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찬탱(茶餐廳)

- 류영하 <홍콩 산책>

by 후시딘

버터는 프렌치토스트 위에서 천천히 녹고 있었다. 그녀는 나이프를 들어 버터를 살짝 펴낸 후 토스트를 잘라 입에 넣었다. 눅진하게 스민 달걀의 맛이 고소한 버터를 타고 달콤함 시럽으로 마무리되었다. 낡아가고 있지만 전혀 닳지는 않는 타일벽들, 낡은 테이블과 언제나 똑같은 토스트와 원앙차. 토스트를 잘라 입에 넣으며 그녀는 시간을 걸어잠근 이곳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시며 시계를 보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 일찍 나온 탓에 아직 약속시간은 삼십분쯤 남아 있었다. 창밖으로 틴 하우 템플이 보였다. 그가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틴.. 맞지?”

체크인 후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녀에겐 홍콩에 대한 기억과 함께 소환되는 사람, 성우였다. 그녀는 당황했는데 그것은 불쑥 나타난 그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허전하게 드러난 정수리와 두둑하게 살이 오른 몸, 특히 그와 완전히 별개의 존재처럼 보이는 불룩한 배는 예전 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놀랄만한 변화였다.


“그래, 넌 아직 홍콩에서 살고 있구나.”

“넌 홍콩을 떠났는데 다시 왔고.”

어색하게 웃던 그는 문득 할 일이 생각난 사람처럼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지금 홀에서 세미나가 있어 가 봐야 하거든. 혹시, 내일 시간되면 아침식사 할까? 조식식당에서 보면 되잖아.”

아침식사! 성우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그녀는 문득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혹시, 미도카페에 가도 괜찮을까? 사실 거기 가려고 조식 예약 안했거든.”

그는 좀 당황한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아침식사’는 아마 그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만나기 위한 나름의 제안이었을 것이다. 미도카페라.. 그의 눈의 아득하게 흔들렸다.

“근데 11시에는 안될 것 같아. 이번엔 진짜 일찍 아침을 먹을거니까.... 덮밥이 안 되는데도 괜찮아?”

그녀의 태연한 목소리에 그는 잇몸이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침 8시부터 이제 모든 메뉴를 다 먹을 수 있어. 11시가 아니라도.”


*


토요일 오전 11시, 두 사람이 미도카페에서 만났던 짧은 시절이 있었다. 같은 회계법인의 회계사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주말의 늦잠을 충분히 즐긴 후 슬슬 외출하기 좋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11시에 미도카페를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침메뉴와 점심메뉴가 겹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11시부터 삼십분가량 카페에선 오전에 파는 토스트나 번 종류와 점심메뉴인 덮밥 종류를 함께 팔았다. 그녀는 아침메뉴였던 홍콩식 프렌치토스트를 좋아했다. 밥 종류의 식사를 즐기는 그는 삼겹살 바비큐를 올린 덮밥을 먹었다. 여기에 두 사람 다 커피와 밀크티를 섞은 원앙차를 곁들였다.


사내에서 한국인이라고는 두 사람 뿐이었던 2000년대 초반, 둘은 연애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관계로 만남을 이어갔다. 그는 그녀의 토스트를 반조각 잘라 음미했고, 그녀는 그의 밥과 삼겹살을 덜어 먹으며 한국어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그녀는 고등학교때 미국이민을 떠난 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내 글로벌 회계법인에 취업했다. 일년 후 홍콩 지사 발령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위해 홍콩에 왔다. 밥을 먹으며 그는 늘 김치 이야기를 했고 김치나 한국음식에 대한 큰 감흥이 없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토스트를 베어물었다.


식사를 마친 둘은 공원을 산책하거나 쇼핑을 하고, 가끔 영화를 본 후 어두워 지기 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직장에서, 그리고 타지에 혼자 있다는 외로움으로 사귀게 되는 것은 신중하지 않아보였다. 서로 같은 생각이라는 걸 둘은 잘 알았다.


매주 토요일에 만남을 가진지 일 년정도 지났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식사를 카치고 침사추이를 걷고 있을 때였다. 습한 대기 속에서 자신의 왼손에 계속 스치던 오른손을 그가 조심스럽게 감싸쥐더니 꼭 잡았다. 그가 손을 잡던 그 순간, 그리고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했던 그 때였다. 그녀는 눈앞의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가 떨어지는 기분으로 주저앉았다. 온 몸이 춥고 떨리며 심장이 튀어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슴을 쥐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바다 밑에 무겁게 가라앉은 어떤 존재들이 그녀의 가슴속으로 스며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부할 틈도 없이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여기가 어디야?”

눈을 뜬 그녀 앞에 그가 벌떡 일어섰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 기계소리, 스테인레스가 부딪히는 소리가 그녀를 감쌌다.

“병원이야. 괜찮아? 선생님 부를까?”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았다. 순간, 그의 머리위에 하얀 시트를 감고 누워있는 늙은 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상 너머로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모든 상황이 읽혔다. 그녀는 그를 끌어당겨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얼른 집에 전화해봐. 한국에 갈 일이 생길거야. 어머니, 빨리 어머니 안부를 여쭤보라고.”


