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보르스카 '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 Pochwała siostry'
“나, 이혼 안하려고.”
혼잣말처럼 언니는 짧은 문장을 녹두반죽 위로 툭 떨궜다. 국자로 부어넣은 녹두 반죽은 일제히 장작불 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할 말을 찾아 돼지고기가 계속 가라앉고 있는 반죽그릇을 휘휘 저으며 나는 눈만 끔벅거렸다.
“너도 더 살아보면 알 것이다.”
*
언니, 그러니까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그녀는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의 누나이다. 우리가 6년간의 연애를 시작하던 초기부터 나는 언니를 만났고 친하게 지냈다. 스물 여덟, 동갑의 그와 결혼까지 생각하던 시절은 아니어서 나는 그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언니의 남동생, 그러니까 남편에 대한 애정은 각별한 편이었다. 타지에서 올라와 함께 서울에 살고 있는 돌봐야 할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과는 열 살이나 터울이 있으니 돌본다는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말이 없는 편이지만 잘 웃고 사람 좋은,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선 별 참견을 하지 않던 언니를 나는 꽤 좋아했다. 당시 자취생이던 남편의 냉장고에 든 맛있는 음식들도 언니의 솜씨였다. 손맛 좋고 손끝 야무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두 아이들을 잘 키워낸 부지런한 주부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에 호칭을 갑자기 바꾸긴 힘들어 나는 시부모님 눈치를 봐가며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명절 이틀 전에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친정에 왔다. 결혼 후 첫 명절이었던 3년 전 추석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음식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언니에겐 친정인 시댁에 왔다. 차례 음식을 하는 건 참 별로 였지만 언니를 만나는 건 좋았다. 두 집 음식을 해야 하니 힘들다고 하면서도 언니는 허리를 뒤로 젖혀 스트레칭을 한번 하고 그 야무진 손으로 빠르게 부엌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낮추고 목소리는 더 낮춰 웅얼거리듯 내게 말했다.
“있잖아, 나 이혼할라 그런다.”
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던 건 동그랑땡이었나, 포를 뜬 생선전이었나. 지글거리는 기름위에서 익고 있는 전을 뒤집개로 꾹꾹 누르며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함 없으신가봐요, 아주버님은.”
표정이 어두워진 언니는 싱크대 앞에 서서 나물을 데치고 있는 노모를 힐끔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귀가 어두운 시모가 우리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은 없었다.
“똑같아. 여전히 사업한다고 돈은 계속 가져가고. 참았는데 둘째 대학등록금으로 모아둔 걸 손댔어. 직장을 그만둬야 정신 차릴까 싶다가 그러면 진짜 뭘 먹고살지 싶고.”
이번엔 옥수수와 콩이 중심에 있었다. 1 그람에 4칼로리를 내는 그깟 탄수화물로 무슨 ‘대체 에너지’를 만든다는 건지, 언니는 남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주버님, 그러니까 언니의 남편은 결혼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대체 에너지 사업의 대박을 꿈꾸며 성실히 한 길을 걸어왔고 꾸준히 망했다. 결과는 하나였지만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사실 그 이유도 돌려막기처럼 들렸다. 연구 실험 실패에서부터 동업자의 배신, 국가 정책의 변화, 자금의 부족, 조금씩 버전을 달리했지만 이 네 가지에 수렴했다.
인상이 좋고 프리젠테이션에 능한 그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함께할 사람들을 잘 모았다. 언니는 그건 그가 사람에게 잘 속는 인간인 걸 금방 간파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너지원이 될 재료는 너무나 다양해서 흙, 물, 바람, 태양 같은 자연에서부터 곡식, 재활용 폐기물, 심지어는 배설물까지 그의 희망찬 아이템이 되곤 했다. 그가 이십년이 넘는 세월을 왜 에너지에 매달렸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질문에 언니는 어이없는 얼굴로 툭 내뱉었다.
“목성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대.”
“뭐? 테슬라야? 매형은 도대체 뭘 한다는 건데? 와, 진짜 뜬구름 잡는거 오래도 하네!”
갓 구운 전을 집어 먹기 위해 테이블로 다가온 남편은 어이없는 얼굴로 입술을 내밀었다.
“언니, 저희같은 평범한 회사원은 이해 못할 원대한 꿈이라 저러는 거에요.”
나는 남편을 째려보며 덧붙였다. 언니는 커다란 전을 묘기처럼 훌렁 뒤집으며 쓰게 웃었다.
“아니야. 저애 말이 맞아. 뜬구름 잡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거. 너 컴퓨터 일하지? 빅데이터 뭐 한다며. 거기 넣고 그 인간의 일생을 넣어봐라. 같은 일을 실패하면서 계속하는 거, 그 허풍떨고 돌아다니는거. 빅데이터는 뭔가 결론을 줄 것 아니야.”
“누나, 그게 토정비결이잖아. 사주 팔자 말이야.”
나는 남편을 한번 노려보고 언니를 보며 웃었다. 결혼 생활 내내 가장이었던 언니의 두툼히 살 오른 어깨가 축 쳐졌다.
연속된 실패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성격으로 잘 웃고 수다스러웠던 언니의 남편은 어둡고 폐쇄적인, 가끔 이상한 공격성을 지니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최근 풍력 사업에 투자하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빛만 남기고 잠적해 버렸다. 다시 실패가 반복된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그를 보고 키우던 고양이도 달아나 숨어버릴 만큼 그는 변해 있었다. 화가 난 그는 고양이 ‘메롱’을 들어 집 밖으로 쫓아 버렸다고 했다.
