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엔드게임'
삼일문을 통과한 순간 먼지섞인 바람이 작은 회오리처럼 불어왔다. 종로의 빽빽한 건물사이에 고일곳 없는 바람의 잔해들이 공원으로 모여든 것이라고 영섭은 생각했다.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바둑을 두는 노인들이나 봉지에 든 싸구려 빵을 비둘기와 나누는 노인들이 보였다. 차갑게 스미는 바람에 점퍼깃을 바짝 세우고 접선장소인 팔각정으로 향했다. 초점없는 눈으로 오그라든 듯 앉아있던 노인이 그를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움직이지 않는 잿빛 눈동자가 오싹한 기분이 들어 그는 공원을 에둘러 그와 마주보지 않는 각도에 자리를 잡았다. 팔각정의 각이 여덟 개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 중간에 쪼그리고 앉은 영섭은 담배를 꺼내들고 핸드폰을 보았다. 열두시 오십분. 약속시간은 아직 십 분이 남아 있었다. 3월의 탑골공원엔 초봄의 햇볕 사이로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인들을 보며 라이터를 켠 그는 눈앞에 커다랗게 그려진 금연 표지판을 발견했다. 담배를 도로 넣고 긴 한숨을 쉬었다. 생각할 틈 없이 시간을 넘겨올걸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달아나고 싶을 줄,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지? 홍보와 동시에 보안에도 철저해야 한다고!”
사장은 두꺼비 같은 눈을 실룩거리며 연구실을 두리번거렸다. 유난히 짧은 그의 목에 느슨하게 걸린 에르메스 넥타이가 창백한 연구실 형광등에 번쩍거렸다. 사장이 직접 지방에 있는 연구실에 직접 오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전화한통이면 강남의 본사로 누구든 부를 수 있었다. 그가 그 힘든 걸음을 했다는 건 이번 제품에 정말 공을 들였다는 걸 확인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감추고 싶은 흑막이 있다는 것도.
3년 전, 회사는 바이오 신기술을 갖고 있는 한 생명공학 벤처회사를 매입했다. 일명 ‘세포조배’라 불리는 그 기술은 모든 생명공학자가 꿈꾸는 꿈의 세포 시술법이었다. 상처가 나거나 훼손된 부분의 치료에 해당 부분과 동일한 세포를 주입 후 자가 복제하도록 하여 이전과 같은 말끔한 상태로 돌려놓는 기술이었다. 신체 외부나 장기, 관절 등의 복구시술에 사용되었지만 회사는 보다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바로 ‘뇌손상’의 복구였다.
영섭이 팀장으로 있는 바이오 연구 2팀이 벤처사의 연구를 잇게 되었다. 인수작업을 위해 만난 벤처사 대표는 더 이상 연구에 관여하기를 거부했다. 아마 회사의 대표로 일하다가 일개 조직의 연구원이 되는 것에 내키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업계 사람들은 엄청난 기술을 개발한 그를 ‘외계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수인계 마지막 날, 영섭은 그에게 진짜 미국으로 가는 것이 맞냐고, 떠났던 별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그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제 별로 돌아갑니다. 이제 완전히 정리됐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찾지 마시오.”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언론의 관심을 타고 회사의 주가는 연신 상한가를 기록했다. 별다른 홍보 프로모션 없이도 공중파와 일간지에선 경쟁적으로 취재를 의뢰해 왔다.
“저거, 플라나리아 아냐?”
화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물을 보며 아내가 눈을 크게 떴다. 영섭의 회사에서 나오는 치료제 ‘셀-나인’ 관련 다큐가 한참이었다. 얇은 면도날로 난도질당한 플라나리아의 몸이 시간이 지날수록 돋아나오는 영상과 함께 회사 연구원 인터뷰가 교차 편집되었다.
“진짜 신기하다. 세포가 정말 저렇게 나와서 감쪽같아진단 말이지? 아버님 관절염이랑 나 위궤양 치료하는데 써보고 싶다. 자기가 어떻게 좀 해봐.”
“그건... 안돼!”
영섭은 갑자기 아내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나 서재로 들어갔다. 또 다시 두통이 시작되었다. 두통과 함께 전화벨이 울렸다. 민경이었다. 퇴사 이후 매일 그에게 연락을 해오는 그녀를 한번은 만나야 했다.
고기를 계속 탔고 연기는 점점 더 자욱해졌다. 앞에 앉은 민경은 연기 속에서 가끔 고기를 뒤집을 뿐 입에 대지 않았다. 영섭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녀와 이곳에 온 걸 후회했다. 이곳은 민경이 퇴사직전, 팀 회식 때 자주오던 곳이었다.
“과외 여덟 개 하는게 연구소 월급보다 많아요.”
