예약손님을 위한 식재료 검수를 위해 자리에 없다. 반듯하게 쟁반을 들고 예식이 진행되는 홀에 들어섰다. 축가가 한참이었다.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그녀가 혼주석에 디저트를 세팅하는 순간, 그녀를 알아본 시부모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척이나 간절한 시어머니의 얼굴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신랑을 쳐다보았다. 그의 동공이 크게 벌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아버지가 고개를 숙였다. 영진은 신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신과 닮았다는 그녀, 살짝 긴장한 듯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과 눈이 마주쳤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영진은 신부 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얼굴이 붉어진 신랑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소리없이 입을 들썩였다. 붉은 스트로베리셔벳이 녹기 시작했다. 피처럼 묽어져 하얀 접시위에 천천히 흘러내리는 시간만큼 천천히 영진은 주먹을 꼭 쥐고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것이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깨닫고 있었다.

모든 상처와 흉터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오래된 일


허수경


네가 나를 슬몃 바라보자

나는 떨면서 고개를 수그렸다

어린 연두 물빛이 네 마음의 가녘에서

숨을 가두며 살랑거렸는지도

오래된 일

봄처럼 어두컴컴해서

주소 없는 꽃엽서들은 가버리고

벗 없이 마신 술은

눈썹에 든 애먼 꽃술에 어려

네 눈이 바라보던

내 눈의 뿌연 거울은

하냥 먼 너머로 사라졌네

눈동자의 시절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

지독한 봄날의 일

그리고 오래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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