“다 알고 있어. 나를 비웃기 위해 고양이 이름을 그렇게 지은걸.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았어?”
“아빠 그러다가 벌 받아요!”
눈물을 흘리며 고양이를 찾던 둘째는 아버지를 노려보며 화를 냈다. 그는 손을 뻗어 딸의 뺨을 후려쳤다. 딸은 부은 볼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메롱이는 찾을 수 없었다. 억수같은 장대비가 내리던 그 며칠을 언니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딸과 어딘가에서 헤메고 있을 메롱이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언니의 얼굴은 참담함으로 가득 찼다.
“너도 살아보면 알 것이다.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시간은 흘러 드디어 언니에겐 때가 왔다. 첫째는 결혼을 했고, 둘째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했다. 이제 더 이상 걸릴 것이 없어졌다. 직장을 그만둔 언니는 친구와 작은 반찬가계를 열었다. 가계가 잘 되리라는 건 다들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더 잘됐다. 아주버님의 에너지에 대한 사그라들지 않는 꿈은, 목성에라도 도달하겠다는 꿈에 다시 진미채와 콩자반, 장조림, 감자볶음이 동원되었다. 예상가능 했지만 사업은 또 실패했다. 실패의 이유엔 돌려막기하듯 예전의 이유가 튀어나왔다. 국가 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나 예측했기 때문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래도 이혼은 안 돼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편과 시부모님은 입을 모아 그녀의 이혼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사실 이혼같은 개인적인 일에 가족들의 의견이 필요한 건지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남편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남편은 감정 없이 담담하게, 최대한 본인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책임, 이라는 거야. 남녀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부모님이야 옛날분들이라 이혼하면 큰일 나는 줄 아셔서 그런거지만, 난 그건 아냐. 목성에 가겠다는 허황한 사람인거 몰랐냐고. 그게 좋아서 결혼해놓고, 그게 싫어서 버린다니.”
사람은 유기체라서 끊임없이 변한다고, 또 사람은 다면체라 너와 내가 모르는 모습이 부부간엔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너와 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빅데이터도 그걸 말해주고 있다고 한마디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의 가족의 일이었고, 전적으로 그녀의 일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이혼을 응원하고 싶었다. 자립기반을 갖춘 여성으로서, 그때와 다른 지금의 변한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
“왜요? 왜 안하시는 데요?”
잔뜩 흥분한 나는 동그랑땡을 모두 뒤집은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티비를 보다 깬 남편이 주방 쪽으로 다가왔다. 흠짓 놀란 나를 보며 남편은 의아한 얼굴을 하고 동그랑땡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는 뒤집개로 한 대 때리고 싶은 퉁퉁하고 구부정한 등짝을 다시 소파에 붙이고 리모컨을 쥐었다. 아무 말도 못들은 모양이었다. 일단 언니의 말을 듣고 싶었다. 언니는 꼬지전에 붙은 밀가루를 털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점을 봤어. 도사가 그래. 헤어져 봤자 같은 놈을 또 만나니 그냥 살라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달걀물을 묻힌 꼬지전을 나란히 전기팬에 눕혔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거 전을 꾹꾹 누르는 것뿐이었다. 갓 구워낸 전을 집어 후라이팬 앞에서 따뜻한 채로 맛보는 것 뿐이었다. 고기와 맛살, 파, 햄을 나란히 꽃은 꼬지전이 노릇하게 익었다. 나는 얼른 건져올려 지글거리는 기름을 후후 불어 식히고 입에 넣었다. 싱거웠다. 단무지를 같이 꽂으면 좋을 텐데 시댁 식구들은 단무지를 먹지 않는다. 작은 전에 단무지 꽂는 것도 맘대로 할 수 없는 내가, 한 사람의 인생에 무슨 조언을 하겠는가. 그저 그녀의 결정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도 더 살아보면 알거야. 그게, 그런게 아니거든... 암, 더 살아봐야 알지.”
나는 다 익은 전을 소쿠리에 꺼내 펼친 후, 먹다 남은 전을 마저 입에 넣었다. 여전히 싱겁고 맛이 없다. 단무지 없는 꼬지전을 찍어 먹기 위해 간장을 찾아 양념칸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직 낯선 시댁에서 간장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살아보면 알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닥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나는 양념칸을 닫고 후라이팬 앞으로 돌아왔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우리 언니는 시를 쓰지 않는다
아마 갑자기 시를 쓰기 시작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시를 쓰지 않았던 엄마를 닮아,
역시 시를 쓰지 않았던 아빠를 닮아
시를 쓰지 않는 언니의 지붕 아래서 나는 안도를 느낀다.
언니의 남편은 시를 쓰느니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할 것이다.
제아무리 그 시가 ‘아무개의 작품’이라고 그럴듯하게 불린다 해도
우리 친척들 중에 시 쓰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언니의 서랍에는 오래된 시도 없고,
언니의 가방에는 새로 쓴 시도 없다.
언니가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해도
시를 읽어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는 아니라는 것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끓인 수프는 숨겨진 모티프가 없어도 그럴싸하다.
그녀가 마시는 커피는 절대로 원고지 위에 엎질러질 염려가 없다.
가족 중에 시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그런 가족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결국 시인이 나왔다면 한 사람으로 끝나진 않는다.
때때로 시란 가족들 상호간에 무시무시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세대를 관통하여 폭포처럼 흘러간다.
우리 언니는 입으로 제법 괜찮은 산문을 쓴다.
그러나 그녀의 유일한 글쓰기는 여름 휴양지에서 보내온 엽서가 전부다.
엽서에는 매년 똑같은 약속이 적혀 있다:
돌아가면
이야기해줄게.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