그날 이후 회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곳이 아니었다. 최소한 한번쯤 접촉이 있던 사람들에게서 다른 것들이 보였다. 에너지를 조절 할 수 없었던 그때는 그들의 가까운 미래의 영상, 그가 가장 아파하는 부분의 영상이 작게 매달려 떠다니는 모습에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팀장의 머리엔 불륜녀의 얼굴이, 동료의 머리 위에선 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함께 일을 하는 클라이언트에게선 그녀가 목 조른 한 남자의 끔찍한 얼굴이 대롱거렸다. 일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며칠 후의 출근길, 발길이 이끄는 대로 란타우 섬의 포린 사원에 선 그녀는 청동불상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문득 서울로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주어진 능력으로 더 많은 일을, 금전적으로도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경영학도인 그녀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될지 몰랐다. ‘크리스틴의 카운슬링 센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에덴동산을 나온 인류가 서커스 같은 세상을 견디는 일은 질서와 룰입니다. 확실히 보이는 것은 풀고, 애매한 일이라면 그 존재 유무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요. 그게 곧 룰이 됩니다. 그 질서와 룰을 판단하는 일을 제가 도와드리는 거죠.”

샤갈의 그림 ‘아담과 이브의 추방’ 앞에서 눈을 반짝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삶의 매듭, 풀거나 장식이 되거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홍콩에서 회계사로 일하던 젊고 총명한 점술 카운슬러는 사람들과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영’하고 ‘용’한 그녀는 카운슬링 외에 출판, 강연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재력과 명성을 쌓아갔다. 그렇게 십여년이 흐른 어느날, 천천히 눈앞의 영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급해졌다. 쌓아온 이력과 감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녀는 업계에서 가장 금기된 것, 그리고 그녀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신기가 좋은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업계 사람끼리 왜이러십니까?”

강화도의 작은 암자에서 수련 중이던 도사는 시퍼렇게 날이 선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도사는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졌다. 그의 주변에서 뭐라도 보기위해 집중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볼수 없다. 그가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웃고 고개를 흔들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그녀를 보며 도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운명이 온 곳으로 가십시오. 별의 비를 맞으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모습이 충분히 만족스러울지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암자를 나선 그녀는 바로 비행기와 숙소만 예약하고 홍콩으로 떠났다. 호텔 로비에서 성우, 바로 운명의 시작인 ‘유성우’를 만난 순간 그녀는 십 년전 토요일 11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인 이곳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즐기던 차찬텡과 함께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컴컴하게 흐려있었다. 오래되고 낡은 유리창에 주름지고 늙은 여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이곳에서 변한 건 자신의 모습뿐이었다. 문득, 사람들의 운명을 넘겨보며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접시에 담긴 토스트가 식어가고 있었다.


미도카페의 프렌치토스트는 식기 전에 먹어야 했다. 굳어버린 버터가 달걀 비린내를 그대로 뿜어내게 될 테니. 서둘러 남은 토스트를 입에 넣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운명이란 무엇일까. 식어가는 원앙차를 마시고 핸드폰을 보았다. 시간은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 9시 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은 꺼져 있었다. 툭툭, 창문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부술 듯이 때리다가 세차게 흐를 만큼 강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창밖의 풍경이 바뀌었다.


그녀는 생이 숨기고 있는 예측 할 수 없는 일들을 이제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분명한 것은 토스트와 차는,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려 맛이 없어진다는 사실 뿐이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아직 온기가 남은 프렌치토스트를 먹고 작은 잔에 남은 원앙차를 마셨다. 만족스러운 아침식사였다고 생각했다.


계산을 마치고 카페 문을 열자, 날은 거짓말처럼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템플스트리트 입구의 빗물을 머금은 초록기와가 내리쬐는 햇볕에 반짝거렸다. 소나기가 내린 후 습도는 더욱 높아져 머리카락이 자꾸 얼굴에 달라붙었다. 입구가 단단히 봉해진 거대한 산소 젤리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홍콩이 운명의 시작이 맞을까. 시작점은 어디든 될 수 있었고 그녀가 정하기 나름이었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강한 햇볕에 눈이 부셨다. 그 위에 있을 별들을 상상했다. 우주의 별들은 항상 저 위에 나와 함께 존재했다. 다만 눈앞의 더 강한 빛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 별을 잠시, 정확히 볼 수 있을 때도 있었지만 볼 수 없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별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지금 볼 수 있는 것을 보고, 느끼며 그 순간을 살면 되는 것 일테니. 든든하고 만족스런 아침식사를 한 지금의 기분 그대로 시작하면 될 것 이었다.


익숙한 홍콩섬의 센트럴이 잡힐 듯 보이는 침사추이 산책로로 들어섰다. 잠시 그곳에 서서 습한 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다.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바다가 별보다 더 반짝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스마트폰을 들어 저장한 성우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 대신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진 초록색을 볼 수 있는 구룡공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차찬탱(茶餐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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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것이 많은 홍콩에서도 특별한 식당이 있다. 홍통사람들이 주로 ‘차찬탱(茶餐廳)’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상호에 ‘빙실(氷室)’, ‘찬실(攢室)’, ‘커피숍(咖啡廳)’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며, 홍콩의 서민 식당이다. 서민 식당이지만 동서양의 미식이 제공되는 신비의 공간으로, 음식 선택의 권리와 함께 음식의 수준을 보장해주는 곳이다. 차찬탱은 홍콩인들의 고향이자 부엌이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물론 많은 추억은 차찬탱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세계 어디나 타찬탱이 있는 곳이라면 홍콩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차찬탱을 홍콩 사전에서 찾으면 차감고 뜨거운 음료 및 죽, 면, 밥 등을 파는 수준이 비교적 낮고, 저렴한 식당이라고 되어 있다. 아침은 아침대로 토스트, 계란, 햄, 소시지 등의 세트 메뉴가, 점심은 점심대로 덮밥에 음료가 나오는 세트 몇 가지가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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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하 <홍콩산책> 중 차찬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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