그녀는 까맣게 탄 고기를 밀어놓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소송 비용 대려면 까마득하죠. 계란으로 바위치기랄까. 우리 회사가 그렇게나 견고한 기업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중증의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고 있던 민경의 아버지는 ‘셀-나인’의 첫 임상 시술자였다. 예후는 나쁘지 않았고, 세포 증식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통증없이 가벼운 산책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과다증식한 세포는 암세포로 변이를 일으켰다. 항암으로도 잡기 힘든 변종세포는 증식도 빠르고 기존 항암으로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했다.
“세포의 이상증식에 대해 선배나 회사는 이미 알고 있었죠? 회사 인수단계에서부터요.”
영섭은 말없이 소주잔을 비웠다.
“알았다한들 달라지는 건 없어. 임상 서류는 완벽했다고. 부작용에 대해서는 환자측에서 동의 한거잖아. 일이 그렇게 된 건 유감이지만.”
불판의 고기들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민경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긴 한숨을 내쉰 후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뒤척이며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선배, 좀 도와주세요. 자료들을 주시면 소송이라도 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세상에 알려야 돼요. 회사에서 지금 부작용 데이터 무시하고 출시하려는 거잖아요. 그건 막아야죠.”
“그런 건 없어. 그리고 민경씨에 대해선 회사에서 할 만큼 한거야. 임상전 동의서류가 완벽한데 직원이어서 어느정도 보상받을 수 있었던 건 알잖아.”
그를 잠시 쏘아보던 민경은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고기들이 모두 타버린 불판위엔 불이 붙었다. 놀란 주인이 서둘러 불판을 치우고 불을 껐다. 영섭은 남은 매캐한 연기 속에서 남은 술을 따라 마시며 민경이 떠난 자리를 보았다. 그 자리에 이제 아무도 앉아서는 안 되었다.
팔각정의 모퉁이에 걸린 하늘은 회잿빛이었다. 영섭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알약모양으로 만든 판촉물 USB를 만지작거렸다. 넘칠만큼 충분한 자료가 알약에 담겼다고 영섭은 생각했다. 그리고 아침에 마주앉아 토스트를 먹던 아내의 얼굴이, 아빠만 보면 화가 난다는 사춘기 딸이 생각났다. 이 커다란 알약을 물 없이 삼키면 내 기도를 막게 될까.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는 초조해졌다.
“기자를 절대 믿으면 안돼. 아무말도 하지 않는게 최선이지. 취재원보호? 지들은 뉴스만 내보내면 끝인 거야. 보호고 나발이고 그런거 절대 없어요. 봤잖아, 내부고발자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기자들에게 오장육부라도 털어줄 것처럼 굴던 홍보팀 윤부장의 단호한 말이 떠올랐다. 그가 오늘 영섭의 상황을 예상했을 리는 없다. 회사와 제품이 한참 핫한 이때 조심하자는 뜻으로 한 이야기이거나 자기 푸념이었을 것이다. 회사 주가는 오늘도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셀-나인’은 최종 임상을 끝내고 시판을 앞두고 있었다. 멈추려면 지금, 해야 했다.
영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을 조금 걸었다. 유리케이스 안에 든 원각사지 십층 석탑이 보였다. 팔각정 앞을 뜨겁게 달궜을 3.1운동도 원각사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위대한 족적은 기록되었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고난을 겪고 수난을 겪은 모래알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처럼 역사까지 가지도 못하고 아마 나는 회사 앞에서 주저 앉게 되리라. 주머니속에서 손에 쥔 알약의 약효와 관계없이 나와 가족들은 그저 가벼운 모래알처럼 급류에 휘말려 소멸하고 말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것이며, 일어난다고 해도 그는 자신이 급류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서 작은 회오리 바람이 버석거리는 먼지를 싣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결심한 듯, 그는 점퍼깃을 단단히 올리고 삼일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건너편에서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덩치 큰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저널리스트였다. 고개를 숙인 영섭은 그를 등지고 종각역으로 향하는 동쪽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강해진 봄볕 속에 계속 먼지섞인 찬 바람이 불었다. 눈에 잡티가 들어간 듯 꺼끌거렸다. 영섭은 고개를 들고 눈을 깜박였다. 뿌연 시야 속에서 연두빛 새잎들과 하얀 목련꽃이 선명히 빛났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반복되는 풍경은 같지만 다른 것이다
너무 익숙해진 풍경이라서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다
잠시 꽃을 보며 생각에 잠긴 그는 팔각정 쪽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털이 수북한 저널리스트를 응시했다. 엔드게임, 남자와 그가 선 이 공원 안에서 어떻게든 끝내야 하는 게임이었다. 누군가는 삼켜야 할 커다란 알약을 손에 쥔 영섭은, 봄 공원에 서서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황인찬
바깥은 늦은 저녁이고, 바깥은 늦은 저녁의 공원이다 공원이 아닌 곳이 없다 어린것들은 눈을 감고 노인들은 두 눈을 뜬 저녁이다 공원에는 끝없는 게임을 계속하는 노인들이 있고, 날아다니지 않는 새가 있고,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있고, 너무 익숙해진 풍경이라서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다
나는 눈을 떴다
나뭇가지 위로 작은 잎들이 빽빽하게 돋아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